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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원 - 석기 시대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까지
아더 훼릴 지음, 이춘근 옮김 / 북앤피플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선사시대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까지 다루고 있는 「전쟁의 기원」은 도발적인 결론으로 끝을 낸다. 나폴레옹과 웰링턴이 겨룬 워털루 전투에서 만약 알렉산더가 프랑스군을 지휘했더라면 승리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알렉산더가 이끈 마케도니아군이 영국군과 겨뤘더라도 이겼을 것이라는 예상 못한 결론까지 이른다.
이는 흥미로운 논쟁거리이기도 하지만, 책의 핵심적인 주장을 함축한다. 알렉산더의 정복활동이 이뤄줬던 B.C.334년~326년으로부터 워털루 전투가 치러진 1815년까지 전쟁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화약과 총포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쟁의 본질”이라는 말은 애매하게 들릴 수 있겠다. 먼저 마케도니아군이 웰링턴의 영국군을 제압할 수 있다는 근거는 총과 대포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전장에 투사할 수 있는 중장거리 화력에 결정적인 차이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게 하나이다. 자동소총과 기관총이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기 이전까지는 투석기와 활, 돌팔매질도 1800년대의 총포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전쟁의 본질”이란 이러한 무기체계의 느린 발전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건 무력을 조직하고 활용하는 전쟁의 기술이 알렉산더 대왕에게서 완성되었고, 대왕에게서 완성된 전쟁의 기술이 19세기의 전장에서까지도 승리를 향한 최상의 원칙으로 군림했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바로 통합군을 운용한 모루와 망치 전술이다. 마케도니아군에게서 적을 고착시키는 모루는 팔랑크스였고, 깨부수는 망치는 기병이었다. 모루와 망치의 형태는 전장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그 본질은 경보병, 중보병, 기병 등의 다양한 군종의 유기적인 운용이고, 각 군종에 적합한 역할을 부여하며, 적절한 순간에 필요한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기적인 통합군의 탄생은 알렉산더의 천재성 덕분만은 아니다. 알렉산더에게서 완성되었지만 통합군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거치며 발전해온 군사적 전통의 산물이었다. 바로 이게 전쟁의 기원에 대한 책의 진정한 주제이다.
우리는 마케도니아군이 순전히 그리스 중장갑보병에게서 발전해온 것이라는 편견을 가질 수 있는데, 저자는 전쟁에 대한 선사시대의 흔적들로부터 이집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의 오랜 역사 속의 군대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러한 편견을 논파한다. 전쟁기술 역시 어느 다른 사회제도와 문화처럼 여러 발생원들로부터 퍼져 나와 서로 섞이며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을 해온 것이다.
다만 전쟁기술은 전장에서의 그 우열의 결과가 너무나 명확하여 –패배하면 죽음뿐- 가장 우수한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통합군의 전통은 그리스에서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의 알렉산더의 불패로 그 뛰어난 우수성을 증명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승리에 이르는 최상의 방법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