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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녕
김효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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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는 동안, 그저 밝지만은 않았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20대의 공기, 그 때의 체온, 그때만 가능한 충동과 무모함이 문장 사이마다 내게도 스며왔다.
작가는 그 시절의 우리를 특별하게 포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아하지 못하고, 불안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버텨내는 사람들로 그린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인물들은 이상하리만큼 ‘우아하다’.
그 우아함은 단정함이나 완벽함이 아니라, 엉망진창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마음,
끝까지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 그리고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인것일까

나는 책을 덮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어쩌면 나의 20대도 그렇게 안녕을 고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이루려 애쓰고, 사랑에 울고 웃고,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돌아보면 그 모든 건 한 점에 불과했다.
짧지만 너무 뜨겁게 타올라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시기.
그리고 한통의 전화로 연결되어 버린다.

그들의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나는 지금의 내 삶을 우아하다고 부를 수 없고,
그때의 나 역시 어디 하나 반듯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가 그려낸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아함이란 실은 세련된 포즈가 아니라 그럼에도 살아내는 태도인것이다.
버티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다치면서도 다시 손을 내미는 사람들.
그 불완전한 인간다움 속에서
“그렇게 안녕”이라고, 그렇게라도 인사를 나누며 살아가자고.

나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먹먹했다.
인물들이 조금씩 멀어지고, 관계가 비틀리고,
그 빈자리에 남은 것은 단지 시간뿐이라는 걸 알게 되는 시점이었다.
그때 문득 느꼈다. 나도 내 20대에서 아주 많이 멀어졌구나.
그 시절의 나에게 닿고 싶었다. 말해주고싶었다.
우아함은 몰랐지만, 그때의 나는 매 순간 진심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으니까.

『그렇게 안녕』은 결국 한 시절과 자신에게 보내는 인사 같다.
잃어버린 관계들, 지나간 시간들, 다시 닿을 수 없는 평행우주 속의 나에게 건네는 마지막 안녕.
읽는 내내 마음이 저릿했지만,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그 안녕의 방식이 이렇게 다정할 수도 있다는 걸 이 책이 알려줬다.
그들이 다른 우주에서는 행복하길
또하나의 나도 또 다른 평행우주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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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이소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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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한때 우리는 '정의'라는 단어를 믿었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약자의 삶에 분노하고 기업의 비리에 함께 분노했다. 방송에 등장한 단 한 장의 문서가 사람을 매장하고, 또 하나의 세상을 바꾸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때보다 훨씬 복잡하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흐려지고, '정의'는 때로 이익의 언어로 번역된다.
소설 『통역사』는 바로 그 모호한 경계 위에 선 한 통역사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능력 있는 통역사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생계를 위해 마트에서 와인을 팔고, 치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녀에게 어느 날 어느 네팔여인의 통역을 허위로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단 한 번의 거짓 통역이면 나의 생계는 구원받고, 동시에 한 여인의 인생이 끝난다.

여신으로 추앙받던 네팔의 여인은 네팔에서도, 그리고 타국인 한국에서도 약자였다.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는 걷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 존재는 신성하지만 동시에 가장 갇힌 존재다. 결혼이민으로 한국에 와서도 그녀는 여전히 한 발자국도 자유롭게 내딛지 못했다. 같이 데려온 동생은 끈에 묶여 지냈고, 그녀의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한 소원은 곧 자신에게 그만큼의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주인공은 통역이라는 언어의 힘을 손에 쥔 사람이다. 그러나 그 힘이 정의의 편에 설 수 있을지는 오직 그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누군가는 파멸한다. 거짓을 말하는 순간, 자신의 신념이 무너진다. 통역이라는 단어는 결국 인간의 윤리와 권력의 문제로 확장된다.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으며, 말은 언제나 누군가의 생존을 지배한다.
핵페기물, 불법노동자등의 무거운 주제를 흡인력 있게 풀어냈다.사회고발적 소재임에도 문장은 간결하고 리듬감 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우리는 ‘이것이 단순한 허구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작가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의 숨겨진 이면을 통해 거짓과 진실, 생존과 윤리의 흔들리는 인간의 얼굴을 그려낸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협하는지를 보여주면서도,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존재를 통해 희망을 놓지 않는다. 통역사의 결단이 빛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 어떤 용기를 요구하는지 절실하게 느낀다.

