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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서양
니샤 맥 스위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평점 :



이 글은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역사에 서양사라는 주제는 너무나도 익숙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는 위대한 문명의 계보. 우리는 학창 시절 내내 그렇게 배워왔으니까요. 또 하나의 거대한 담론을 늘어놓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니샤 맥 스위니의 <만들어진 서양>은 고고학자답게 유물을 발굴하듯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생각의 지층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우리가 교양서에서 기대하는 점을 정확히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예상을 뛰어넘는 지적인 충만함을 선사하는 놀라운 책입니다. 이 책은 서양의 역사를 알려주기보다, 서양이라는 '관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용되어 왔는지를 집요하고도 우아하게 추적합니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거대하고 추상적인 역사를 14명이라는 인간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는 점이에요. 마치 잘 만든 역사 옴니버스 시리즈를 보듯 우리는 각 인물의 어깨 위에서 그들의 눈으로 시대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헤로도토스를 흔히 역사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그를 고향에서 쫓겨난 아시아계 이민자이자 다문화주의자로 재조명합니다. 그의 눈에 비친 아테네의 헬레네스 우월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프로파간다와 놀랍도록 닮아 있죠. 로마 제국의 황녀 리빌라가 자신을 유럽의 계승자가 아닌 아시아 난민의 후예로 포장하며 제국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장면은 우리가 서양이라는 틀에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깨닫게 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우리가 알던 역사는 틀렸다고 폭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아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틀린 신화가 왜 필요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책의 전반부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순수한 서양'이라는 신화를 해체하는 과정이라면, 후반부는 그 신화가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도구로 어떻게 쓰였는지 추적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는 마치 잘 짜인 추리소설처럼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며 거대한 실체에 다가서는 지적인 쾌감을 안겨주죠. 특히 앎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 했던 프랜시스 베이컨, 노예의 몸으로 서양 고전의 정수를 꿰뚫었던 시인 필리스 휘틀리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지식이 권력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만들어진 서양>은 우리 스스로의 편견에 대한 성찰을 촉구합니다. 서양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위험한 신화를 해부하는 과감한 도전을 감행합니다. 저자는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서양이 쌓아 올린 가장 위대한 가치 중 하나가 아니냐고 되묻는 듯해요. 역사를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이야기를 즐기는 분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거에요. 서재의 한켠에서 오랫동안 빛내줄, 품격 있는 시대의 지성이 담긴 귀중한 도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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