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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끝, 파랑
이폴리트 지음, 안의진 옮김 / 바람북스 / 2025년 7월
평점 :
깊고 짙은 파랑, 바다를 담은 듯한 표지를 보는 순간, ‘지중해 블루’라는 말이 떠올랐다. 흔히 휴양지 엽서 속에서 보던 선명한 파란색. 평화롭고 낭만적인 색.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지중해 블루는 더 이상 낭만의 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구조 신호이자, 생존의 외침, 그리고 우리가 외면한 침묵의 색이었다.
『지중해의 끝, 파랑』은 단순한 만화책이 아니다. 프랑스의 르포르타주 작가 이폴리트가 난민 구조선 ‘오션 바이킹호’에 직접 탑승해 기록한, 현실과 맞닿은 바다의 이야기다. 이폴리트는 글과 그림을 모두 그리며, 그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것을 압축된 문장과 강렬한 장면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겪는’ 책에 가깝다.
지중해를 떠도는 난민들, 구조선 위에서의 불확실한 기다림, 도착지에서 마주하는 또 다른 현실—이폴리트는 이를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절제된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의 그림은 섬세하면서도 담백하고, 텍스트는 간결하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도착한 난민들이 수용되는 장소는 상징적으로 강렬했다. 살아서 도착했지만 여전히 사회가 내어놓은 경계에 머무르는 사람들. 그들이 겪는 현실은 책의 짙은 파랑처럼 깊고 무겁다.
이 책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없이 필요한 책이다. 뉴스를 넘기듯 지나치던 난민 문제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거리감을 가질 수 없다. 이폴리트는 지중해를 '풍경'이 아닌 '현실'로 건넨다. 낭만적 바다색이라 불리던 지중해 블루는, 이 책 안에서 생존의 그림자가 드리운 바다가 된다.
그림과 글이 함께 전해지는 르포르타주 형식은 독자의 마음을 더 깊이 파고든다. 우리는 책을 통해 어느 구조선 위에 머무는 이들의 시간과 감정, 그 무표정 속의 눈물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읽고 나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이 거대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외면의 무게는 과연 누구의 몫인가?
지중해의 끝, 그곳에서 펼쳐지는 파랑은 아름답기보다 아프다.
그럼에도 이폴리트와 구조대원들은 다시 그 바다로 나아간다.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인간이라는, 작은 증거일지도 모르기에.
#도서제공 #바람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