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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서재 - 진화하는 지식의 최전선에 서다
장대익 지음 / 바다출판사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자 출신인데도 참 글 잘 쓰는 사람이 있다. 논문에서나 볼법한 딱딱한 어투와 한국어인데도 이해가 안되는 어휘들이 아니라 대중들을 위해 친절한 글을 쓰는 과학자들 말이다. 그들에게는 교양서보다 전문적인 글을 쓰는 게 쉽다고 한다. 같은 분야끼리 통용되는 말을 버무려서 실험한 내용을 담으면 되는데, 교양서는 과학에 상대적으로 이해가 필요한 대중들을 상대하기에 글의 정도가 다르다. `단백질 합성`이란 어휘를 사용하는 건 과학자들끼리는 가능하지만, 교양서에서는 `DNA는 생산자고 RNA는 택배 기사 같은 운반자…` 라고 하는 것 처럼 긴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긴 글은 또 잘 안 읽히고 재미가 없다. 설명된 문장을 잘 압축해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말 과학자가 교양서를 쓰는 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며, 그 고단함을 이겨내어 글을 매력 있게 써내려가는 분들은 대단하다.
이 책의 저자 장대익 교수도 굉장히 글을 잘 쓰는 편에 속한다. 베스트셀러 저자 최재천 교수의 제자인 점도 한몫했을까?
필력에 관한 장대익 교수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장대익 교수가 `다윈의 식탁` 이란 책을 썼는데, 진화론의 위대한 석학들이 한곳에 모여 토론을 했다면 벌어질 논쟁을 가상으로 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과도 같은 픽션이었고 이 글을 본 한 교수가 장대익 교수에게 연락했다. 이 대화의 원문을 찾을 수 없어 혹시 원문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본 것 이었다. 교수도 장대익 교수의 글을 실제 대담집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만큼 과학자가 착각할만큼 글을 잘 쓴다는 건 틀림 없는데, 세계적인 석학인 대니얼 데닛과 최재천 아래에서 지낸 것에서 얻은 상당한 지식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다윈의 서재`도 픽션 소설 같은 구성이다. 대니얼 데닛을 사회자로 앉히고 주마다 최고의 과학 서적을 쓴 저자들을 게스트로 모셔 펼치는 토크쇼. 그리고 한국 라디오 작가가 그것에 영향받아 장대익 교수를 섭외해 한국판으로 만든 장대익의 서재에 관한 강연. 여기까지 출연자는 모두 실제 있었거나 현재 있는 인물들이나 이야기는 모두 픽션이다. 난 이 점이 가장 좋았다. 가장 잘 팔리는 책 분야가 무엇인가? 바로 `소설`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소설을 더 재미있어한다. 하지만 `과학` 분야는 출판계에서 그다지 잘 팔리는 분야는 아니다. 바로 저자는 이 두 개를 혼합한 것이다. 재미없어하는 것들을 재미있는 것으로 표현 한 책. 대중들이 느끼는 과학의 낯섦과 따분함을 단번에 격파시킬 병기를 만들어냈다.
이야기는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다윈의 다운 하우스에 저명한 인물들이 초대된 것에서 시작한다. 다윈의 서재 앞에서 공영라디오 작가와 대니얼 대닛이 우연히 만나고 `지금 다윈이 살아있다면 서재에 어떤 책을 꼽아 놨을까?`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라디오 프로 `다윈의 서재`를 구상한다. 대니얼 대닛도 흥미로워하며 흔쾌히 수락하고, 세계적 석학들을 모시는 토크쇼가 만들어진다. 그 후로 쭉 20회 토크쇼가 이어진다. 사회자가 마지막에 이벤트를 공지하고 특집이라고 대담이 야외에서 진행되듯이 현실감을 느낄 수 있게 깨알같이 신경을 쓴 부분도 있다. 뒤 내용부터는 이야기의 서술보다는 과학적 설명이 핵심이다.
여기 소개된 책 중에는 어려워서 못 읽었던 책들이 더러 있었는데도, 저자의 설명을 통해 쉽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쉬운 과학책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이 책이 딱 그 갈망에 부합하는 것 같다. 소설의 매력과 과학의 우아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56개의 책을 소개하니 과학 책 백과사전 같은 아우라도 느껴진다. 유명한 과학책을 읽기 전 사용설명서 같이 읽으면 정말 좋을 듯하다. 하지만 저자가 진화학자다 보니 생물학 쪽 서적이 대다수고 물리학 서적의 추천은 2%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에 추천된 서적들에 더불어 `카오스`나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를 알아보면 좋을 것이다. 또한, 소개된 책 중 논쟁이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 논쟁들도 찾아보면 더욱 풍성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책들을 깊게 이해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낼 수 있었을까? 책 마지막에 그 실마리를 직접 제공한다.
첫째, 책은 저자와의 1:1 대화다. 의심 갈만한 점은 다른 자료를 찾아보고 내 생각을 책에 남겨라.
책에 핵심과 좋은 예시들을 표시하는 수동적인 읽기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다. 책에 집중하여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점을 자세히 파악하고, 궁금하거나 의심 가는 부분은 다른 자료와 비교해보고 내 생각들을 책에 남겨야 한다. 정보 전달이 주목적이 아닌 소설에는 접목하기 힘들겠지만, 비소설에는 접목해볼 만하다.
둘째, 책에 전체적인 내용을 자신만의 내용으로 정리하여 남에게 소개하라.
책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이 머리에 들어왔다면, 그것을 자신만의 글이나 말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또한, 타인에게 소개하면서 피드백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로써 책 읽기가 끝이 난다. 실천하기 힘들거라 생각 할 수도 있으나, 지식에 대한 열망, 책에 대한 지독한 관심이 있다면 정말 좋을거다.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지만 이런 방법을 숙지하면 더 재미있게 책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목 자체가 허구, 다윈의 서재가 아닌 장대익의 서재에서 유쾌하고 내밀한 과학 이야기를 얻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