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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미학적 상상력 -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그리고 디지털 문화
에릭 헤르후스 지음, 박종신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5년 8월
평점 :



이 글은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 애니메이션은 현실과 다르다. 새로운 물리적 조건을 가진 인공적인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기존의 질서와 위계를 전복하고, 우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스탠리 카벨 또한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와 다른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곳에 미학이라는 렌즈를 비춘다. 이것은 오락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이란 매체를 통해 미학적 경험을 전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영화와 미학에 관심있는 독자한테는 더없이 소중한 책일 것이다. 그들을 위해 쓰여진 단단한 학술서에 가깝다. 그래서 칸트부터 스티븐 샤비로, 질 들뢰즈, 자크 랑시에르 같이 철학자들의 이론을 인용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저자의 서술은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는 애니메이션처럼 도전적이고 아름답다.
2. 토이스토리를 '기괴함'이라는 미학적 개념으로 탐구한다. 작중 장난감 캐릭터들은 자신의 상품적인 위치와 본질적인 목적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는 상품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장난감이 버려지고 대체되는 걸 보면서 느끼는 그들의 실존적인 두려움. 장난감이 앤디라는 아이에게 사랑받는 걸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소비자가 어떻게 브랜드에게 애정을 느끼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이 사회적 비판에 머무른다면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리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면서도, 만화적인 표현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상쇄시킨다. 이것이 픽사의 작품이 얄팍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을까.
3.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는 '숭고함'에 집중해보시라. 저자에 따르면 이 개념은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왔다고 한다. 압도적인 것에 위대함을 자각하는 경험, 이것이 몬스터 세계의 광활한 산업 단지의 형태로 숭고함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아이들을 겁주고 그들의 비명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는 자연적인 감각에 대한 흥미로운 은유이며, 공포의 대상을 통해 숭고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칸트에 따르면 역동적 숭고함은 자연의 힘과 마주했을 때 발생하는 두려움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기술적인 환경에서도 숭고함을 느낄 수 있다. 몬스터 회사의 겁주기 층은 압도적인 스케일을 보여주며, 기술 인프라가 어떻게 숭고한 존재로 그려지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기술적 이데올로기와 권력의 정당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저자는 이를 비판적 우회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4. 인크레더블은 '환상적'이다. 슈퍼히어로의 초능력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해 그들이 평범한 삶에 융화되도록 강제힌다. 저자는 이를 조르지오 아감벤의 '예외 상태' 개념을 이용하여, 예외적인 존재가 어떻게 일상을 정의하고 규범을 강화하는지 보여준다고 한다. 초능력이 금지된 평범한 중산층의 생활, 작중 캐릭터는 지루함과 의미 없음을 느낀다. 이는 경쟁과 성공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지 않는가. 여기서 저자는 슬라보예 지젝의 주관적 폭력과 체계적 폭력이란 개념을 가져온다. 영화가 개인적인 갈등에 집중하여 자본주의적 질서인 '체계적 폭력'을 간과하게 만드는 방식을 은유한다는 것이다. 픽사 영화는 시장 논리로 만들어진 상업적인 상품이면서도, 역설적으로 현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우화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깊이가 남다른 책은 오랜만에 읽지 않았나.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심오한 예술 형식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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