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유병록
둘로 쪼개진다
부풀어 오르면 균열이 많아지고 반경이 넓어지면 경계가 길어지는
팽창의 역사가 수없이 증명해온 습성
커다랄수록 사과는 쉽게 쪼개진다 쉽게 둘이 된다
한때 지척이었던 거리는 아득해진다
사이에 계곡이 깊고 안개가 끼고 어둠이 주둔한다
간극에 다리를 놓아도 금세 썩어 크레바스로 무너져 내리고
건너간 자는 아주 드문 곳
균열은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는 것을 위해 찾아온다
시간에 누적된 미세한 균열은 뒤늦게 발견된다
균열의 나이테라 불리는 시간
쪼개진 단면은 붉게 변해 서로 낯선 얼굴을 한다
비애가 탄생하고 죄와 용서가 분리된다
끝내 바다를 사이에 둔 대륙처럼 멀어지고 서로를 모방하는 표정이 실패할 때
이쪽 기슭의 눈먼 벌레들이 더는 저쪽의 시간으로 건너가지 못할 때
사이에 부는 바람에도 균열이 인다
지구의 한쪽 모퉁이 쪼개지는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