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 강의
백승욱 지음 / 그린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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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2019년에 처음 읽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그만큼 금세 읽었다.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총 여섯 권이고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한 권이지만 상당한 두께이다.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는 네 권이고, 아리기의 장기 20세기와 실버의 노동의 힘은 각각 한 권씩이다. 이 모든 책들의 요지를 백승욱 교수 강의 한 권으로 파악할 있다는 건 흔히 말해 엄청나게 남는 장사이다.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저 대가들의 사상과 세계체계론에 관심이 있다면 입문서로 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른 입문서는 아직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런데 백승욱 교수 전달의 신뢰성에 대해 조금 의심이 들게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로버트 브레너에 대한 비판적 언급인데 그 내용이 내가 아는 바와 틀리다.

 

157브레너의 주장은 돕보다 더 돕적인 논지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브레너의 핵심 테제는 계급투쟁론인데, 봉건제에 도전하는 계급투쟁이 성공한 곳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했다는 이야기죠. 그것이 바로 영국입니다. 가령 동유럽은 계급이 미약했고 계급투쟁에서 부르주아지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이 구절에서 봉건제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도전이 성공한 곳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했다는 식으로 브레너를 요약하는데, 이는 브레너 이론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압축이다. 브레너는 1974년에 발표한 전산업시대 유럽의 농업계급구조와 경제발전에서 봉건제 해체라는 충격이 동유럽과 프랑스, 영국에서 각각의 상이한 사회적 권력관계를 경유하며 서로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농노의 힘이 가장 약했던 동유럽에서는 재판농노제로 퇴보했고, 프랑스에서는 농민이 토지 보유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여 20세기까지도 소토지 경작의 비중이 매우 높은 국가로 나아갔다. 즉 농업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소토지 보유농에 가로 막힌 것이다. (페리 앤더슨은 이점에 착안하여 프랑스 절대주의가 토지귀족들이 국가를 경유하여 농민에 대한 착취를 회복하려 한 체제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반면에 영국에서는 16세기부터 이른바 농업자본주의가 발전하는데 이는 농노의 신분에서는 벗어났으나 토지 보유에 대한 권리까지는 확보하지 못했던 영국 농민의 상태에서 비롯한 결과였다. 인클로저 운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영국 토지귀족은 자신의 영지에서 성공적으로 농민을 축출할 수 있었고, 상업적인 차지농업가에게 임대하였다. 자본주의 방식으로 경작되는 대토지가 16세기 이후 영국 농촌의 모습이 된다. 이처럼 브레너는 자신의 이론에서 부르주아지를 전면에 내세우지도, (그런데 후속 저작인 상인과 혁명에서는 다른 맥락에서 영국 혁명 시기 상인의 역할을 집중 검토한다.) 피지배계급의 성공이 자본주의를 출현시켰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절반에 그친 성공이 자본주의로 이어졌고, 완전한 성공은 반대로 자본주의의 발목을 잡아챘다.) 그 다음 오류를 보자.

 

368아리기는 현시기 체계적 축적순환의 변화를 설명할 때 정치사회적 측면을 무시하면 20세기의 특징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아리기가 브레너의 붐 앤 버블을 비판하는 핵심논지이기도 하죠. )브레너는 모든 것을 과잉설비의 문제로 돌려서 설명하는데, 아리기는 이런 주장이 금융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또 정치사회적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구절 또한 제2차 브레너 논쟁에 대해 익숙한 독자라면 고개를 기우뚱하게 할 비판이라는 걸 알 것이다. 브레너는 1998년에 혼돈의 기원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현대 선진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1970년대 이후 장기하강(성장률 저하)에 관하여 도발적인 주장을 하였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내에 제2차 브레너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 논쟁을 반영하여 2001년에 붐 앤 버블을 출간하며, ‘혼돈의 기원에서 누락되었던 금융혼란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고, 미국의 신경제가 새로운 장기호황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미국, 일본, 독일에서의 제조업이 이윤율 저하의 덫에 걸려 있고, 실물경제에 의존하는 금융시장이 제조업에서의 이윤율 저하를 반전시킬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제조업이 이윤율 저하에 직면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과 독일이 전후 복구와 고도성장에 성공하면서 세계시장에서 미국과 일본, 독일 간의 경쟁이 격화되었고, 이러한 경쟁압력에 인플레이션만큼 제품가격을 올리지 못하여 이윤이 침식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조업은 점차 자본집약화 되고 있는데 거대 플랜트로 전화된 고정자본은 매몰비용이므로, 유동자본 대비 적절한 이윤을 기대할 수 있다면 자본은 계속 그 산업에 머물 것이다. 이러한 선택이 결국 제조업에서 기존 총자본 대비 이윤율을 낮추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브레너는 자본철수로 인한 실업의 발생, 자국 경제력 약화 등을 우려하는 정부에 의해서도 과잉설비가 유지되는 경향이 있으며, 1990년대 이후 미국만의 회복이 플라자합의 등을 통해 일본과 독일에게 경쟁의 부담을 전가시킨 국제정치의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즉 아리기를 빌려 백승욱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브레너의 논의가 모든 것을 과잉설비의 문제로돌리지도 정치사회적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다는 건 정당한 비판이 아니다.

 

그런데 책에서 잠시 스쳐가는 언급에 너그럽지 않고 예민한 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브레너가 1970년대 자본주의 이행에 관하여, 그리고 2000년대 현대 자본주의 장기침체에 관하여 무시하지 못할 국제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학자라는 점에서 브레너에 대한 무지나 다름없는 희화화가 책을 쓰는 정당한 태도인가 싶다. 이쯤 되면 책의 다른 부분에도 오류가 숨어있지 않나 의심되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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