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죽었다. 순간, 우리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시간이 입을 다물었다." 띠지에 적힌 글귀. 당연한 글이다. 당연하기에 아름답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유효한 말이다. 읽는 내내 슈텔라란 인물이 모호하다고 느꼈다. 슈텔라에 대한 고백-크리스티안의 감정이 고조될 때는 고백체가 되었고, 슈텔라와의 시간에 대한 회상- 소중한 마음을 담담한 문체가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까지 다 읽고나서 슈텔라는 곧 사랑, 첫사랑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슈텔라는 그렇게 아름답고 청년의 환상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관능미를 지녔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다른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으로.. 또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의 한용운 시인으로....... 수많은 남성 예술가들은 각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크프리트 렌츠는 그것이 너무나 소중한 나머지 침묵으로 봉인까지 했다. 담담한 어조지만, 열정으로 폭발할 것만 같은 고요다. 생각해보니, 슈텔라는 '비너스'와 정말 흡사하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바다를 배경으로 한 것도 그렇고, 모호한 것도 그렇다. 그리고 이 책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는 푸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정점의 물거품은 희다. 앞뒤로 물든 듯 점차 옅어지는 푸른빛... 그 물거품 속에서 슈텔라에 대한 크리스티안의 추억은 봉인되고 비너스는 물거품 속에서 태어났다.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자신의 첫사랑을 이렇게 간직하고 싶을까? 왠지 궁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