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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퍼즐 - 빅터 차 VS. 데이비드 강 관여전략 논쟁
데이비드 강.빅터 차 지음, 김일영 옮김 / 따뜻한손 / 2007년 9월
평점 :
<서평> 북핵퍼즐 : 빅터 차 vs 데이비드 강 관여전략 논쟁
‘벽’ 보고 하는 논쟁
사회적으로 어떤 논쟁이 진행될 때 대개의 경우 목소리 큰 강경파들이 그 논쟁을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찬반 양쪽으로 갈라지고 그 양쪽을 대표하는 세력들이 논쟁을 이끈다. 하지만 논쟁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스펙트럼이 괘 넓은 경우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논쟁과정에 반영되지 않고 단순화되는 경우가 많다. 4점 척도나 5점 척도로 여론조사를 할 경우 의견분포가 골고루 나타나는 사안일 경우에도 결국은 찬반으로 대립된다. 4점 척도의 경우 매우 긍정, 약간 긍정, 야간 부정, 매우 부정의 의견 가운데 ‘약간 긍정’과 ‘약간 부정’ 사이의 의견 차이는 공존을 부정할 정도로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두 견해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긍정’과 ‘매우 부정’사이에서 보다 건설적인 토론이 진행될 가능성이 많이 있다. 대개 완벽한 논리는 드물기 때문에 의견의 차이가 부족한 논리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매우 긍정’과 ‘매우 부정’ 사이의 토론은 벽을 보고 하는 소리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남대화’에 대한 필요성이 부쩍 강조되어 왔다. 남남대화는 분명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하지만 남남대화를 통해 합의기반을 다지기보다는 ‘벽’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 아직은 우리 사회 분위기가 토론을 통해 의견접근을 하는 데 익숙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매우 긍정’과 ‘매우 부정 사이’의 토론은 기찻길 같은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많은 경우 그래왔다. 논쟁기술은 상대를 공격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다.
또 ‘약간 긍정과 매우 부정’, ‘매우 긍정과 약한 부정’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짝이 되어 논쟁하는 경우도 많다. 그 경우 ‘매우 부정’은 ‘약한 긍정’을 ‘매우 긍정’으로 만들어버리고, ‘매우 긍정’은 ‘약한 부정’을 ‘매우 무정’으로 만들어버리는 역효과를 빚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적인 논쟁을 위해서는 ‘어울리는 짝짓기’도 중요하다.
어울리는 짝, ‘빅터 차’와 ‘데이비드 강’
‘빅터 차’와 ‘데이비드 강’은 생산적인 논쟁을 위한 ‘매우 어울리는 짝’이다. 빅터 차와 데이비드 강이 북한에 대한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을 둘러싸고 건설적인 논쟁을 벌열다. ‘따뜻한손’에서 출판한 ‘북핵퍼즐’이 바로 이 논쟁을 담은 책이다. ‘관여정책’은 흔히 포용정책으로 알려진 정책이다. 그동안 포용정책이 Engagement Policy를 잘못 번역한 용어라는 논란이 있었다. 아마도 이 책을 번역한 김일영 교수는 포용정책이라는 단어가 일방성을 띠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해서 ‘관여정책’으로 번역한 듯하다.
김일영 교수에 따르면 두 학자 모두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왕성한 학술활동을 하고 있고, 미국과 동북아 지역에서 명망이 높다고 한다. 김교수는 빅터차는 ‘조건부 관여정책’, 데이비드 강은 ‘무조건적 관여정책’에 가깝다고 한다.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흔히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 무시정책(Benign Neglect Policy),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으로 구분한다. 두 학자는 일단 관여정책의 입장에서 강온으로 나눠져서 논쟁하고 있다.
물론 데이비드 강의 입장을 ‘무조건적 관여정책’으로 구분하는 것은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김교수가 데이비드 강이 무조건적 관여정책에 가깝다고 분류한 것에 대해 아마도 데이비드 강은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김교수는 ‘매파적 관여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빅터차의 입장에 경도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자신 사람의 입장을 정교하게 분류하지 않고 단순화시켜서 무조건적 관여정책에 가깝다고 규정해버렸다. 같은 논리로 무조건적 관여정책에 경도된 시각을 가지고 김교수나 빅터차의 입장을 단순화시켜서 ‘매파’나 ‘봉쇄정책’으로 구분해버릴 수도 있다. 정확하게 구분한다면 빅터차는 스스로 말하듯이 ‘매파 관여(hawk engagement)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강은 이와 상대해서 ‘비둘기 관여(dove engagement)정책’이라고 부르는 게 적당하다.
번역자인 김교수는 이 책이 “풍부한 경험적 자료로 뒷받침되고, 분석적으로 엄격하며, 정책 정합성이 있는 한반도 연구 결과물”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 책은 원래 2003년도에 미국에서 첫출판되었다. 미국에서 출판되고 4년이 지나서 국내에 번역되었다. 뒤늦게 국내 번역된 것은 미국 출판 이후 빅터차가 백악관 NSC에서 아시아 담당 국장으로 발탁되었기 때문이다.
매파 관여정책과 비둘기파 관여정책
이 책은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미국내 두가지 시각의 논쟁이다. 2003년 저서가 4년 뒤에 국내에 소개되었다고 하더라도 4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이 두 시각은 미국이나 국내에서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힘의 열세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빅터차와 데이비드강 두 사람 모두 인정하다. 그러나 힘의 열세인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것은 미국의 위협때문이므로 미국이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데이비드강의 논리이다. 반면에 빅터차는 북한이 열세에 있기는 하지만 모험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본다. 북한이 현재보다 미래가 훨씬 나빠질 것으로 본다면 ‘두 배 따거나 아니면 모두 잃기’식의 마음에서 모험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선제공격이나 예방적 공격 논리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빅터차의 논지이다. 빅터차는 북한은 단기적으로 상황을 개선하려는 전술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지만, 의도가 바뀌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반면 데이비드 강은 북한의 전술적인 변화가 의도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빅터차의 논리는 몇가지가 보완되어야 한다. 우선 북한은 북한의 역량, 국제정세 등과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모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인가. 빅터차의 논리를 확대하면 다름과 같은 분석이 성립할 수 있다. “휴전협정부터 1974년까지 일반적으로 북한이 힘의 우위기에 있었을 때는 북한이 도발의 유혹을 느끼는 것은 힘의 우위 때문이다. 74년 이후 세력균형기에는 세력균형을 깨기 위해서 도발의 유혹을 느낀다. 80년대 이후 북의 열세기에는 이판사판식 도발의 가능성이 있다.” 과연 힘의 관계에 대한 고려가 북한에게 전혀 없는 것인가?
한편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랴늄 보유 이후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은 2007년 이후 크게 변화하였다. 북한과 미국은 대화를 통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가닥을 잡고 있다. 빅터차의 논리는 이런 변화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빅터차의 논리는 데이비드강에 의해 보완된다. 정치는 두가지 논리를 통합해내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