노동의 상실 - 좋은 일자리라는 거짓말 전환 시리즈 2
어밀리아 호건 지음, 박다솜 옮김 / 이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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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말이 무심코 나왔다. 이렇게 열심히 일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같은 양의 노력을 일찍 공부에 쏟아 돈 더 잘 버는 직업을 가질 것 그랬다고. 버티며 애써 일하는 게 당연하다면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길로 찾아 갔어야 한다는 후회였다. 좀 더 노력했더라도 잘 버는 직장에서 일했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출근 때마다 온 몸에서 돋아나는 거부감을 참아내고 있다는 거다.

노동해방이라는 말은 착취와 억압받는 노동에서 해방되어 노동자가 자기 노동의 참 주인이 되자는 뜻이다. 그런데 이보다 은퇴 : 노동으로부터 벗어남이 스스로를 구하는 가장 현실적인 미래로 느껴진다. 복리의 마법을 믿으며 꾸준하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재산도 모을 수 있다고, 여러 재테크에 기웃거린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고 경기침체에 빠지니 이런 믿음과 희망이, 회사 밖에 대한 미래도 사라진다.

일하는 게 왜 이리 싫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하고 싶어 했던 일이 아니다. 취업하는 자체가 중요해서 뭐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고 들어왔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그래도 몇 년은 아무 생각 없었는데 10년이 넘으니 한 번 뿐인 인생을 허비한다는 자책이 커진다. 둘째, 하고 싶어 하지 않은 일을 너무 오래 한다.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거에 더해서 일찍 출근하며 추가 근무하고, 일하며 생긴 피곤과 스트레스를 보듬는 시간들까지 합산하면 압도적인 지분이다. 내 시간의 실질적인 주인은 회사이다.

셋째, 직장에는 화를 돋우는 일들이 쉬지 않고 벌어진다. 직장에는 계급이 있고, 권한을 가진 상급자가 책임을 떠넘기거나 잘못된 결정을 해도 웃는 낯빛을 유지해야 한다. 상급자가 되기 위해 경쟁과 평가가 이뤄지고, 납득할 수 없는 인사에 그동안 일로 증명해왔다고 여겨온 스스로의 가치는 추락한다. 일찍부터 편한 자리 찾아 가는 요령을 욕해놓고, 이제라도 노선을 바꿔야 하나 갈등한다.

부적응자라서 힘든 걸까, 직장은 원래 적응하기 어렵고 힘든 곳일까? 스스로 부적응자가 아니라고 믿는다면, 직장이 꼭 이런 곳이어야 하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노동의 상실 좋은 일자리라는 거짓말

 

20234월에 번역 발행된 영국인 어밀리아 호건이 쓴 책이다. 원제는 LOST IN WORK : Escaping Capitalism이다. 이 책을 쓰도록 이끌었다는 저자의 소망이 인상 깊다.

나는 이 책이 이론의 가능성을, 이론이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일의 가능성을 실현하기를 소망한다. 당연하고, 고정되어 있으며, 극복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꺼내어 그것이 실은 우연적이고, 변할 수 있으며, 극복 가능하다고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나는 이 책이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전제 조건인 희망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은 일을 위한 희망,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일에 대한 희망,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희망을.”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이란 임금노동을 가리킨다. 일을 폭넓게 해석하면 어떤 목적을 위해 육체적 수고와 정신적 피로를 감수하는 모든 활동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판매함으로써 행해지는 일로 서술대상을 한정짓는다. 같은 종류의 가사노동일지라도 고용되어 타인을 위해 일하게 되면 그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책은 임금노동이 처해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 늘어나고, 노동의 양극화로 격차와 차별이 늘어나며, 국가는 실업자에게 국가 재정을 좀 먹는다는 낙인을 찍으며, 최저 임금보다 못하더라도 일단 일자리를 구하라고 한다. 이처럼 일자리의 질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좋은 일자리를 되살려야 할까? 저자는 훨씬 멀리 나아간다.

이 책은 자본주의 체제의 일이 사람의 자유를 앗아가는 방식을, 일이 약간의 만족과 심지어 약간의 즐거움도 제공하긴 하지만 그건 다른 유형의 즐거움을, 다르게 살고 생산하는 방식을 없앰으로써 가능했다는 사실을 숙고한다.”

임금노동에 대한 전복적인 비판이 필요한 건 임금노동이 두 가지 부자유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부자유, 그리고 임금을 받는 대신 주는 사람의 통제에 따라야 하는 부자유. 이 두 부자유가 임금노동을 가능하게 하고 규정한다. 그런데 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닌가? 여기서 말하는 부자유는 자연이 인간에게 지운 굴레 같은 게 아니고, 사회가 자본을 소유한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로 갈라져 있으며, 다수는 자기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고서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회현실을 의미한다.

한편 노동력을 구매하는 입장에서는 매출과 이윤을 낳는 쓸모 있는 노동을 원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일하는 걸 용인하지 않는다. 여기서 생겨난 게 일터에서의 수직적 위계질서와 통제이다. 위계질서 내에서 어떤 사람은 관리자가 되어 사장 대신 직원들을 통제하지만, 결국 이윤극대화(비용절감)와 시장경쟁이 직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결정한다.

 

힘을 합쳐 자본주의 넘어서기

 

두 부자유로 인해 노동자는 일터 밖에서도 안에서도 일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빼앗긴 채 타인을 위한, 그래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노동의 소외로부터 월급쟁이들이 겪는 고통과 번민이 시작된다. 그래서 저자는 일터에서 노동자가 자기 결정의 권한을 확보하고 넓혀가야 한다고 말한다. 촛불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노동자의 권한이 커질수록 우리를 옮아 매는 부자유는 힘을 잃어갈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가 힘을 갖는 유일한 수단은 노동조합으로 조직과 단결이다. 다만 노동조합의 목적이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를 높이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금융치료가 부족해서 노동이 힘든 게 아니라 노동자가 자기 노동을 결정하지 못하는 부자유가 실존의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책의 원제가 LOST IN WORK : Escaping Capitalism이라는 걸 기억하자.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가 잃어버린 건 자기 결정의 자유이며,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앙상한 요약에 담지 못한 이 책의 개성과 매력, 저자의 깊이 있는 관찰과 풍요로운 언변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작은 책이라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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