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의나 할까? -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회의의 기술
김민철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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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따라오는 관념 같은게 있다. 어느 순간 뇌리에 스치며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다. 아르키메데스 처럼 `유레카`라 외칠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머리 하나로 승부하는 광고 기획자, 게다가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모여있는 TBWA Korea가 만든 최고의 광고의 첫 아이디어는 역설적으로 보편적이다. 내 상상을 보기좋게 망상으로 만든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아이디어와 창의력 넘치는 광고의 간극은 어떻게 메꾸는 것일까? 그 사이를 연결짓는 원동력은 바로 아이디어를 `진화`시키는 회의다. 평범한 전제에서 특별함을 볼 수 있는 안목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가정한다. 팀장부터 막내까지 모두 회의에서 평등하게 목소리를 낸다. 어느 의견이라도 놓치지 않게 귀 기울여 듣는다. 고참의 노련한 생각과 신참의 돌발한 생각들이 비비고 섞이는 상황은 짐작만 해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본 사람이면 "말이야 쉽지 어쩄든 윗 사람 눈치 보는건 당연한거 아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테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통념을 보기좋게 부실만큼 대담하다. 팀장을 포함해서 5명이 한 아이디어에 모두 긍정적인 의견을 내더라도, 1명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상황이라면 즉각 피드백을 한다. 팀장은 과감하게 "이 방안의 한 사람도 설득 못하는 아이디어라면 문제가 있겠지."라는 멘트로 아이디어를 보류 시킨다​, 모두 낙관화는 회의가 진행되어도 한명의 의견도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버리지는 않는다. 회의록을 읽으면서 "이 친구 너무 나서는거아냐?"라고 느낀 내가 부끄러워진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더 멋진 아이디어로 순항했다. 아이디어를 살려내는데 1인자라면, 기미가 보일시 즉시 죽이는데도 뒤쳐지지 않는다는 용감한 방식이다.

 

 

회의 초반부터 정말 인상 깊었던 점을 보았다. 제품의 광고를 기획할떄 생각이 망망대해​에 표류하지 않기 위해 초반에 주제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하게 잡는다. 브랜드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여 기본을 알고 타 브랜드에 대해 비교하여 돋보이는 법을 깨닫는다. 우리는 어떤 일이라도 목적이 있어야 행한다. 목적을 빠르게 짚어내는 능력, 하지만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하는 능력은 본 받을만 하다.​ 그러니 유명인의 파워를 앞세워 정작 브랜드의 진면목은 보여주지 못하는 광고시장 속에서도, 확실히 보물이라는게 느껴진다. 그들이 기획한 `진심이 짓는다`, `생각이 에너지다`는 내 관념을 바꾸고도 남은 메세지다. 이게 요즘 보면 아이러니 한게 현재 광고시장은 (내가 아는 한) 굉장이 유치하고 웃길려고 애를써서 대중들에게 각인되려 한다. 안영미 춤추는 CF (뭔 브랜드 광고인지 기억도 안난다.)랑 김보성이 나오는 CF를 보면 단박에 느낌이 올 것이다. 나는 이들의 심도깊은 광고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들은 한 줄의 카피가 나오기 까지 한 달의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깊은 철학이 담겨있으니 무의식적으로 TV 화면을 쳐다볼때도 좋은 광고가 나오면 의식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게 좋던 싫던 그들은 내 소비 패턴을 좌지우지 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거겠지. 참 영리하다.

 

 

`기획 초반, 정체성을 잡는다.` 거대하고 굉장하다고 느껴지는데 또 실상을 보면 그렇지 않다. 어제 퇴근하면서 느꼈던 것들, 인터넷에서 재미있게 본 유머 자료집, 최근에 유행하는 영화에서 주제와 관련된 것이 있다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다듬어 간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점은 광고 기획자의 시선은 정말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또한 충분히 보고 들었을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캐치한다. 야속하게 원대한 기획의 원석은 그들의 손에만 들어간다. 또한 주제에 대한 레퍼런스의 범위가 매우 크다는 점도 정말 대단하다. 한 광고를 만들기 위해 참고하는 책, 명언, 영상을 보면 그들의 지식 기반이 매우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의성 키우고 싶다고 창의력 관련 책 읽고 기획력 키우고 싶다고 기획력 관련 책 읽으면 단편적인 지식만 쌓이는 것이다. 그 후에는 서로 아이디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의한다. 잡담 없이 매우 밀도 높은 발언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제한 시간은 1시간. 길수록 늘어지고 짧을수록 값진게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시간이다. 아이디어를 진화시키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다보면 `보편적인 새로움`을 담은 광고가 탄생한다. 절대로 아이디어는 `탄생`이 아니다. 아이디어는 `변종`이다.

 

 

 너무가 자연스럽게 성공으로 흐르는 서사를 보고 사뭇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들의 머리가 능력있다는데 어쩌겠는가. 인문학을 중시하는 박웅현의 저서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핵심은 하염없이 기다리는 `로또 1등`이 아닌 `노력`과 `단련`에 있다. 일상에서 새로움을 찾도록 노력해야 하고 모두 똑같다고 할때 특별한 것을 보도록 단련해야 된다. 

 창의력에 대한 간결한 해답, 왕도는 없다. TBWA Korea에는 공대생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ps. 막줄 정보때문에 갑자기 광고 회사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기획자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요즘이다. 현실은 공대생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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