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사전
박성우 지음, 김효은 그림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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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를 대화를 하다가, 글을 쓰다가, 혼자 생각을 하다가 문득 답답해지는 때가 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한 단어로 꼬집어 설명할 수 없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가 그렇다.


 알고 있는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은 것이라면 그와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거나 단어의 뜻을 전달하면 된다. 하지만 단어-뜻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없는 상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서 찾아온다.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순간이 닥칠 때, 그 뜻을 내포하는 단어들 중 현 상황에 가장 적절한 단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대화를 중단한 채 고민에 빠진다.




 『아홉 살 마음 사전』은 그런 답답함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책이다. 일정 수준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기 위해 어릴 때부터 적절한 감정 단어를 익히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그런데 왜 아홉 살이어야 했을까? 책을 읽는 사람이 꼭 아홉 살 아이일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받아들여가며 거기에 걸맞는 단어를 찾아 나가는 '가장 어린 나이'임을 생각하면 독자 대상이 아홉 살인 것도 이해가 된다.


주1 『아홉 살 마음 사전』은 2015년 개정교육과정을 고려해 출간 된 교과연계도서이다. 올해 초등 1, 2학년부터 개정교과서로 수업이 진행되며, 개정교과서에는 국어 교과 역량 중 의사소통 역량을 키우기 위해 '감정 파악/표현하기'가 제시되어 있다.





왼쪽 페이지와 오른쪽 페이지가 한 세트
 목차 구성이 상당히 재밌는 책이다. 
아홉 살 수준에 맞춰 가장 많이 사용될 것 같거나 궁금해 할 것 같은 '마음'에 관련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긍정적 단어와 부정적 단어를 부러 나누지 않고 ㄱ~ㅎ순으로 작업되어 있는 것은 '사전'이라는 책의 컨셉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목차는 ㄱ-ㄴ, ㄷ-ㅁ, ㅂ, ㅅ, ㅇ, ㅈ-ㅊ, ㅌ-ㅎ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음 단어 종류가 많은 ㅂ, ㅅ, ㅇ만 단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 담긴 단어는 총 80개. 박성우 시인이 글을 쓰고, 김효은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페이지 구성은 단순하다. 왼쪽과 오른쪽이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방식이며, 한쪽에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상황이 그림+글로 나타나 있고, 나머지 한쪽에는 같은 단어를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제시되어 있다. 또, 단어 표기는 양쪽의 상단에 표기되어 있는데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는 왼쪽 상단에 표기되어 있고고, 오른쪽 상단에는 해당 단어의 뜻과 단어의 기본형이 표기되어 있다.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는 단어들
 『아홉 살 마음 사전』이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 교사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럴 만하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만 줄줄이 나열되어 있으니 말이다. 또, 교실 생활 중 적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 많다. 예를 들면 억울해, 불쾌해, 부담스러워와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내가 하지 않은 나쁜 일의 행위자로 의심 받거나, 경험/실력 없는 아이의 맨스플레인에 시달리거나, 요구하지 않은 관심을 받는 일은 교실 생활을 하면서 드물지 않게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어휘 단어표를 만들어서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책에 나와 있는 단어를 가지고 상황을 만들어 보거나 자신이 경험한 상황을 친구들과 함께 나눠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활기를 되찾는다. 긍정적인 사건보다 부정적인 사건에 더 강하게 공감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데, 부모의 규제나 억압으로 인해 외부 표출이 불가능했던 부정적 감정일 수록 그렇다. 그리고 이런 식의 공감은 외부자의 간섭/조율을 통해 감정의 카타르시스로 이어진다.





아홉 살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아홉 살 마음 사전』에 수록된 단어 중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 단어가 있었다. 바로 '정겹다'다. 124쪽과 125쪽에 표기되어 있는 '정겹다/정겨워 : 정이 넘칠 만큼 다정하다'는 2017년을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기도, 공감을 얻기도 어려운 단어다. 요즘 아이들에게 정겨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있는 행동을 보여준 어른은 몇이나 되며, 아이들 간 '정'을 느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내어준 경험은 얼마나 되는가.

 정겹다는 건 '고향'이라 부를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된 상태에서, 그 장소를 함께 향유한 동년의 지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을 때나 적용할 수 있는 단어다. 선행된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겹다는 단어를 익히고 사용한다 한들 단어가 지니고 있는 느낌을 살릴 순 없다.

 심지어 왼쪽 페이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민속놀이 체험 시간에나 한 두번 쳐볼까 말까 한 전통 팽이다. 저런 팽이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도 아니거니와 원생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아니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그림
 '정겹다'라는 단어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그림을 내보였지만 김효은 작가의 그림은 참 사랑스럽다. 마음 속 한 구석을 간질이는 맛이 있다. 색연필, 크레파스로 작업했을 것 같은 이 그림들은 80개의 단어에 제시된 표준 상황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다. 더할나위 없이 좋다.

 이들은 이 상황에서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싶어 할까? 아이들은 이 단어를 어떤 상황에 적용시키려 할까? 아이들은 이런 마음을 언제 느껴봤을까? 등 다양한 질문을 생각나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정독하라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필요가 없는 책이다. 시선이 가는 단어를 찾아 해당 페이지를 열고, 적용 가능한 상황들을 읽고 자신이 경험한 상황을 덧붙이거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족하다.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이, 그리자신이 느낀 감정/마음에 이름을 붙여주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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