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그녀가 죽었다.

순간, 우리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시간이 입을 다물었다."

 

띠지에 적힌 글귀.

당연한 글이다.

당연하기에 아름답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유효한 말이다.

 

읽는 내내

슈텔라란 인물이 모호하다고 느꼈다.

슈텔라에 대한 고백-크리스티안의 감정이 고조될 때는 고백체가 되었고,

슈텔라와의 시간에 대한 회상- 소중한 마음을 담담한 문체가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까지 다 읽고나서

슈텔라는 곧 사랑, 첫사랑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슈텔라는 그렇게 아름답고

청년의 환상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관능미를 지녔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다른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으로..

 

또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의

한용운 시인으로.......

 

수많은 남성 예술가들은 각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크프리트 렌츠는

그것이 너무나 소중한 나머지 침묵으로 봉인까지 했다.

담담한 어조지만, 열정으로 폭발할 것만 같은 고요다.

 

생각해보니,

슈텔라는 '비너스'와 정말 흡사하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바다를 배경으로 한 것도 그렇고,

모호한 것도 그렇다.

 

그리고 이 책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는 푸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정점의 물거품은 희다.

 

앞뒤로 물든 듯 점차 옅어지는 푸른빛...

그 물거품 속에서 슈텔라에 대한 크리스티안의 추억은 봉인되고

비너스는 물거품 속에서 태어났다.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자신의 첫사랑을 이렇게 간직하고 싶을까?

왠지 궁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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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아버님께 진경문고 1
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 보림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다산 정약용.

그 이름을 부르면 몇 가지가 함께 떠오른다.

천재, 절망, 무불통지, 유배, 엄청난 저작…….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 모든 분야에 막힘이 없었던 그는

조선 정조 시대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全人이었다.

정조 시대가 어떠했는가?

조선의 문화가 꽃을 피웠으며, 천재들이 오히려 흔했던 시대이지 않은가?

그러한 시대에 정조와 함께 정치를 생각했던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그로 인해 한 가지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후에 그를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었던 서학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학문을 얼마든지 빨아들일 수 있었던 당시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조선의 사회를 발전시킬 의무가 있는 당시 지식인들의 건강한 호기심을 보여준다.

만일 그들의 뜻이 펼쳐졌다면, 조선의 역사는 전혀 새롭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생명줄은, 정약용을 위시한 천재들의 꿈은

정조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아직도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이 위대한 군주의 죽음 이후,

조선과 조선의 천재들은

사적인 영달에만 관심이 있었던 반동세력, 권력자들에 의해 처참하고 완벽하게 몰락한다.

독재 권력을 휘둘렀던 노론이 들이 민 칼날은 바로 ‘서학’이었다.

이미 새로운 학문에서 자생적으로 종교로 자리잡고 있었던 서학(=천주교)은

새로운 조선을 꿈꾸는 조선의 지식인과 정약용을 위시한 진보세력을 치기에 너무나 좋은 양날의 칼이었다.





사실 정약용은 일찍이 서학과의 관계를 끊은 상태였다.

그가 정조에게 올린 상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젊은 날, 새로운 학문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서학 공부는 그가 성균관에 들어가

정조의 가르침을 받게 되면서 자연히 중단하게 된다.

정조는 군주이면서 스승인, 성리학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철인군주에 가까운 왕이었는데, 그가 미래의 조선을 이끌어갈 성균관의 젊은 지식인에게 요구하는 학문 수준은 굉장히 높았다.

그는 유생들에게 주제를 내려 논문을 쓰게 하고,

친히 수십 개의 질문을 내려 답하게 하는 등 강도 높은 학문 수련을 요구했던 것이다.

임금에게 답해야 하는 질문이 100여 개에 가깝고,

그것도 짧은 시간에 해야 한다면 그 숙제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 자신이 최고의 학자였던 정조는 서학에 대해서도 자신이 있었다.

