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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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들. 그리고 해설자의 설명이 맘에 들었다.  

세계는 붕괴하려는 경향이 있다 

삶은 이야기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김연수 소설을 구성하는 세가지 명제라고.
이상한 표현이지만, 다 보고... 이 작가는 전 세계를 다니며
"곧 모든일이 동시에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수잔 손택)"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개인을 쫓아다니며 바로 내옆에서 이야기를 하는것같은, 로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동시대의 작가라고들 표현을 하나 모르겠지만,
또는 시대적인 사건들을 개인화 시키는 일에 능통한 사람이랄까. 어쩌면 책 속 <달로 간 코미디어>의 여자 피디가 말한 것처럼
자기의 인생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편집' 하는 일을 가진 여자가
사실은 그들의 이야기 사이의 공백에서 느끼는 안타까움. 그들의 목소리와 목소리 사이에서 기침이나 한숨소리,
침 삼키는 소리 같은걸 찾아내서 없애는 일에서 느끼는 외로움...
소설을 보며 작가의 그런 외로움, 그걸 지우려고 노력하는 욕망 같은 걸 느꼈다...고 하면 건방지겠습니까?  

어처구니없는, 우연이라고 하기엔 모든게 벌어질거라고 약속된 것처럼 터지는 사건들속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그 '공백'을 메우는 작업.
외롭지 않으려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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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오바마 북클럽 1
조지프 오닐 지음, 임재서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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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는 피곤했다. 피로감.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에 만성적인 병증이 있다면 그것은 피로감이었다. 직장에서 우리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자랑했지만, 집에서는 최소한의 활력조차 보이기 힘들었다. 밤마다 우리는 원기를 회복한 듯싶었지만, 아침이면 다시 악성 피로에 물들며 깨어났다. 제이크를 침대에 눕히고 나면, 우리는 말없이 양갓냉이 샐러드와 중국식 국수를 먹었는데, 둘 다 포장 박스에서 국수를 꺼낼 힘조차 없었다. 차례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꾸벅꾸벅 졸았고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스르르 잠이 들었다. 레이철도 피곤했고 나도 피곤했다. 진부한 일상사였지만, 우리의 문제 역시 진부했으니 여성 잡지의 소재로나 적합했다. 모든 삶은 결국 여성 잡지의 상담란으로 좁혀지게 마련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_p36

쓸쓸하다. 뭔가 치열하게 살아도 공허하다. 결국, 한순간 모든게 날아가버릴거라는 냉소만 남는다. 

소화해나기 쉽지 않은 책이다. 오바마가 읽어서 더 알려졌다지만, 뉴요커도 아니고 어쨌든 국적을 가진 이민자도 아니고 같이 숨쉬는 공기, 먼지, 이야기를 공유해야 더 호흡하기 좋은 책이다. 어쩌면 그 안에 911이라는 전 세계적인 비극이 자리잡고 있고 그 충격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긴장이 있다. 고맙다면, 그동안 미화되고 포장되어오기만한 그 도시의 서늘함을 엿본 느낌이랄까. 모두가 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방황하고, 또 방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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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리파이스
곤도 후미에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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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다. 일본어와 프랑스어가 뒤섞인 고함소리, 다가오는 헬리콥터 소리, 오토바이 엔진소리.
귓전에서 누가 소리 지르는데도 아무것도 내 마음속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열에 녹은 아스팔트에 붉은 피가 조금씩 퍼져나갔다.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꺽인 목과 내팽개쳐진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손. 
망연히 우뚝 선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하늘만 조금 전과 다름없이 푸르렀다.  

가르쳐줘.
어디서부터 다시 하면 이런 결과를 피할 수 있는지.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지.

  

오프닝씬이 압도적이었다. 마치 내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듯 생생하고 어제 본 영화처럼 칼라풀했다.
그리고 궁금해 미쳐서 그 하늘아래로 뛰어들어갔다. 저 붉은 피의 주인은 누구인가. 저 붉은 피를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후회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희생을 한 사람은 누구인지. 

스포츠드라마에 있는 공통적인 요소라면, 인간이 가진 모든 본능의 폭발을 이기고 드러나는 인간승리, 그리고 감동.
여러 스포츠장르별로 차이는 분명히 있겠지만, 신사스포츠라고 불리우는 자전거 로드레이스라는 생소한 스포츠는
희생 이라는 잔인하고 가혹한 것이 요구된다. 팀을 위해, 에이스를 위해 맨 앞에 있어도 게이트에 뛰어들지 않아야하는
승리는 모두가 나누지만, 기억하는 것은 한 사람 뿐이라는 것을 합의한 스포츠.
그 승리의 존엄함을 알지 못하면, 무참히 밟는 것도 서슴치 않는 비정함.

