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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각본집
민규동.김동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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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구병모 작가의 《파과》 영화 각본집은, 원작 소설이 지닌 섬세한 내면과 화면 속 긴장 사이의 미묘한 간극이 느껴졌어요.
원작은 한 노년 여성의 삶과 폭력의 잔향을 조용히 포착하며, 인물의 몸과 기억, 죄책감과 상실을 따라가는 작품이죠. 읽다 보면 사건 자체보다 조각의 내면에 몰입하게 되고, 그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각본집은 그 속삭임을 화면 중심으로 풀어내며 사건과 장면의 균형을 강조해요. 조각이 다시 칼을 잡는 순간, 원작에서 느껴졌던 심리적 분투는 외부적 충돌과 긴장으로 바뀝니다. 이 과정에서 조각보다 남성 등장인물 ‘투우’에게 조금 더 시선과 서사의 무게가 실린 느낌도 있어요. 액션씬도 많고 스릴러 느낌도 강하네요.
그래서 읽다 보면 ‘원작 속 조각의 이야기’와는 결이 다른, 또 다른 〈파과〉를 만나는 기분이 듭니다.

소설 파과의 변주곡이 된 각본집은 원작의 골격을 유지하며 장면마다 적절한 긴장과 몰입을 만들어내어 다양한 색채를 더합니다. 마지막 투우의 그림일기에서는 무엇보다 시나리오 작가의 애정이 느껴집니다. 원작 속 섬세한 감정선을 이해하고, 주인공들을 좀 더 설명해주려 노력했어요. 화면으로 옮길 때 생기는 갈등과 장면의 리듬을 섬세하게 조율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거든요.

구병모 작가님은 추천 글에서 이번 변화를 “다른 분야 예술에 대한 존중”이라고 표현해 주셨어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과 연출자의 시선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또 다른 형태로 태어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런 겸허함이 책과 영화에서의 변주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을거에요.

이 책은 단순히 영화 제작 과정을 기록한 문서가 아니라, 소설과 영화가 맞닿는 지점을 살펴보게 하는 부가자료예요. 원작의 내밀한 감정과 영화적 긴장, 《파쇄》에서 느낀 심리적 에너지와의 대비까지 생각하며 읽으면, 작가의 시선이 매체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는지 자연스레 느낄 수 있습니다. 원작과 영화 사이의 여백과 울림,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의 섬세한 손길이 만드는 작은 재미가 바로 각본집의 묘미인 것 같네요.

읽는 동안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보다는, 원작의 은밀한 감정선을 영화적 장치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여백을 부드럽게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조각과 투우, 내면과 외부, 원작과 각본집 사이의 경계에서 발견하는 감정의 진폭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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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킹의 8개 국어 - 서른 넘어 시작해 인생 레벨 업
와인킹(이재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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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와인킹의 8개국어》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50세라는 나이에도 저자가 여전히 젊은 사고와 활력을 유지하며 8개국어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많은 언어를 안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사고를 넓히고 삶의 기회를 확장하는 도구로 바라본다는 점이 정말 공감되었다.

언어는 하루 몇 시간, 일주일 몇 번 학습한다고 해서 저절로 늘지는 않는다. 환경 전체나 일부를 목표 언어로 바꾸고, 스마트폰, SNS, 게임까지 활용해 살아있는 언어를 경험하라고 권한다. 실제 삶 속에서 언어를 계속 쓰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이 내 경험과도 맞아 떨어졌다.

그가 가르쳐주려는 단어들은 사실 어린이 회화 수준이지만, 초등 기본 단어 500개 정도만 알아도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 조합으로 충분히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실제 아나운서들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쉬운 언어로 설명하듯, 단순한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언어는 배우면서 필요성과 간절함이 가장 먼저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도 이미 7개국어를 구사했지만, 또 다른 언어를 배울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좋은 일본인 친구를 만나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8번째 언어로 일본어를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학습 동기와 간절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통역기가 있는데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냐”고 묻지만, 이미 계산기가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수학을 배운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 자체가 사고를 넓히고 세상을 이해하며, 사고의 부산물을 얻는 삶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언어는 나이와 상관없이 삶의 기회를 넓혀준다. 우리 사회에서는 40대만 넘어도 밀려나는 느낌을 받곤 하고, 50세가 되면 ‘노인’ 취급을 받으며 지식과 기술도 과거의 산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언어는 살아있다. 50살, 60살이 되어도 여전히 쓸모가 있고, 새로운 관계와 경험을 열어준다. 그래서 나는 언어를 배우는 일이 정말 멋지다고 느꼈다.