그는 성리학이 정학이라고 믿었지만,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모든 물길을 열어주면 자연히 주된 줄기가 생기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치세에도 서학을 탄압하자는 노론의 주장이 거셌지만,

정조는 절대 조선의 새로운 가능성을 자르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의 희망은 정조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고,

정약용도 삶과 죽음의 길에 오르게 된다.

이십 대 초반 잠시 서학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꼬투리 삼아

노론세력은 진보의 싹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정조가 죽은 다음 해,

정약용의 집안은 말 그대로 멸문지화에 이른다.

이미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셋째 형 정약종과 그 아들이 처형을 당한다.

둘째 형 정약전과 그 자신이 유배를 당한다.

큰형 정약현의 맏사위 황사영이 능지처참 당하고, 그 아내인 큰조카딸 정명련이 노비가 되어 제주도로 부처되었으며, 두살배기 아들도 노비가 된다.

처남인 이승훈이 처형당하고, 함께 처형당한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숙부이니 정약용과도 먼 친척이라 할 수 있다.

한 집안에 같은 죄목으로 죽거나 유배간 이들만 이 정도이니, 살아남은 가족이라 할 지라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를 당하게 된다.



정조와 함께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정약용의 절망이 어떠했을까?

죽고 헤어진 형제자매들에 대한 애달픔, 한시도 잊지 않았던 꿈이 하루아침에 스러진 절망, 앞날을 꿈꿀 수 없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

고문과 떠도는 생활로 인한 육신의 고통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유배를 당한 초기, 머물 곳이 없어 주막의 봉놋방에서 머물기도 했다고 하니

당시의 삼엄한 정국과 사나운 인심을 짐작하고도 남겠다.



그러나 다산에 정착한 그는 제자들을 키우며

깊은 대나무 숲 속의 초당을 학문의 집으로 만들어간다.

읽기와 사색과 토론과 쓰기…….

그가 남긴 저술만 500여 권에 이른다.

그 하나하나가 깊고 진실한 학문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하니, 그에게는 천재라는 말이 오히려 경박해 보인다.

천재적 재능만으로도 우직한 노력만으로도 이룰 수 없는 업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읽은 그의 글은 유배초기 네살배기 아들이 죽은 것을 슬퍼하며 쓴 글이었다.

그 다음은 굶고 학대받는 백성들을 슬퍼하며 쓴 <파리를 조문하는 글>…….



“순조 10년(1810) 경오년 여름에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가득차고 점점 번식하여 산골에까지 득실거렸다. 고루거각(高樓巨閣)에서도 일찍이 얼어죽지(凍死) 않더니 술집과 떡가게에 구름처럼 몰려들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 하고, 소년들은 성을 내며 파리 소탕전을 펴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혹은 파리 통발을 설치하여 거기에 걸려 죽게 하고, 혹은 독약을 쳐서 그 약기운에 어질어질하게 하여 섬멸하려 했다.

나는 말하였다.

아아! 이는 죽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는 굶주려 죽은 자의 변한 몸(轉身)이다. 아아! 기구하게 사는 생명이다. 애처롭게도 지난해 큰 기근을 겪고 또 겨울의 혹한을 겪었다. 그로 인해서 염병이 돌게 되었고 게다가 또 다시 가혹한 징수까지 당하여 수많은 시체가 길에 널려 즐비하였고, 그 시체를 버린 들것은 언덕을 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체에 훈훈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그 피부와 쌀이 썩어 문드러져 옛 추깃물(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과 새 추깃물이 괴어 엉겨서 그것이 변해 구더기가 되어 항하(恒河:인도 갠지스강의 한자이름)의 모래보다도 만배나 많았는데, 이 구더기가 날개를 가진 파리로 변해 인가로 날아드는 것이다.

아아! 이 쉬파리가 어찌 우리 인간의 무리(類)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널리 청해 모여들게 하니 서로 연락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라.”



