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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와 노동의 미래 - 탈희소성 사회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아론 베나나브 지음, 윤종은 옮김 / 책세상 / 2022년 1월
평점 :
챗GPT가 공개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 성능과 활용가치에 흥미를 가지고 놀라워한다. 체스와 바둑 같은 특정한 분야에 한해서만 인간을 뛰어넘었던 인공지능이 이제는 스스로 학습하여 모든 방면에서 인간의 권능을 복제하고 뛰어넘어서고 있다. 좀 더 멀리 있을 것이라 여겨온 변곡점이 눈앞에 와 있는 듯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 시작하는 변곡점이 가시화되면서 이에 대한 두려움도 일어나고 있다. 가장 큰 두려움의 이름은 실업이다. 골드만삭스는 10년 후 인공지능이 전 세계의 정규직 일자리 3억 개를 대체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이러한 예측이 맞아 떨어진다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3억 명은 무슨 일로 먹고 살아야 할까?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 그 사용자에게는 풍요를 안겨주겠지만, 대체되는 노동자들은 빈곤으로 내던져질 것이다.
이러한 ‘기술발전의 역설’하면 거의 반드시 함께 언급되는 게 러다이트 운동이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증기기관이 뿜어내는 동력으로 지치지 않고 움직이는 기계가 보급되면서,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분노하여 기계를 파괴했다. 이 사건들은 기술발전을 가로막아 일자리를 지키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한 교훈을 담은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도입되어 구조조정되는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러다이트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다.
21세기 러다이트로 조롱받고 싶지 않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독서가 답을 주지는 않지만, 두 책에 대해 논하며 고민을 더해보고자 한다.
「제2의 기계 시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경영대학원의 두 교수가 공저하여 2014년에 출간됐고, 상당한 유명세를 얻은 책이다. 아마도 메시지가 대담하고 명확해서인 듯하다. 18~19세기 산업혁명이 제1의 기계 시대였다면, 1960년대 이후 집적회로와 인터넷, 소프트웨어 등의 디지털 기술로 인해 인류는 제2의 기계 시대로 들어섰다. 산업혁명이 세상의 풍경을 농촌과 방앗간, 마차에서 도시와 공장, 철도로 바꾼 크기의 변화만큼 엄청난 도약이 다시 한 번 인류에게 다가왔다. 제1의 기계가 인간의 몸을 대체했다면, 제2의 기계는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여 일할 것이다. 가령 앞으로는 엑셀에서 복잡한 표와 함수를 입력하거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작성하는 일을 직접 하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만 입력하면 된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은 경제에 풍요와 동시에 격차를 주입하고 있다. 책에서 다루는 격차의 몇 가지 현상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1인당 실질 GDP(즉 평균소득)와 중간소득(총 분포의 50 백분위수에 있는 사람의 소득)의 격차가 1975년 이후로 가위처럼 계속 벌어지고 있다. 중간소득은 늘어나지 않는데 반해 상위 계층의 소득은 빠르게 증가해서이다. 이러한 계층 간 소득 격차를 설명하는 게 ‘숙련 편향적 기술 변화’라는 말이다. 대학 졸업자 이상의 노동자들은 소득이 늘어난데 반해 저학력 노동자들은 소득이 오히려 줄어든 현상이 덜 숙련된 노동의 수요를 감소시키는 기술발전 때문이라는 설명을 의미한다. 소득 격차의 확대에 관한 설명으로 GDP에서 자본이 아닌 노동으로 분배되는 소득을 의미하는 노동분배율의 감소도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초 이래로 세계의 노동분배율은 크게 감소했다. 그리고 저자들은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의 발전과 이로 인한 실업의 장기화에 대해서도 검토한다.
제2의 기계 시대가 가져온, 앞으로 본격화될 풍요와 격차의 이중성에 대해 책은 “기계와 함께 달리는 법”을 제안한다. 기계로 대체될 노동에 매달리기보다 기계를 보완할 노동, 여전히 기계가 할 수 없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등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격차를 완화하고 풍요를 촉진하기 위해 더 많은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들을 제안한다. 저자들이 제안하는 정책 중에 눈길을 끄는 건 일정 소득 이하의 사람들에게 국가가 소득을 보조해주는 역소득세이다. 적은 소득일지라도 일을 하면 보조금이 나오니 사람들의 근로 의욕이 향상될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근로세는 폐지하여 기계 대비 노동의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도 말한다.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
이 책은 미국의 좌파 학자가 쓰고 2020년에 나온 책이다(한국 출판은 2022년). 좌파 학자답게 주류 담론 중 하나인 ‘자동화 이론’에 대한 비판이 목적이다. 자동화 이론이란 ‘제2의 기계 시대’를 말하는 것처럼 기술 발전으로 인해 노동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되어왔고, 앞으로도 더 빠르게 향상되어 노동에 대한 수요가 감소되어 결국에는 현재 형태의 노동은 대부분 사라진 (연구와 탐험, 예술 같은 진실로 인간적인 행위만이 남아있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고, 이러한 대전환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말한다. 기본소득은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에게도 인기 있는 정책인데, 대체로 우파는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정책에 들어가는 재원을 대신 기본소득으로 돌려 시장을 통해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구입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이러한 자동화 이론에 대해 저자는 세 가지 지점에서 비판한다.
