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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읽기 - 삶의 속도를 늦추는 독서의 기술
데이비드 미킥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느리게 읽기』는 문학적 텍스트를 깊게 향유하기 위한 '독자의 태도'를 이야기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동반해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것에 앞서, 작가를 존중하고 텍스트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독자로서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그리고 '보다 풍요롭게' 읽을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책 제대로 읽는 방법
의도치 않게 꽤 오랫동안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대략 한 달 가까이 이 책을 붙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작 읽은 기간은 2주 정도. 읽어보자, 결심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만 책의 구성이나 이야기하는 방식, 이야기하는 내용이 문학과 독서,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깊게 빠져들어 읽었다. 그래도 조금 아쉬웠던 건 이렇게 좋은 책을 이제야 만났다는 점. 졸업 전에 학과 수업을 복습하는 기분이었다. 교수님들이 해주셨던 이야기나 미학에 대한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부터 희곡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들어가 있었기 때문. 우리 과 친구들을 포함해 '정성 어린 독자'이길 원하는 이들에게는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미국 휴스턴 대학 영문학자 교수인 데이비드 미킥스는 텍스트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독자가 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느리게 읽기(Slow Reading)』를 썼다. 당신이 문학을 소비하는 쪽에 관심이 있든, 생산하는 쪽에 관심이 있든 더 잘 읽고, 잘 생각하고, 잘 살고 싶어 한다면 이 책은 지적인 생존 바이블이 되어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진정한 독자를 만들기 위한 인문 실용서 즉, '제대로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다양한 읽기 방식을 습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책 읽는 방법'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방식은 '효율적으로 책을 읽는 방법'이지 '책을 통해 깊게 사유하는 방법'이 아니다. 당신의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원하는 정보만을 수집해 읽는 방식인 통독, 제한된 시간 내에 빠르게 읽어내는 속독과 달리 데이비드 미킥스가 강조하는 '느리게 읽기'는 '필요 이상의 정독' 쯤으로 표현 가능하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느리게 읽기(Slow Reading)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천천히 텍스트를 읽어 나가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의도와 의미를 사유하고 탐색하는 과정을 즐기는 독서 방식이다. 덧붙여 당신이 그저 시간을 떼우기 위해 책을 읽거나 '즐거움(쾌락)'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독자가 아니라면 '느리게 읽기'를 통해 삶이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느리게 읽기를 실천하면 느림 속에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자아를 마주한 이후엔 보다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느리게 읽는다는 것: 즐겁게 이해하며 읽기
느리게 읽기는 텍스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에 앞서 작가의 창작행위에 대한 존중과 완성된 텍스트에 대한 존중을 바탕에 두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 편의 글이 나오기까지 작가들이 얼마나 고심하는지, 그 한 편은 완성시키기 위해 몇 번의 수정(퇴고)이 이루어지는지, 예상 가능한 결말과 독자가 희망하는 결말, 작가가 선택한 결말을 사이에 두고 어떠한 필연성과 개연성, 의도가 포함되었는지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많다. 모든 독자들이 작가의 결정에 순응하고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작가의 사상이나 내러티브 전개방식에 존경을 표현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작가가 텍스트를 완성하기 위해 소요한 시간과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작가 나름의 의도와 판단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 의식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신형철 식 표현을 빌리자면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 충분하지 않은 근거와 정황, 생각만을 가지고 쉽게 제단하지 않는 것이 텍스트에 대한 존중이자 작가에 대한 존중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존중을 바탕으로 할 때 '느리게 읽기'는 시작된다.
데이비드가 가장 경계한 것은 속독과 통독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주어진 텍스트를 빨리 읽어내려가는 속독. Z, V, F등 다양한 속독 기술이 있지만 이런 식의 읽기는 문제풀이에만 도움이 될 뿐 텍스트 자체를 이해하거나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통독 역시 마찬가지다. 정보를 얻기 위해 텍스트를 빠르게 훑어보는 통독은 자신이 원하는 내용만 기억하기 때문에 원래의 내용과 다른 내용으로 기억되기 쉽다. 많은 책을 빨리 읽을 때는 이런 두 가지 읽기 방식이 도움될지 모르겠지만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이야기 나눌 때에는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슬로우리딩은 빨리 읽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울 때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슬로우리딩에 어떤 특별한 공식이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여러 번 반복해 생각하며, 조금만 더 신중을 기하면 된다. 반 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책도 하루 혹은 이틀, 아니면 일주일 정도 공들여가며 읽거나 읽었던 책을 한 번 더 되짚어가며 읽는 것도 좋다. 궁금한 것, 의심가는 것을 그냥 두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이다.