책후면에 장일호 기자의 추천서가 마음을 울렸다. “좋은 이야기는 세상에 맞서는 용기를 준다.”
타협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며, 정의로운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을 향해—
인간의 존엄이 결코 누락되지 않기를 바라는, 단단한 목소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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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각본집
민규동.김동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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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구병모 작가의 《파과》 영화 각본집은, 원작 소설이 지닌 섬세한 내면과 화면 속 긴장 사이의 미묘한 간극이 느껴졌어요.
원작은 한 노년 여성의 삶과 폭력의 잔향을 조용히 포착하며, 인물의 몸과 기억, 죄책감과 상실을 따라가는 작품이죠. 읽다 보면 사건 자체보다 조각의 내면에 몰입하게 되고, 그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각본집은 그 속삭임을 화면 중심으로 풀어내며 사건과 장면의 균형을 강조해요. 조각이 다시 칼을 잡는 순간, 원작에서 느껴졌던 심리적 분투는 외부적 충돌과 긴장으로 바뀝니다. 이 과정에서 조각보다 남성 등장인물 ‘투우’에게 조금 더 시선과 서사의 무게가 실린 느낌도 있어요. 액션씬도 많고 스릴러 느낌도 강하네요.
그래서 읽다 보면 ‘원작 속 조각의 이야기’와는 결이 다른, 또 다른 〈파과〉를 만나는 기분이 듭니다.

소설 파과의 변주곡이 된 각본집은 원작의 골격을 유지하며 장면마다 적절한 긴장과 몰입을 만들어내어 다양한 색채를 더합니다. 마지막 투우의 그림일기에서는 무엇보다 시나리오 작가의 애정이 느껴집니다. 원작 속 섬세한 감정선을 이해하고, 주인공들을 좀 더 설명해주려 노력했어요. 화면으로 옮길 때 생기는 갈등과 장면의 리듬을 섬세하게 조율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거든요.

구병모 작가님은 추천 글에서 이번 변화를 “다른 분야 예술에 대한 존중”이라고 표현해 주셨어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과 연출자의 시선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또 다른 형태로 태어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런 겸허함이 책과 영화에서의 변주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을거에요.

이 책은 단순히 영화 제작 과정을 기록한 문서가 아니라, 소설과 영화가 맞닿는 지점을 살펴보게 하는 부가자료예요. 원작의 내밀한 감정과 영화적 긴장, 《파쇄》에서 느낀 심리적 에너지와의 대비까지 생각하며 읽으면, 작가의 시선이 매체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는지 자연스레 느낄 수 있습니다. 원작과 영화 사이의 여백과 울림,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의 섬세한 손길이 만드는 작은 재미가 바로 각본집의 묘미인 것 같네요.

읽는 동안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보다는, 원작의 은밀한 감정선을 영화적 장치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여백을 부드럽게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조각과 투우, 내면과 외부, 원작과 각본집 사이의 경계에서 발견하는 감정의 진폭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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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킹의 8개 국어 - 서른 넘어 시작해 인생 레벨 업
와인킹(이재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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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와인킹의 8개국어》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50세라는 나이에도 저자가 여전히 젊은 사고와 활력을 유지하며 8개국어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많은 언어를 안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사고를 넓히고 삶의 기회를 확장하는 도구로 바라본다는 점이 정말 공감되었다.

언어는 하루 몇 시간, 일주일 몇 번 학습한다고 해서 저절로 늘지는 않는다. 환경 전체나 일부를 목표 언어로 바꾸고, 스마트폰, SNS, 게임까지 활용해 살아있는 언어를 경험하라고 권한다. 실제 삶 속에서 언어를 계속 쓰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이 내 경험과도 맞아 떨어졌다.

