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자전적 소설입니다. 서늘한 가을바람 아래에서 읽어내려가기 좋은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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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이전, 쓰는 시간을 어떻게 견뎌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설가는 문장가와 이야기꾼으로 나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단편을 읽어 오며 ‘손보미 작가는 문장가에 가깝다‘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등단이 되기 이전과 이후 글을 쓰는 시간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견뎌오셨는지, 보내오셨는지 여쭙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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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사전
박성우 지음, 김효은 그림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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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rhyuda/220968770997




 친구를 대화를 하다가, 글을 쓰다가, 혼자 생각을 하다가 문득 답답해지는 때가 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한 단어로 꼬집어 설명할 수 없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가 그렇다.


 알고 있는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은 것이라면 그와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거나 단어의 뜻을 전달하면 된다. 하지만 단어-뜻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없는 상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서 찾아온다.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순간이 닥칠 때, 그 뜻을 내포하는 단어들 중 현 상황에 가장 적절한 단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대화를 중단한 채 고민에 빠진다.




 『아홉 살 마음 사전』은 그런 답답함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책이다. 일정 수준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기 위해 어릴 때부터 적절한 감정 단어를 익히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그런데 왜 아홉 살이어야 했을까? 책을 읽는 사람이 꼭 아홉 살 아이일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받아들여가며 거기에 걸맞는 단어를 찾아 나가는 '가장 어린 나이'임을 생각하면 독자 대상이 아홉 살인 것도 이해가 된다.


주1 『아홉 살 마음 사전』은 2015년 개정교육과정을 고려해 출간 된 교과연계도서이다. 올해 초등 1, 2학년부터 개정교과서로 수업이 진행되며, 개정교과서에는 국어 교과 역량 중 의사소통 역량을 키우기 위해 '감정 파악/표현하기'가 제시되어 있다.





왼쪽 페이지와 오른쪽 페이지가 한 세트
 목차 구성이 상당히 재밌는 책이다. 
아홉 살 수준에 맞춰 가장 많이 사용될 것 같거나 궁금해 할 것 같은 '마음'에 관련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긍정적 단어와 부정적 단어를 부러 나누지 않고 ㄱ~ㅎ순으로 작업되어 있는 것은 '사전'이라는 책의 컨셉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목차는 ㄱ-ㄴ, ㄷ-ㅁ, ㅂ, ㅅ, ㅇ, ㅈ-ㅊ, ㅌ-ㅎ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음 단어 종류가 많은 ㅂ, ㅅ, ㅇ만 단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 담긴 단어는 총 80개. 박성우 시인이 글을 쓰고, 김효은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페이지 구성은 단순하다. 왼쪽과 오른쪽이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방식이며, 한쪽에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상황이 그림+글로 나타나 있고, 나머지 한쪽에는 같은 단어를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제시되어 있다. 또, 단어 표기는 양쪽의 상단에 표기되어 있는데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는 왼쪽 상단에 표기되어 있고고, 오른쪽 상단에는 해당 단어의 뜻과 단어의 기본형이 표기되어 있다.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는 단어들
 『아홉 살 마음 사전』이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 교사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럴 만하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만 줄줄이 나열되어 있으니 말이다. 또, 교실 생활 중 적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 많다. 예를 들면 억울해, 불쾌해, 부담스러워와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내가 하지 않은 나쁜 일의 행위자로 의심 받거나, 경험/실력 없는 아이의 맨스플레인에 시달리거나, 요구하지 않은 관심을 받는 일은 교실 생활을 하면서 드물지 않게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어휘 단어표를 만들어서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책에 나와 있는 단어를 가지고 상황을 만들어 보거나 자신이 경험한 상황을 친구들과 함께 나눠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활기를 되찾는다. 긍정적인 사건보다 부정적인 사건에 더 강하게 공감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데, 부모의 규제나 억압으로 인해 외부 표출이 불가능했던 부정적 감정일 수록 그렇다. 그리고 이런 식의 공감은 외부자의 간섭/조율을 통해 감정의 카타르시스로 이어진다.





아홉 살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아홉 살 마음 사전』에 수록된 단어 중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 단어가 있었다. 바로 '정겹다'다. 124쪽과 125쪽에 표기되어 있는 '정겹다/정겨워 : 정이 넘칠 만큼 다정하다'는 2017년을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기도, 공감을 얻기도 어려운 단어다. 요즘 아이들에게 정겨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있는 행동을 보여준 어른은 몇이나 되며, 아이들 간 '정'을 느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내어준 경험은 얼마나 되는가.

