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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ㅣ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평점 :
걷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은유이기도 하다. 김유담, 성해나, 이주혜, 임선우, 임현 다섯 명의 작가가 각자의 시선으로 ‘걷다’를 풀어냈다. 앤솔러지라는 형식 덕분에 한 주제 아래에서도 각기 다른 톤과 결을 가진 단편들을 마주할 수 있어, 읽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김유담의 단편은 시간과 감정의 틈을 걷는 행위에 겹쳐 놓으며,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결들을 포착한다. 걸음마다 남는 흔적은 단순한 발자국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이 남긴 무늬처럼 느껴진다. 성해나는 뒤로 걷는 회상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익숙한 풍경 속 걷는 행위를 회상적 제스처로 바꾸어, 우리가 발걸음을 따라 과거를 더듬게 만든다.
이주혜의 글에서는 사람과의 걸음이 서로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은유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함께하는 삶에서 누군가는 서로를 축으로 걷게 된다. 그 리듬감이 서로의 친밀감이 된다. 임선우의 글에서는 걷기는 치유와 자기 회복의 시간이 된다. 반면 임현의 글은 도시와 사회를 배경으로, 걷기는 현실과 연결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발걸음이 불안과 연대를 교차하는 산책이 된다.
개성 있는 작가들이 한 주제로 모여 쓴 글들은, 아직 여름 같은 가을밤에도 술술 읽혔다. 어떤 걸음은 내 바로 곁에, 어떤 걸음은 타인의 생경함으로, 또 어떤 걸음은 자연스레 응원하게 되는 걸음이 되었다. 마지막 임현 작가의 <산책>은 특히 인상적이다. 흩어질산을 뜻하는 산책처럼 삶은 서로 흩어졌다가 스쳐 지나가게 되는 일상의 흐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걷다』를 읽는 경험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과 닮았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도, 비포장도로처럼 거칠고 불편한 길도 있지만, 이 길들이 모여 하나의 앤솔러지를 이루듯 우리의 삶 역시 다양한 걸음이 모여 완성된다. 단편마다 마음에 와닿는 정도는 다르더라도, 바로 그 불균질성이 이 책의 매력이다. 작가는 평탄한 길보다는 다양한 굴곡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는 그 굴곡을 따라가며 자신의 걸음을 돌아보게 된다.
다섯 작가의 각기 다른 글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발걸음을 떠올리고, 오늘도 길 위에서, 골목을 지나며, 삶의 흔적을 남긴다.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가 이렇게 깊은 성찰과 감각적 체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걷다』는 하다 시리즈의 첫 발걸음으로서 충분한 의미와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