 "바보같은 소리 말라고. 우리는 혼자 달리는게 아니라고 하더라.
비정하게 어시스트를 이용하면서, 그들의 마음과 승리에 대한 꿈을 먹으면서 달리는 거다.
그러니 그걸 더럽히는 녀석은 용서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의 승리를 더럽히는 건 어시스트르들의 희생도 더럽히는 일이라고"
  

그리고 선배는 말했다. "가라"고. 

책을 다 읽고 나니, 막 달리고 싶어진다. 그리고 번역자가 말한대로 한 일본 서평가가 "미담"이라고 한 이야기에 대해
충분히 공감이 간다. 나도 이 기회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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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 이야기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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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몇번째로 말하자면, 나도 "요시다 슈이치 팬입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낳은 작가이자, 내 친구는 요시다 슈이치가 이상형이라고 하니... 그의 인기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근데 그녀가 말했다. "이번 작품은 쫌 아니다"  

아예 표지에 "청춘소설'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중요한건 나도 내친구도 더 이상 청춘성장소설에 관심가질 나이도 아니거니와, 엇비슷하게 가져봤던 추억거리를 가지고 좀더 화려하게, 좀더 어른스럽게 말하며 그당시에 놓친 걸 후회하고 더듬어가는 이야기들은 10년전에 다 뗐다. 

하지만, 올해 만난 요노스케가 난 너무 고마웠다.  

이젠 매일매일이 슬럼프인 직장, 하루하루 일하는 것이 그저 버티기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생활, 순진하고 위험했던 그 시절을 견뎌 우린 도대체 뭐가 된 것일까. 그 어느때보다 많은 사건들을 만나고, 싸우고 화내고 폭발하면서 우린 내도록 변함없이 그저 지쳐만 가고 있을뿐인 것같다는 생각은 오래되었다. 개인적인 경험탓일수도 있겠다. 밤늦은 지하철역, 심하게 싸우는 두 남녀를 둔채 나는 그저 뛸수밖에 없었고 집에 돌아와 내도록 남자에게 주먹질을 당하던 여자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떤 사람이 어떠한 계기를 통해 변화하는 다양한 내면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런 내용에 흥미를 갖고 있고, 등장인물에 투영시켜서 쓰고자 한다”  - 요시다 슈이치

요노스케는 그렇게 탄생되었다고 한다. 나는 변화하고 있는가. 나는 하루에도 몇십개씩 벌어지는 사건에 어떤 진정한 흥미와 변화를 가지고 있는가. 정말이지, 버라이어티한 인생을 원하면서도 나는 스스로 변해가고 있지 않고 안으로 곪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 요즘이었다. 책에 쓰인대로 구원받은 느낌까진 아니다. 포근하지도 않다.  

그저 다시 생각할 뿐이다. 요노스케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나 같은 놈도 힘을 낼수있을까?" 

"너 하기 나름이겠지. 어느쪽이든 응원할게" 

어느쪽이든 응원받으며, 살아가는 시간이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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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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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제목이다. 작품의 내용을 함축한 제목이라기보다, 소설의 형식을 표방하는 제목인데 그게 또 스토리의 날을 벼리는 역활을 하고 있다. 멋지다!  

단순히, '고백'이라는 의미가 숨긴 것을 밝힌다 라는 의미도 있지만, 카톨릭에서는 흔히 고해성사라고도 하는, 자신의 죄를 사함을 받기 위해 그 죄를 솔직히 말하는 일을 뜻한다는 건, 책을 읽고난 지금 크게 와닿는 부분이 있다.  

자기 반 학생에게 딸이 살해당했음을 고백하는 여선생을 시작으로 사건의 연루자들이 밝히는 '죄'는 밝혀지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담담히 토로하는 충격의 여파가 훨씬 커, 심장마비가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살해자' 학생들에게 교사가 아닌 어머니로써 가한 '제재'는 글 초반부터 심장의 중심에 큰 돛을 내린 채 꼼짝 못하게 한다. 말못한 학창시절의 잔인함도 떠오른다. 저지른 죗값, 말못한 죗값. 마치 부모님이 심하게 싸움을 하던 어느 날, 울며 써내려간 일기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다 없어지길 바랬고 그건 나의 실행하지 못한 죄이며, 내 고백은 여전히 유효함을 알게되는 서늘한 기분이 든달까.  

되도록 스토리를 모르는 것이 좋다. 교사가 아닌 어머니로서 딸을 죽인 제자를 단죄하다! 라는 광고카피는 마치 상당히 무거운 사회소설을 마주할 것같은 기분도 있었는데, 한번 시작하면 ... 다시 돌아볼 틈도 없이 그 서슬퍼런 고백속으로 빨아먹힌다. 

번역자의 글을 보다가, 작가가 모든 캐릭터의 이력을 다 정리하고 난 다음에야 글쓰기를 들어간다고 들었다. 뭐, 대부분의 작가들이 캐릭터라이징 작업을 기본적으로 하기야하겠지만, 이 여선생의 반 아이들의 '생활기록부'가 궁금해죽겠다.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 누나들이 궁금해죽겠다. 그리고 한마디 더. 엔딩... 정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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