 정겹다는 건 '고향'이라 부를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된 상태에서, 그 장소를 함께 향유한 동년의 지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을 때나 적용할 수 있는 단어다. 선행된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겹다는 단어를 익히고 사용한다 한들 단어가 지니고 있는 느낌을 살릴 순 없다.

 심지어 왼쪽 페이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민속놀이 체험 시간에나 한 두번 쳐볼까 말까 한 전통 팽이다. 저런 팽이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도 아니거니와 원생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아니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그림
 '정겹다'라는 단어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그림을 내보였지만 김효은 작가의 그림은 참 사랑스럽다. 마음 속 한 구석을 간질이는 맛이 있다. 색연필, 크레파스로 작업했을 것 같은 이 그림들은 80개의 단어에 제시된 표준 상황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다. 더할나위 없이 좋다.

 이들은 이 상황에서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싶어 할까? 아이들은 이 단어를 어떤 상황에 적용시키려 할까? 아이들은 이런 마음을 언제 느껴봤을까? 등 다양한 질문을 생각나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정독하라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필요가 없는 책이다. 시선이 가는 단어를 찾아 해당 페이지를 열고, 적용 가능한 상황들을 읽고 자신이 경험한 상황을 덧붙이거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족하다.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이, 그리자신이 느낀 감정/마음에 이름을 붙여주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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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비교할 때 SF소설의 지평이 조금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문단에서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어 생각하거나 바라보는 관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처럼 장르소설을 두고 ‘예술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이는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몇몇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오롯한 순문학도 오롯한 장르문학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의 장르적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고, 언젠가는 경계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소설의 장르적 경계가 먼 미래에도 유지될 거라고 보시나요? 또 국내 문학계 내 순문학 vs. 장르문학을 나누어 생각하는 사고나 관점 변화가 어떤 방향(더 나은 쪽, 더 나쁜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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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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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것은 애도하는 노래. 내 자리에 서지 못한 당신을 위해, 그런 당신을 오롯하게 바라보지 못한 나를 위해, 그 깊은 밤 당신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체한 듯 갑갑한 명치를 주먹으로 문지러야 했던 나를 위해, 그리고 육체가 없어 이 땅을 딛고 서보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바치는 시 혹은 서사문. 소설도, 산문도, 시도, 노래도, 수필도 아닌 그 어떤 것.


  당신만을 위한, 그러나 나 자신을 위한, 아주 하얗고 하얀, 슬픔을 담은 모든 흰 것들.


  『소년이 온다』를 내고 그 소년을 완전히 떠나보내기도 전에 받아들여야 했던 '그녀'였거나 '그녀'였을 수 있는 어떤 '것'을 위해 쓴 글들이다. 당신이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 같은 게 모여 쓰여진 글들. 하지만 그녀가 적어낸 어떤 시보다, 어떤 소설보다 슬픔의 강도가 쎈 『흰』을 읽었다.



온갖 흰것들


  아주 슬펐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글들. 천천히 읽어내려가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지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고, 그 거리를 걷는 당신의 심정과 시선과 바람과 시간과 냄새가 가깝게 느껴져 더 마음이 무거웠던 시간이었다.


  가끔 노래했다. 몸을 빌려주려 애쓰는 작가의 노력이 느껴질 때면 아무의미도 없는 노래를 불렀다. 가사가 없는 노래를 코나 입이나 목으로 불렀다.


  애도의 과정은 길을 걸으며 진행된다. 어떤 존재를 느낀다는 사례를 전해듣고난 그 날을 기점으로 애도는 시작된다. 그녀가 내가 되고 내가 그녀가 되던 그 순간, 공중으로 떠올라버린 작가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던 그 순간, 오직 영혼으로만 존재했던 그녀가 단단한 땅 위에 발을 붙이던 그 순간 나는 왜 울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베냇저고리가 수의가 되었다는 말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눈가가 촉촉했는데, '그녀'가 '나'의 경계를 넘어 온 순간 어, 하고 가로막히는 지점이 생겨버렸다.


  그러나 경계 너머에 있는 모든 것들이 희고 희어서, 그 흰것들의 집합이 너무나도 눈부시게 슬퍼서 뒤바뀐 몸의 주인을 지켜보며 체증이 내려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 밤의 한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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