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r. 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
김현경 지음 / 한얼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서평> 김현경 기자의 ‘Mr.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
흔히 남북관계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대화와 협력이라는 한 측면과 대결과 갈등이라는 또 다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면 균형감을 상실했거나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면서 대결과 갈등을 완화시키면 통일을 향해 그만큼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남북의 변화하지 않는 대립과 갈등의 현실을 조롱할 때 자주 사용되던 사례가 있다. 하나는 비무장지대의 모습이다. 잘 알다시피 비무장지대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 2km의 완충지대를 말한다. 동서로 249km의 비무장지대는 분단의 역설적인 존재로 알려져있다. 분단 때문에 사람의 손질이 닿지 않아 천혜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으로 4km의 완충지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구간은 거의 없다고 한다. 심지어 연천 태풍전망대 주변은 8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북이 철책선을 밀어붙인 결과이다.
거기에는 온갖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사람이 마음 놓고 지나다닐 수 있는 구간은 경의선 도로와 동해선 도로 뿐이다. 비무장지대 안에로 들어갈 경우 즐비하게 널려 있는 위협 때문에 한 발자국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다.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무장지대이다.
다른 하나는 판문점 인근에 있는 세계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자랑하는 대형국기게양대이다. 북측의 기정동 마을에 있는 게양대는 높이가 160미터이고, 인공기의 넓이만도 135평이다. 남쪽의 대성리에는 높이 100미터의 게양대에 넓이 65평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태극기 유지 교체비용으로 한 달에 200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높지 않았는데 서로 경쟁적으로 높이를 올려서 지금과 같은 초대형 시설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현경 기자가 쓴 ‘Mr.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이하 ‘차 한 잔’)라는 책에서 다시 한 번 이런 내용을 확인하였다. 남북대결이 빚어낸 웃지못할,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사례를 ‘차 한 잔’에서 발견하고 나니 김현경 기자의 글이 술술 읽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남북관계라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해법과 북한이라는 매우 어려운 상대를 알아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차 한 잔‘은 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매우 쉽게 풀어가고 있다. 어려운 문제를 알기 쉽게 풀어내는 김현경 기자의 정갈한 글솜씨 때문이기도 하다. 또 비무장지대나 국기게양대 같은 사례들을 제 때에 제시하고 있어서 읽다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금방 실감이 난다.
김현경 기자는 남북관계와 북한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문제와 비유해서 설명한다. 통일문제가 나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숭고하고도 엄숙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현경 기자가 자신의 어린시절 추억에서부터 우리가 늘 접하는 생활과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을 쭉 읽다보면 통일문제는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때로는 아주 밀접한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김현경 기자는 “어렵고 지루해지기 쉬운 평화와 화해의 이야기를 일상의 대화처럼 가볍게 나누고 싶었다”고 이 책을 쓴 취지를 말했다. 적어도 ‘차 한 잔’의 읽다보면 오히려 평화와 통일이 일상의 대화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하는 반문이 생길 정도이다. ‘통일운동의 일상화, 생활화, 대중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평소에 사람의 재주 가운데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사방팔방으로 막힘없이 통하는 능수능란함을 높이 쳤다. ‘차 한 잔’을 읽다보면 김현경 기자는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막힘없이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통일문제를 다루다보면 통일의 상대인 북쪽도 신경써야하고, 다원주의 사회인 남쪽의 다양한 여론도 신경 써야 한다. 북쪽을 앞에 두고 상대하더라도 뒤에 있는 남쪽의 정부와 국민, 옆에 있는 국외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두를 고려해서 속으로 곱새기고 우려서 나오는 이야기가 통일의 주체인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 능수능란함을 키우기 위해서는 관심과 애정과 기예가 필요하다.
한편 이 쪽 저 쪽 신경 쓰느라 해야 할 말을 마냥 안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남북관계를 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는 것이다. 김현경 기자는 ‘차 한 잔’에서 때로는 북에 대해서, 때로는 남에 대해서 할 말을 하고 있다. “몇 년 사이에 남북관계는 열정에 들 뜬 연인에서 권태기를 느끼는 부부처럼 변해버렸다”는 한마디에서 남쪽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시각이 엿보인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 이후 잘 나가던 남북관계가 미국에서 부시대통령의 취임으로 꽉 막히던 때가 있었다. 북쪽에서 남북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은 것이다. 김기자는 만약 그때 북쪽에서 남북관계를 정상적으로 진행시켰으면 그 결과가 어땠을 것인가를 물으며 북쪽의 정책에 대한 갑갑함을 토로한다.
‘차 한 잔’에는 할 말 하면서도 남북을 서로 이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남북관계에 대한 오랜 취재관록에서 나오는 노련함이 그녀를 남북 양쪽에서 사통팔달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차 한 잔’에서는 대북포용정책의 대표적인 산물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왜 중요한 것인지, 남쪽 일부여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과연 일방적인 퍼주기인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과거 정보기관에서 금강산 장전항 사진 한 장 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는데, 이제는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개성공단 만들기 위해 도로가 연결되는데 북측에서도 이 도로가 북침통로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그동안 일방적인 단순논리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귀 번쩍 뜨일 일이다. 다시 한 번 남북관계는 상대가 있는 것이므로, 상대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지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균형있는 논리를 만든다는 것을 느낀다.
북은 지금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북의 변화에 대한 북쪽 내부의 갈등은 무엇이며, 북쪽의 지도부들은 어떻게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가와 같은 전문적인 내용들을 에세이 형식의 ‘차 한 잔’에서 접할 수 있었으니,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올 여름 유난했던 무더위라도 어찌 내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겠는가. 항상 취재만 당해서 취재기자들의 세계가 낯설기만한 사람들에게는 김기자가 전하는 취재 뒷 이야기와 기자들 세계도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한가지, 이 관록이 넘치는 기자가 쓴 재미있는 통일 이야기 가운데 ‘Mr.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라는 제목에 대해서만큼은 시비를 걸어보고 싶다. 말랑말랑하고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혹시 작년에 부시 미국대통령이 ‘Mr.김정일’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이 6자회담 재개의 발판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건 한 번의 일화에 불과한 것으로 넘겨버리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다. (2006.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