와인킹의 미래를 꿈꾸며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 언어를 도구 삼아 사고를 넓히고 삶의 기회를 계속 확장하는 태도는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와인킹의 8개국어》는 언어를 삶의 도구로 활용하며 사고를 확장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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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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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밴 매킨타이어는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기자로, 실제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소설처럼 생생하게 복원하는 데 탁월한 작가다. ‘나치 포로수용소’라 하여 처음에는 유대인들의 비극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책이 그려내는 세계는 전쟁 중 독일의 고성(古城) 콜디츠로 여러 나라의 연합군 장교들이 갇혀 있던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매킨타이어는 이 폐쇄된 공간 속에서 벌어진 인간의 심리전과 자존심의 투쟁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탈출을 위해 끊임없이 전략을 세우는 영국 장교 팻 리드, 그리고 그를 감시하며 질서를 유지하려 한 독일 장교 라인홀트 에거스다. 두 사람은 적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매킨타이어는 이들을 단순히 영웅과 악당으로 나누지 않고,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과 규율을 놓지 않으려는 두 정신의 대립으로 그린다.

콜디츠의 장교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탈출을 꿈꾸며 연극을 만들고, 악기를 조립하고, 날개를 달아 하늘을 나는 시도를 한다. 절망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창조하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매킨타이어는 그들의 행동을 영웅담으로 포장하지 않고, 전쟁이 인간에게서 빼앗지 못한 존엄의 증거로 기록한다.
그들은 하나 하나 특징과 개성이 있는 인간이었다.
그들에게는 국제법이 있었고 나라가 있었고, 신분이 있었다.
최소한의 버팀목을 가지고 그들의 삶은 작은 세계를 이루어간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HASAG 헝가리 유대인 노동수용소의 짧은 언급은 이 모든 이야기의 무게를 단숨에 바꿔 놓는다. 콜디츠의 장교들이 인간의 존엄을 위태하게 유지하며 피말리는 4년을 버텼던 반면, 같은 동네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HASAG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인간성마저 존중받지못하고 도구처럼 취급된다. 우리가 흔히 들어아는 포로수용소의 모습이다. 그들이 숨쉴 수 있는 기대수명은 고작 3.5개월이었다. 같은 마을, 같은 시대의 두 수용소가 보여주는 이 극단적인 대비는 전쟁의 가장 잔혹한 아이러니다. 콜디츠의 포로들은 자유를 잃었지만 인간성을 지키려 했고, HASAG의 유대인들은 인간성을 빼앗긴 채 생명을 잃었다.

『콜디츠』는 총탄이 아닌 기억으로 전쟁을 말한다. 기자의 냉철함과 문학적 감수성이 맞닿은 이 논픽션은,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와 존엄을 정교하게 복원해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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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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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은유이기도 하다. 김유담, 성해나, 이주혜, 임선우, 임현 다섯 명의 작가가 각자의 시선으로 ‘걷다’를 풀어냈다. 앤솔러지라는 형식 덕분에 한 주제 아래에서도 각기 다른 톤과 결을 가진 단편들을 마주할 수 있어, 읽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김유담의 단편은 시간과 감정의 틈을 걷는 행위에 겹쳐 놓으며,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결들을 포착한다. 걸음마다 남는 흔적은 단순한 발자국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이 남긴 무늬처럼 느껴진다. 성해나는 뒤로 걷는 회상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익숙한 풍경 속 걷는 행위를 회상적 제스처로 바꾸어, 우리가 발걸음을 따라 과거를 더듬게 만든다.

