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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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나마 읽어서 다행이다. 책을 구입한 건 꽤 오래전 일인데도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표지와 제목에 홀려 책을 구입했으나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적 글쓰기를 구현하고 있는 김선영의 소설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초반부에서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2012년 4월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책으로 출간되었다. 소설가, 라고는 하나 김선영 작가가 출간한 작품은 고작 4권에 그친다. 청소년 소설을 쓰고 싶어했던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거듭 책을 출간하며 더 나은 작가로 성장하지는 못한 듯하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몰입해서 읽을 수는 있지만 청소년 사이의 유대나 우정, 문제해결 능력을 빼고 바라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소설이다. 작가가 인지하고 있는 시간의 개념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화적 성격이 제대로 융화되지 않았던 점이 특히 아쉽다.


2012년 당시 이 작품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꼽힌 이유는 '어줍잖게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을 뿐더러, 청소년인 척 쓴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였다. 하지만 너무 십대처럼 보이고 싶었던 과한 욕심이 물결(~)과 이모티콘(^^), 넷용어(~뎅, ~용)를 사용하게 만들었고 그런 식의 문장 구사력과 어휘 사용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소설이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N소설체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는데 사소한 연애담이나 일진놀이가 배제된 소설이라는 점만 빼면 큰 구별점이 없는 소설인 것이다. 그 말인 즉, 당시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심사위원들의 눈에는 이 작품에 '청소년의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보았고,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통상적인 1318세대들에게 읽기를 권할 정도로 좋은 소설은 아닌 것이다.


『시간을 파는 상점』의 장점은 '시간'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거대 담론이자 가장 까다로운 소재인 시간 개념과 시간의 중요성, 상대성을 어떻게든 이야기에 녹여내려 한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과 함께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말, 때론 시간에 발목 잡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온다는 말 등 시간에 관련된 상이한 관용어나 속담, 경험담을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로서 체득한 시간 이론이나 개념을 녹여내려 한 점은 가상하나 그러한 것들이 서사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단점으로 남는다. 김선영 작가는 그리스 신화의 태초신인 우라노스(하늘)와 가이아(대지) 사이에서 태어난 티탄족의 막내 아들 크로노스를 주변 모티프로 가져왔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가이아의 부탁을 받아 거대한 낫으로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버린 신으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의 아버지이기도 한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의 저주를 받아 아들 제우스에 의해 지하 세계인 타르타로스에 갇히고 만다. 이 소설에서는 크로노스를 시간을 관장하는 신으로 두어 '상점'의 대표 아이콘으로 사용했는데, '시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크로노스와 온조를 동일선 상에 놓은 것 같지만 둘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제목의 의미가 단순한 심부름 센터의 역할에 그쳤다는 점도 아쉽다. 10대의 온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낸 것이 심부름 센터를 벤치마킹 한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것은 억지스러우나 신선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온조가 내건 윤리 기준과 운영 방침은 어수룩하기 짝이 없었고, 여러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대처하고 반론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어린 온조가 얼마나 잘 대처하는가를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온조만의 방식으로 '그런 류의 상점이 아니다'라고 어필할 수 있는 특이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일차원적인 사유로만 밀어 붙이기만 해서 답답해졌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가게라고 생각할 여지가 충분하고, 그런 오해에 대해 온조 나름대로 반론을 펼치거나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너무 미약하다. 그저 울거나 화를 내거나,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것은 좋지 않은 태도다. 또한 온조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소방사였던 아버지의 죽음이 한 순간에 가계를 휘청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너무한 비약이다. 단지 '엄마 혼자 일 하는 게 힘들고 피곤해 보여서'라는 이유만으로 온조가 아르바이트를 결심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온조가 효녀라는 컨셉이 모든 것을 설득시켜주리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서사가 가지는 힘보다는 개개의 사건이 가지는 몰입력이 좋은 소설이었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유기적 흐름도 관계도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시간'에 대한 꾸준한 어필과 개념적 설명 같은 것들이, 개개의 사건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주변을 되돌아보는 온조의 태도가 따뜻하게 다가온 소설이다. 김선영 작가는 온조만큼이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작가임에 틀림없다. 지나치게 손을 많이 내밀고, 지나치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지나치게 긍정적인 어투로 모든 것을 감싸려 하는 데 부러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십대들의 언어를 무리해 따라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건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겨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시간'이라는 모티프 아래 하나의 서사로 구성되지 못했다. 에피소드 각각의 흥미요소와 재미요소, 교훈과 몰입력은 상당했지만 단지 그 뿐. 서사 전체적인 흐름이나 맥락, 설득력은 상실된 불완전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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