첫째, 기술발전으로 인해 생산성 향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건 거짓이다. 오히려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감소하고 있다. 이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솔로 교수가 1987년에 지적한 이래로 경제학에서 ‘생산성 역설’로 불리는 현상인데,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도입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개선의 속도가 1950~60년대보다 더 낮아진 것이다. 특히 고용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비스업에서의 노동생산성 향상이 지지부진하며, 그동안 가장 빠르게 성장해온 제조업에서도 생산성 개선은 점차 느려지고 있다.
둘째, 노동저수요, 특히 전체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탈공업화의 주된 원인은 노동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생산성 증가율보다도 산출량 증가율이 더 줄어든 데에 있다. 생산성이 증가하여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해도 모두 팔아치울 수 없으니 고용을 줄여 저성장에 적응했고, 그 결과가 탈공업화였다(이를 증명하는 통계와 그래프가 함께 제시돼 있다). 그리고 제조업에서 산출량 증가율이 1970년대 이래로 줄어든 건 1950~60년대 일본과 독일에서 제조업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과잉 생산능력 때문이다. 생산능력 과잉으로 비용이 상승해도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못하는 경쟁압력이 강해져 결국 이윤율이 떨어졌다. 이윤율 저하로 투자가 줄어들어 생산성과 산출량 증가율도 함께 줄어드는 악순환이 굳어졌다. 70년대 이후 동아시아의 수출 주도 성장은 선진국 자본이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해 노동력이 저렴하고 규제받지 않는 공간으로 재배치된 덕분이며, 또한 그 결과로 제조업에서의 과잉 생산능력과 경쟁압력은 해소되지 못하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셋째, 자동화 이론이 그리는, 노동이 현저히 줄어들거나 사라진 사회는 기술발전에 의해 저절로 오지 않으며, 기본소득이 촉진할 수도 없을 것이다. 기술발전과 생산성 향상이 일자리 감소로 귀결되는 건 기술이 단순히 노동을 대체하기 때문이 아니다. 제 가격에 팔리지 않을지 모르는 상품의 생산을 무작정 늘리거나 고용을 유지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여주는 게 경영자와 자본에게는 매우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윤 추구가 지배하는 경제구조 하에서 생산성 증가는 노동시간 대신 일자리를 줄이고, 쫓겨난 이들을 싼 임금에도 무엇이든 하려는 처지로 몰아넣고, 값싼 노동력으로 돈 가진 이들의 새로운 욕망을 자극하는 신규 산업(주로 서비스업)과 비공식 부문의 증가로 이어진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이야기가 단순히 허구로 여겨지지 않는 사회현실이다. 따라서 저자는 자본에 대항하는 사회운동만이 더 나은 미래를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입장 사이에서
두 책을 비교했을 때 「제2의 기계 시대」는 기술결정론과 신자유주의에 가깝다. 1970년대 이후 경제적 격차의 확대가 디지털 기술의 발전 때문이며, 앞으로도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는 건 불가피하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기술결정론이다. 또한 이러한 기술결정론을 앞세워 시장의 실패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앞으로도 팔릴 만한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거나 기계보다 싼) 노동력 상품이 될 것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이다. 이처럼 사회 주류를 대변하는 입장이 아마도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은 배경일 것이다.
반면에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는 오늘날 저성장과 노동저수요, 불완전고용과 같은 경제적 문제의 기원을 시장원리 그 자체에서 찾는다. 그리고 사회운동을 통한 시장원리의 극복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다. 기술이 일자리를 파괴하는 건 비용 절감과 이윤 극대화의 목적으로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적으로 합의된 목적, 가령 노동시간 단축이나 무상공급 확대 등을 위해서 기술을 새롭게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를 자유의 영역이 모두에게 열리는 ‘탈희소성 사회’라고 부른다. 인류의 오래된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