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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애도하는 노래. 내 자리에 서지 못한 당신을 위해, 그런 당신을 오롯하게 바라보지 못한 나를 위해, 그 깊은 밤 당신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체한 듯 갑갑한 명치를 주먹으로 문지러야 했던 나를 위해, 그리고 육체가 없어 이 땅을 딛고 서보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바치는 시 혹은 서사문. 소설도, 산문도, 시도, 노래도, 수필도 아닌 그 어떤 것.
당신만을 위한, 그러나 나 자신을 위한, 아주 하얗고 하얀, 슬픔을 담은 모든 흰 것들.
『소년이 온다』를 내고 그 소년을 완전히 떠나보내기도 전에 받아들여야 했던 '그녀'였거나 '그녀'였을 수 있는 어떤 '것'을 위해 쓴 글들이다. 당신이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 같은 게 모여 쓰여진 글들. 하지만 그녀가 적어낸 어떤 시보다, 어떤 소설보다 슬픔의 강도가 쎈 『흰』을 읽었다.
온갖 흰것들
아주 슬펐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글들. 천천히 읽어내려가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지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고, 그 거리를 걷는 당신의 심정과 시선과 바람과 시간과 냄새가 가깝게 느껴져 더 마음이 무거웠던 시간이었다.
가끔 노래했다. 몸을 빌려주려 애쓰는 작가의 노력이 느껴질 때면 아무의미도 없는 노래를 불렀다. 가사가 없는 노래를 코나 입이나 목으로 불렀다.
애도의 과정은 길을 걸으며 진행된다. 어떤 존재를 느낀다는 사례를 전해듣고난 그 날을 기점으로 애도는 시작된다. 그녀가 내가 되고 내가 그녀가 되던 그 순간, 공중으로 떠올라버린 작가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던 그 순간, 오직 영혼으로만 존재했던 그녀가 단단한 땅 위에 발을 붙이던 그 순간 나는 왜 울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베냇저고리가 수의가 되었다는 말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눈가가 촉촉했는데, '그녀'가 '나'의 경계를 넘어 온 순간 어, 하고 가로막히는 지점이 생겨버렸다.
그러나 경계 너머에 있는 모든 것들이 희고 희어서, 그 흰것들의 집합이 너무나도 눈부시게 슬퍼서 뒤바뀐 몸의 주인을 지켜보며 체증이 내려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 밤의 한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