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무삭제 완역본) 데일 카네기 초판 완역본 시리즈
데일 카네기 지음, 임상훈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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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네기를 알고 있었다. '강철왕 카네기'. 그래서 이 책도 그 유명한 백만장자가 사람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사람들을 갈아 넣어 사용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라고 짐작했다. 마키아벨리의 20세기 버전 정도가 아닐까, 처세술에 대한 내용도 조금  넣어서.

그러나, 이 책은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책이다.

그리고, 데일 카네기는 앤드루 카네기가 아니고 나는 부끄러웠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된 책이라는 부제가 부끄럽지 않게, 책의 내용은 알차고 작가의 자부심과 성의를 드러낸다. 출판사도 군더더기를 쫙 뺀 책을 만들고 싶었는지 책의 표지부터 뒤 날개까지 조금의 여백도 없이 책을 구성했는데, 이것은 원작을 반영한 것인지 아주 궁금했다. 요즘  출간되는 책들이 기본적으로 18000원대인데 반해 책값도 만 원을 살짝 넘는 아름다운 가격인데 종이도 꽤 얇은 편이다. 실용서적은 이래야 한다. 책이 가볍고 들고 다니면서 보더라도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내용은 근 5년 사이에 읽어 본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 중에 가장 좋다. 얼마나 좋은 책이냐면, 같은 지하철의 칸에 타기 싫어서 퇴근길에도 오 분 정도 느리게 걸어서 말을 안 섞고 싶은 직장동료의 생일 선물로 사주더라도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더니 내 마음에 인류애를 불 지피는 역할도 해주는 기특한 책이었다!

이 책의 기본적인 주제는 '칭찬'을 기반으로 하여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고' 대화를 통해 '그가 스스로 그 일을 원해서 하는 경지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 내용이 정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최근에, 아니 바로 사흘전에 불쾌한 전화를 한 경험이 있다.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을 대상으로 혼자 고군분투하며 민원을 넣었는데(누군가는 내게 '정여사'라는 블랙컨슈머의 닉네임을 환기시키며 어지간하다고 했지만 나는 좀 더 집요하고 적극적일 뿐 진상은 아니다!) 상대방의 태도가 대단히 별로였기 때문이다. 공손하게 시작하는 이쪽과 달리 퉁명스러움과 성의 없음에 짜증을 삼단 콤보로 내주는 바람에 나는 "그런데요, 사과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언성을 높였는데,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듯한 상대방은 사과는커녕 자기 책임이 아니며 알아보고 처리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기 때문에 전화를 끊으면서도 너무너무 분했다! 자기가 그 회사의 얼굴인데, 마케팅을 그따위로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때, 나는 아직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라는 파트를 읽기 전이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읽고 난 뒤 나는 나의 행동을 후회했다. 백 년 전에, 컴퓨터가 발명되기도 전에 살았던 사람이 쓴 이 글이 얼마나 나를 부끄럽게 하는지. 내가 전화를 끊고도 분하지 않으려면 나는 그 어린 여직원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업무는 발송일 뿐이라는 그녀에게 누락된 자료를 추궁하지 말았어야 했다. 날을 곤두세워서 지금 전화받는 담당자 이름을 취조하듯 물었을 때, 내선번호만을 가르쳐주는 그녀에게 다정하게 너의 탓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내가 사과를 요구하기 전에 내 마음이 얼마나 상했는지 살필 여유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수많은 논쟁과 말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신랄했는지. 비록 말싸움에서는 이겼을지라도 상대방들에게 박았을 수많은 비수들은 얼마나 혹독했을까. 그리고 내 아이를 훈계할 때도, 나는 아이의 체면은 얼마나 생각했는지 아이가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고치기 쉬운 것인지 알려주며 칭찬도 함께 했는지 반문하자 대단히 부끄러웠다. 늘 기억은 못하더라도, 새겨두어야 할 마음가짐이다.

카네기의 이론은 백 년 전에는 대단한 혁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차고 넘치는 자기 계발서들에 비해 구닥다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읽어보면 그 어떤 책도 범접할 수 없는 알찬 책이다. 아마 그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도 사랑받는 이유는 이 책이 가지는 진실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군더더기는 없지만, 작가의 인생이 녹아있는 책이고 작가의 간절함이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발견한 진리를 나누고 싶은 마음. 한 예로 상대방에게 칭찬을 할 때는 아첨이나 겉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라는 당부가 있다. 요즈음에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귀사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서두는 이 책을 잘못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 인간에 대한 믿음이 근간이 되는 내용이라서 이 책이 더욱 사랑받는 것은 아닐까.

자기계발서를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이 책은 감동을 받고 나를 바꾸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길에 이르는 방법들을 일목요연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형광펜과 밑줄을 사용해서 너덜너덜하게 읽어도 참 좋을 것 같다. 요리책에 김칫국물이 묻고, 구겨지고 닳을수록 자신있게 만드는 요리가 느는 것 처럼 이 책을 험하게 자주 읽을 수록 나라는 인간도 조금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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