조문의 글 앞에 쓴 글만으로도

그의 눈물이 느껴진다.



유명한 학자로만 알았던 그의 넘치는 감성과 진솔함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아직도 그의 저작을 제대로 읽어본 바 없지만,

그의 삶을 알아가며 그의 굳센 의지, 그리고 그것보다 더 진한 오기와도 같은 심정에 동감한다. 아니 솔직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살아서 그처럼 오래 죽음 이후를 생각했던 이가 또 있었을까?

자찬묘지명-自讚墓誌銘.

그가 스스로 묘지에 새길 글을 쓴 이유는,

자신의 뜻과 삶이 잘못된 권력에 의해 잘못 기록되어

자신과 비명에 간 형제, 벗들의 삶이 그것만으로 기억될까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이 정확하게 판단해주기를 기다리며, 그는 유배 이후의 삶을 살았다.

죽음 이후를 생각하며, 그는 살아있는 하루하루 옷깃을 여몄을 것이다.



"내가 너의 착함을 기록했으니 여러 장이 되었도다. 너의 감춰진 사실을 죄다 기록했기에 이 이상의 기록이 없으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사서육경을 안다라고 하였으나 그 실천한 바를 생각해보면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너야 명예를 널리 퍼뜨리고 싶겠지만 그러나 찬양이야 할게 없다. 몸소 실행하여 증명시켜 주어야만 널리 퍼지고 이름이 나게 된다. 너의 뜻 섞여 어지러운 것을 거두어들이고 너의 분별없이 함부로 날뜀을 그쳐서 부지런히 실천하기에 힘쓴다면 마침내 경사가 있으리라. "



그가 만년에 썼던 사암俟菴이라는 호는 ‘훗날을 기다린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살아있으되, 죽은 이후를 생각하며 살았던 삶.



정약용, 세상에는 이렇게 살아간 사람도 있다.

이 사람으로 인해,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해도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어떤 어려움에도 쉽게 불평하거나 핑계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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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 보림문학선 4
오카다 준 지음, 박종진 옮김, 이세 히데코 그림 / 보림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흔히 아이를 '키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어른이 할 일이란 그들을 지켜주는 것뿐이다.

이 책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책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키워가는지,

어떻게 소나기 같은 외로움과 여러 문제들에 대처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신기한 시간표>에서도 환상의 세계를 솜씨있게 다룬 작가는

아무래도 환상이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하는지 꿰뚫고 있는 것 같다. 

소나기를 피해 미끄럼틀 아래로 달려간 아이들은 잘 산다고는 할 수 없고,

경제적인 문제 말고도 저마다 결핍된 것이 있는 아이들은

아마모리라는 수수께끼 인물을 매개로 환상의 세계를 펼쳐나간다.

이 책의 이야기들이 감동을 주는 것은 결핍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하는

아이들의 노력 덕분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른의 감상이고,

아이들에게는 두근거릴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이 책을 읽고난 아이들은

외로움 속에서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아마모리씨나, 지휘봉이나 종이비행기 같은 것을..

말하자면 희망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자신만의 아마모리씨가

책 속에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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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미 공부법 - 대치동 공부천재들의 비밀 전략
한석원.최인호.한석만.김찬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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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bs강의에서 알게 된 강사들이 공부법 책을 만들었다는 말에

관심을 가지고 서점에서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친척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몇 권을 구입했다.

공부에 노력 이외엔 왕도가 없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각 학년. 각 방학마다 해야할 것들을 지정해주어서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급한 고2나 고3은 일년 안에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고 하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다시 공부해서 의대 같은 데나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방법이 손에 잡히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명강사의 명강의를 모든 학생이 똑같이 들어도

전부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선생님들의 말은 정말 가슴에 와 닿는다.

하지만 공부하는 방법 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좋은 방법론 책인 것 같다.

게을러진 정신을 바짝 일으키는 역할도 더불어 하고 말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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