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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ㅣ 아포리아 14
롤랑 바르트 지음, 류재화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평점 :



이 글은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 기묘하다. 이것은 롤랑 바르트 본인의 자서전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듯이 3인칭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근본을 뒤집는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라는 제목은 탁월하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은 마치 소설 속 인물이 말하는 것처럼 거리감이 든다. 그렇기에 이 글은 진실한 그의 고백이 아니라, 허구의 존재를 분석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저자는 자기지시라는 행위를 설명한다. 구두닦이는 다른 구두닦이에 가서 구두를 닦아야 하고, 미용사는 다른 미용사에게 가서 미용을 받아야 한다. 이 책도 이와 같다. 글을 쓰는 바르트는 글의 대상이 되는 바르트를 관조하며 글을 쓸 수 밖에 없다.
2. 알 수 없는 공간에 들어섰다. 이곳은 어떠한 인과관계나 선형적인 스토리가 없다. 단서들이 무작위적으로 흩뿌려진 미지의 세계이다. 마치 꿈 속을 부유하듯이, 어떠한 완결성 있는 서사를 거부한다. 주제는 파편화 되었으며, 각각은 독립적으로 살아숨쉰다. 이 책은 내용을 넘어서 구성 자체로도 매우 혁신적이다. 텍스트들이 저자의 철학 위에서 조립되고 있는 것이다. 아르고 선원들은 배의 부품을 하나씩 교체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배를 타고 있음에도 그것을 아르고호라고 부른다. 아르고호는 그 이름 말고는 다른 원인이 없는 오브제이다. 우리 자신도 고정된 본질 없이 계속해서 대체되면서 살아왔음에도 우리의 이름으로 불린다. 이 책은 그 삶의 파편들이 모인 '롤랑 바르트'인 것이다.
3. 우리가 자서전을 읽을 때면 그의 사건이나 업적을 기대한다. 무릇 자서전이란 그렇게 쓰여지니까.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언어와 몸이다. 저자가 겪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학문적인 성취가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의 사유를 형성한 언어라는 유기체를 바라보아라. '부르주아'라는 단어는 시대에 따라좋으면서 동시에 나쁜 단어로 쓰였다. 언어는 그 자체로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삶처럼 생동한다. 그에게 언어와의 만남은 신체적 감각이다. 바라보고 만질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내용만 나열하지 않는다. 그의 에세이에는 학창 시절과 가족에 대한 기억이 배어있다. 단순하다. 그의 가장 개인적인 삶이 가장 객관적인 철학을 만들어 냈다.
4. 자신을 3인칭으로 쓰는 글이라면 나 자신을 비판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바르트라는 자신의 권위를 해체시킨다. 그는 바르트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며 독자와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앞서 이 책의 파편적인 특징을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환상으로서의 파편적 단상'에서도 이러한 자신의 전략을 비판적으로 보기에 망설이지 않는다. 형식을 파괴하려는 혁신적인 시도조차 또 다른 질서에 포함될 것이다. 롤랑 바르트를 이 책으로 맨 처음 접했지만 매우 독창적인 텍스트에 감탄했다. 내용 뿐만 아니라 형식마저 일관된 철학으로 쓰여졌다는 점이 그의 깊이를 보여준다. 단지 잉크 속 텍스트가 아닌 유기체처럼 대화할 수 있는 글이 있다면 이런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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