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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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의 현대 소설가들은 격동기의 사건을 빼놓지 않고 언급해왔다. 중국만큼 놀라운 시절을 겪은 나라도 드물지 모르겠다. 스케일이 남다른 나라답게 왕조의 몰락, 전쟁, 이념의 대립에 이어 10억 명이 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아왔고 전무후무한 문화혁명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드는 것도 모두 함께 겪어냈으니 어떤 형태로든 사건들을 언급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인이지만 그 모든 일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선 사람에게는 어떤 글이 나올까? 감정적인 부분이나 변명, 혹은 격앙될 수 있는 슬픔이 덜 드러난 글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를 이어서, 당대를 지나도, 비극은 얼마나 질긴 생명력으로 인간을 잠식하는지. 켄 리우처럼 외부자가 되어서 중국의 현대사를 바라보기는 쉽지만, 켄 리우처럼 써 낼 수 있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종이동물원]에서 느낀 감정은 그랬다. 전반부에 답답하게 그려진 어머니의 모습과 사춘기 소년의 갈등은 마지막의 편지에서 봉합되는데, 어머니의 짧지만 비극적인 인생은 중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물론 어머니의 삶 그 자체가 '신파'의 유형에 너무나 들어맞아버리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데, 작가는 질질 끌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감동으로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전쟁과 위안부에 관한 우리나라의 짧은 소설들을 읽었을 때보다 좀 더 절제된 슬픔처럼 느껴진다. 중국 작가라서 괜히 배가 아파서 이런다고 가정하고 아주 못되게 말하자면,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열심히 구독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권말 특집 부분에 나올만한 휴머니즘 가득한 내용과 구성마저 비슷한 느낌이다. 혹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한 에피소드를 길게 늘여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감동적이기는 하고, 글 솜씨와 구성은 빼어난데 아직은 풋풋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 작가, 만만치 않다. 어딘지 뻔해 보이는 내용인데 구성이 재미있다. 글을 재미있게 엮을 줄 안다. 그리고 은근슬쩍 중국(이지만 우리나라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국민들에 대한 비판도 넣을 줄 안다. [레귤러]에서는 " ... 대중은 민주주의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이야기는 들어도 흥분하지 않았지만, 당간부가 자기네 면전에서 부정이득을 취하는 꼴을 보면 격분했다."라는 내용을 보라고! [천생연분]은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웹툰 [꿈의 기업]을 연상하게 했는데, 작가의 재기 발랄한 생각들은 브레이크 없이 여러 단편들로 뻗어나가고 있어서 좀 부러웠다. 작가가 더 뻗어나가서 킬링타임 용이 아닌 마음에 울림을 남기는 묵직한 글도 써줬으면 좋겠다. 재능이 있는데 게으르지 않은 복까지 타고 났으니 아마 그렇게 되겠지. 안드로이드와 전자양과 화씨의 뜨거운 온도와 바람의 열두 방향이 가는 바를 그린 다른 이의 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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