그가 가르쳐주려는 단어들은 사실 어린이 회화 수준이지만, 초등 기본 단어 500개 정도만 알아도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 조합으로 충분히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실제 아나운서들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쉬운 언어로 설명하듯, 단순한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언어는 배우면서 필요성과 간절함이 가장 먼저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도 이미 7개국어를 구사했지만, 또 다른 언어를 배울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좋은 일본인 친구를 만나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8번째 언어로 일본어를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학습 동기와 간절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통역기가 있는데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냐”고 묻지만, 이미 계산기가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수학을 배운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 자체가 사고를 넓히고 세상을 이해하며, 사고의 부산물을 얻는 삶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언어는 나이와 상관없이 삶의 기회를 넓혀준다. 우리 사회에서는 40대만 넘어도 밀려나는 느낌을 받곤 하고, 50세가 되면 ‘노인’ 취급을 받으며 지식과 기술도 과거의 산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언어는 살아있다. 50살, 60살이 되어도 여전히 쓸모가 있고, 새로운 관계와 경험을 열어준다. 그래서 나는 언어를 배우는 일이 정말 멋지다고 느꼈다.

와인킹의 미래를 꿈꾸며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 언어를 도구 삼아 사고를 넓히고 삶의 기회를 계속 확장하는 태도는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와인킹의 8개국어》는 언어를 삶의 도구로 활용하며 사고를 확장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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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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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밴 매킨타이어는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기자로, 실제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소설처럼 생생하게 복원하는 데 탁월한 작가다. ‘나치 포로수용소’라 하여 처음에는 유대인들의 비극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책이 그려내는 세계는 전쟁 중 독일의 고성(古城) 콜디츠로 여러 나라의 연합군 장교들이 갇혀 있던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매킨타이어는 이 폐쇄된 공간 속에서 벌어진 인간의 심리전과 자존심의 투쟁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탈출을 위해 끊임없이 전략을 세우는 영국 장교 팻 리드, 그리고 그를 감시하며 질서를 유지하려 한 독일 장교 라인홀트 에거스다. 두 사람은 적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매킨타이어는 이들을 단순히 영웅과 악당으로 나누지 않고,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과 규율을 놓지 않으려는 두 정신의 대립으로 그린다.

콜디츠의 장교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탈출을 꿈꾸며 연극을 만들고, 악기를 조립하고, 날개를 달아 하늘을 나는 시도를 한다. 절망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창조하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매킨타이어는 그들의 행동을 영웅담으로 포장하지 않고, 전쟁이 인간에게서 빼앗지 못한 존엄의 증거로 기록한다.
그들은 하나 하나 특징과 개성이 있는 인간이었다.
그들에게는 국제법이 있었고 나라가 있었고, 신분이 있었다.
최소한의 버팀목을 가지고 그들의 삶은 작은 세계를 이루어간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HASAG 헝가리 유대인 노동수용소의 짧은 언급은 이 모든 이야기의 무게를 단숨에 바꿔 놓는다. 콜디츠의 장교들이 인간의 존엄을 위태하게 유지하며 피말리는 4년을 버텼던 반면, 같은 동네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HASAG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인간성마저 존중받지못하고 도구처럼 취급된다. 우리가 흔히 들어아는 포로수용소의 모습이다. 그들이 숨쉴 수 있는 기대수명은 고작 3.5개월이었다. 같은 마을, 같은 시대의 두 수용소가 보여주는 이 극단적인 대비는 전쟁의 가장 잔혹한 아이러니다. 콜디츠의 포로들은 자유를 잃었지만 인간성을 지키려 했고, HASAG의 유대인들은 인간성을 빼앗긴 채 생명을 잃었다.

『콜디츠』는 총탄이 아닌 기억으로 전쟁을 말한다. 기자의 냉철함과 문학적 감수성이 맞닿은 이 논픽션은,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와 존엄을 정교하게 복원해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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