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유병록 

  

둘로 쪼개진다 

부풀어 오르면 균열이 많아지고 반경이 넓어지면 경계가 길어지는 

팽창의 역사가 수없이 증명해온 습성 

커다랄수록 사과는 쉽게 쪼개진다 쉽게 둘이 된다 

한때 지척이었던 거리는 아득해진다 

사이에 계곡이 깊고 안개가 끼고 어둠이 주둔한다 

간극에 다리를 놓아도 금세 썩어 크레바스로 무너져 내리고 

건너간 자는 아주 드문 곳 

균열은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는 것을 위해 찾아온다 

시간에 누적된 미세한 균열은 뒤늦게 발견된다 

균열의 나이테라 불리는 시간 

쪼개진 단면은 붉게 변해 서로 낯선 얼굴을 한다 

비애가 탄생하고 죄와 용서가 분리된다 

끝내 바다를 사이에 둔 대륙처럼 멀어지고 서로를 모방하는 표정이 실패할 때 

이쪽 기슭의 눈먼 벌레들이 더는 저쪽의 시간으로 건너가지 못할 때 

사이에 부는 바람에도 균열이 인다 

지구의 한쪽 모퉁이 쪼개지는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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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말 

 심보선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
나는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주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침대에 누워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지평선처럼 아득하게
더 멀게는 지평선 너머 떠나온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나'라는 말이 공중보다는 밑바닥에 놓여 있을 때가 더 좋습니다.
나는 어제 산책을 나갔다가 흙 길 위에
누군가 잔가지로 써 놓은 '나'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그 말을 쓸 때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그 역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거나
홀로 나아갈 지평선을 바라보며
땅 위에 '나'라고 썼던 것이겠지요.
나는 문득 그 말을 보호해 주고 싶어서
자갈들을 주워 주위에 빙 둘러 놓았습니다.
물론 하루도 채 안 돼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서
혹은 어느 무심한 발길에 의해 그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나는 '나'라는 말이 양각일 때보다는 음각일 때가 더 좋습니다.
사라질 운명을 감수하고 쓰인 그 말을
나는 내가 낳아 본 적도 없는 아기처럼 아끼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나'라는 말을 가장 숭배할 때는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하여
당신의 온몸을 한 바퀴 돈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나'를 말할 때마다
무(無)로 향하는 컴컴한 돌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내려가겠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너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압니다. 나는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물인 양
'너는 말이야','너는 말이야'를 수없이 되뇌며 
죽음보다도 평화로운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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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황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불안의 황홀 - 김도언 문학일기
김도언 지음 / 멜론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작가는 왜 굳이 '문학일기'라는 타이들을 이 책에 붙인 것일까?  기존의 '일기'라는 명칭이 아닌 '문학일기', 분명 김도언 작가에게 왜 사나요? 라는 질문은 왜 소설을 쓰죠? 왜 문학을 하나요? 라는 질문과 동음이의어일 것이다. 미래부터 과거로 흐르는 그의 일기들은 삶과 문학이 따로 떨어진 지대가 아닌 교차되고 중첩된 특수한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 특수한 영역이 바로 그의 '일상'이다. 특수하면서도 너무나 일상적인 그의 삶, 그가 전업작가이면서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며 소설을 쓴다는 생활양식과 많이 닮아있다.   

특히 나의 시선을 끈 부분은 그의 지인들과의 만남에 관한 대목들이었다. 정말 일상적인 만남들이었지만 시인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 같아 나름 흥미진진했다. 그 시인들이 바로 내 옆에 있는 느낌이었달까?  아래층에 사는 시인과의 술자리, 그에 관한 묘사, 그리고 여러 인용된 시들과 그 시에 대한 작가의 느낌, 누군가의 가벼운 메모나, 일기를 읽는 듯이 재미가 있었다. 

또 다른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그의 문학론, 그의 세계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사유하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소통하는지 말이다. 

현실인식이 없는 예술은, 뱀이 없는 용처럼 황당무계할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상상계가 만들어낸 용이라는 동물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것은 뱀이라는 누추한 현실의 동물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 p111  

작가가 좋아하는 단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물끄러미'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물끄러미'바라볼 때, 그대가 입을 열고 꽃은 몽우릴 터뜨린다. '물끄러미' 내다볼 때, 기다리던 편지가 오고 지하철의 막차가 들어온다. -p80 

정말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가 처음 '시'를 썼다는 걸 감안하면 이런 문장이 나올법 하다. 곳곳에 시적인 문장들이 많이 깔려 있어 나는 연필을 들고 밑줄을 치곤 했다.  

나는 내게 흘러들어오는 영감이나 이미지를 논리적으로 묘사하는 훈련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p77 

이 문장은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이런 고민은 누구나가 하는 고민이 아닌가 싶다. 산다는 것의 방식 또한 이런 논리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흡수되는 모든 상황들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객관성이 요구된다. 시나 소설 또한 감성적인 부분으로 치우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논리적인 훈련이 필요할 듯 싶다. 그래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글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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