이주혜의 글에서는 사람과의 걸음이 서로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은유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함께하는 삶에서 누군가는 서로를 축으로 걷게 된다. 그 리듬감이 서로의 친밀감이 된다. 임선우의 글에서는 걷기는 치유와 자기 회복의 시간이 된다. 반면 임현의 글은 도시와 사회를 배경으로, 걷기는 현실과 연결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발걸음이 불안과 연대를 교차하는 산책이 된다.

개성 있는 작가들이 한 주제로 모여 쓴 글들은, 아직 여름 같은 가을밤에도 술술 읽혔다. 어떤 걸음은 내 바로 곁에, 어떤 걸음은 타인의 생경함으로, 또 어떤 걸음은 자연스레 응원하게 되는 걸음이 되었다. 마지막 임현 작가의 <산책>은 특히 인상적이다. 흩어질산을 뜻하는 산책처럼 삶은 서로 흩어졌다가 스쳐 지나가게 되는 일상의 흐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걷다』를 읽는 경험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과 닮았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도, 비포장도로처럼 거칠고 불편한 길도 있지만, 이 길들이 모여 하나의 앤솔러지를 이루듯 우리의 삶 역시 다양한 걸음이 모여 완성된다. 단편마다 마음에 와닿는 정도는 다르더라도, 바로 그 불균질성이 이 책의 매력이다. 작가는 평탄한 길보다는 다양한 굴곡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는 그 굴곡을 따라가며 자신의 걸음을 돌아보게 된다.

다섯 작가의 각기 다른 글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발걸음을 떠올리고, 오늘도 길 위에서, 골목을 지나며, 삶의 흔적을 남긴다.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가 이렇게 깊은 성찰과 감각적 체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걷다』는 하다 시리즈의 첫 발걸음으로서 충분한 의미와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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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오브 어스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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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와 함께, 권력과 위선의 구조를 교묘하게 드러내는 소설이다.
작품의 중심에는 두 명의 여성이 있다. 바로 사기꾼 메그와 그녀를 추적하는 기자 출신의 캣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들의 삶이 교차하며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펼쳐진다.

메그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다. 그녀는 부와 권력을 가진 남성들을 주로 타깃으로 삼아 그들의 약점을 파고든다. 겉보기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위선과 부정으로 쌓아올린 삶을 산 사람들,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부를 쌓아온 이들을 교묘히 속이고 무너뜨리는 것이 메그의 방식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단순히 ‘사기꾼’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불의에 맞서는 복수자, 사회의 그늘을 드러내는 정의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보통 ‘거짓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지지만, 메그의 거짓말은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타인의 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거짓을 선택한다.
책을 읽는 내내 메그가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타깃을 무너뜨릴지 기대하게 되고, 그녀가 승리할 때 느껴지는 통쾌함은 강렬하다.

또 다른 축인 캣의 시선은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한다. 과거 메그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믿는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메그를 추적하며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가까이서 메그를 지켜보며 점차 단순히 ‘악인’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그녀의 삶을 알게 되고, 결국에는 서로의 상처와 목적을 이해하게 된다. “거짓말은 반드시 나쁜 것인가? 누구를 속이는가보다, 왜 속이는가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작품의 결말에서 보여지는 두 여성의 관계 변화는 특히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철저히 적대적인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모습은, 단순히 개인적 복수를 넘어서 사회적 의미를 확장시킨다.

영어원제 그대로 거짓말을 다루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권력자들의 위선을 드러내고, 그들의 잘못이 폭로되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한 묘한 해방감이 있다. 동시에 거짓말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때로는 거짓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폭력이나 직접적인 파괴가 아니라,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과정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이는 메그의 거짓말을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세상을 바로잡는 하나의 도구처럼 바라보게 만든다.

읽는 동안 줄곧 긴장감이 유지되면서도, 마지막에는 깊은 통쾌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메그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과 매력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녀는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복수자이자 생존자였다. 그렇기에 책을 덮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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