느리게 읽기를 처음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읽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SNS에서 내가 놓친 게 있는 건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질 것이고, 친구들이 보내오는 카톡을 즉시 확인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느리게 읽기를 실천하려 한다면 책을 읽는 동안은 SNS와 인터넷 모두에서 멀어져야 한다.이 지루하고 따분한 느리게 읽기의 최대 장점은 읽고난 후에 찾아오는 즐거움에 있다. 텍스트를 이해했다는 즐거움, 작가의 목소리에 일정 수준 반응했다는 즐거움, 독자 내면의 일부가 변화했음을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느껴졌던 텍스트 속에서 '나의 일부'를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즐거움도 포함된다. 느리게 읽는다고 해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읽을 필요도 없고 이제 막 글자를 배운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읽을 필요는 없다. 텍스트를 다 읽고 난 뒤에 천천히 곱씹어보며 의미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텍스트에 길들여지지 않은 독자가 처음부터 핵심 단어나 문장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읽는 동안 이정표를 찾아내려면 어느 정도 연습이 필요하다. 가장 편한 방법은 마음이 맞는 동료를 찾아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해보는 것이다. 독자는 독서를 통해 작가와 마주하며 함께 대화를 나눈다. 가장 좋은 대화의 기술 중 하나가 경청이라면, 가장 좋은 독서의 기술은 인내하며 읽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책을 통해 열 네 가지 규칙을 소개한다. 데이비드 미킥스는 이 규칙들을 소설에만 적용시키려 하지 않는다. 문학 전반. 그러니까 단편소설, 장편소설, 시, 에세이, 희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적 텍스트에 느리게 읽기를 적용한다.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시, 느리게 읽을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없던 에세이,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었던 희곡에도 느리게 읽기는 적용 가능하다.
느리게 읽기의 규칙
1.인내심을 가져라
2.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라
3.목소리를 파악하라
4.문체를 감지하라
5.처음과 끝에 주목하라
6.이정표를 찾아라
7.사전을 적극 활용하라
8.핵심 단어를 추적하라
9.작가의 기본 사상을 발견하라
10.의심의 기술을 길러라
11.작품을 분해하라
12.메모하는 습관을 길러라
13.다른 길을 탐험하라
14.또 다른 책을 찾아라
왜 읽어야만 하는가?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2013년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국내 성인 평균 독서량은 0.76권에 불과하다. 1권도 안 읽고 다음 달로 넘어갈 때가 수두룩하다는 이야기인데 책을 읽으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책으로 알려준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책 속에 정보가 있어서도, 교훈이 있어서도, 쾌락을 향유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어서다. 자아성찰과 성장. 이 두 가지만 알고 있으면 된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자신과 마주한다. 문장 한 줄, 인물 한 명, 사건 하나에 몰입하기 시작할 수록 사람들은 내면 속에 깊이 잠재되어 있던 자신과 만날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자신과 만나는 일은 명상을 통해 자신과 만나는 일과 다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이나 화자를 통해 유년의 기억, 혹은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는 것. 현재의 본인조차 외면하고 있었던 본성에 가까운 자아를 마주했을 때 발현되는 카타르시스는 단순한 독서보다 느리게 읽기를 통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독서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책읽기는 어디까지나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행위이기에 필요 이상으로 권유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슬로우리딩(Slow Reading) 적용의 문제점
데이비드 미킥스가 이야기하는 슬로우리딩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책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읽기 방식 자체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슬로우리딩을 국내에서 적용할 경우 '적용 가능한 작품'을 찾기 힘들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어떤 작품을 읽는 게 좋을까? 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전읽기를 권유한다. 반드시 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도 없고 놀부전, 심청전, 열하일기와 같은 고전을 제외하면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도 많지 않다. 국내 문학은 역사가 짧고 주변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탓에 10년 단위로 사조를 나눌 수 있을만큼 급격하게 변해왔다. 그 사이 명작이라 불릴만한 작품이 나오긴 했지만 톨스토이, 헤밍웨이, 허먼 멜빌, 카프카에 준하는 작가들이 배출된 것도 아니며 그들의 작품에 준하는 단편/장편 작품이 출판된 것도 아니라 작품을 선정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두 번째는 느리게 읽기의 정도다. 얼마나 느리게 읽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이후에 서평으로 올릴 예정이지만 일본에서 슬로 리딩으로 이름 날리며 EBS에도 소개된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은 교과서 대신 『은수저』라는 작품을 3년에 걸쳐 읽기, 쓰기를 병행한 독후활동과 함께 가르쳤다. 물론 그 학교는 한 명의 담임이 장기간에 걸쳐 아이들을 가르치고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곳이기에 3년 동안 한 권의 책으로 슬로 리딩 교육이 가능했지만, 국내에서는 부적합하다. 국내에서는 최장 1년, 최소 3개월 정도인데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가 적당하며, 개인적으로 읽을 경우에는 아무리 길어도 한 달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이 외에도 이야기 할 수 있는 문제점은 많지만 지금은 대표 문제 두 가지만 언급하고 싶다. 슬로우 리딩(느리게 읽기)이 독자들이 실천하는 읽기 방식 중 가장 최선의 읽기 방식이며, 모두에게 전파해주고 싶을만큼 유익한 읽기 방식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독자가 이렇게까지 읽을 필요가 있느냐? 고 묻는다면 속 시원하게 답해주긴 힘들 것 같다. 모두가 평론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데이비드 미킥스가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처음에 밝혔지만 '보다 나은 독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는 이 책을 서술했다. 후반에는 실제로 작품을 분석해 놓아서 다소 지루하게 읽힐지도 모르겠지만, 분석된 텍스트를 읽기 전에 분석의 대상이 된 작품을 먼저 읽고 데이비드 미킥스의 시선과 본인의 시선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최대한 다양한 작품을 자세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많은 작품을 읽기 위해 가볍게 읽는 것보다 한 편의 작품이라도 제대로 읽는 게 중요하다. 느리더라도 조급해 하지 말고 자세히 읽고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길 추천한다. 느리게 읽기만큼 중요한 것은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이야기하며, 많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당신의 세계는 보다 확장될 것이고, 당신의 삶 역시 풍요롭게 변화될 것이다.
기억하자. 모든 것은 '느림'에서 출발한다.
한순간이 아닌 오래 지속될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독서를 하려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몇 번이고 책으로 다시 돌아가 그 책을 제대로 알고, 들인 시간만큼 보상을 얻어야 한다. 가치 있는 독서의 비결은 바로 시간이다. -p.20
최선의 방식으로 독서하는 법을 배워 지적인 독서를 하는 사람은 매 순간 선택을 하게 된다. 눈앞에 놓인 문장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인지, 작품 속의 논리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작가가 어떻게 글을 썼는지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 작가의 작품에 대해 최대한 많은 측면을 깨달을수록 텍스트의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닌 작가의 파트너가 된다. 글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무엇이 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지 파악해 나간다. …책에 반응하는 법을 선택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p.39
가치 있는 문학 작품은 어떤 이데올로기나 도덕적 개념 혹은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처럼 양면적인 감정을 가진 복잡한 생물이다. 한 작품을 진정으로 보기 위해서는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 작품과 함께 살아야 한다. 바로 그래서 브라우어가 말했듯이 느린 동작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작품을 꿀꺽꿀꺽 삼키기보다는 찬찬히 씹어 소화해야 한다. -p.52
책과 독자는 서로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책들은 "지금 나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책은 무언가를 말하려고 애쓰고 있다. 좋은 책일수록 그 메시지는 더욱 절박하며,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인내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p.85
한 작품을 붙들고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여백 메모를 이용하여 자신의 반응을 느끼고 그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좋다. 작품에 상처를 입히기보다는 동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메모를 하는 의미는 작품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이며, 작품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가의 집필 방식을 음미하기 위해서이다. -p.211
하지만 독자로서의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그저 작가의 말과 생각을 흉내 내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독자는 자신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고, 역설적이게도 작가의 비전을 따를수록 `진정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그렇게 따르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존경과 존중의 마음으로 작가와 씨름하는 것이다. -p.222
관객은 일종의 확대된 운명, 혹은 배우의 운명을 판결한 법관 -p.341
독창성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독창성과 겨루어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나약하든 유력하든 혁신적이든 세상 모든 사람들을 우리와 동등한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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