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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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온기와 같은 소설집,






『쇼코의 미소』







올 여름에 출간된 소설인데 겨울이 되어서야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난 후의 최종감상은 따뜻한 온기를 가진 좋은 소설이라는 느낌, 올 겨울 마음이 헛헛해질 때마다 펼쳐보면 참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기교나 수식어 없이도 무던한 문체와 덤덤하게 표현된 문장들이 이어지는 데 오히려 전달력을 높여 주었다. 표제작인『쇼코의 미소』를 비롯한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설을 완독한 후, 뒤편에 실린 두 개의 글에서 더 끌린 건 역시 작가의 말이다. 솔직한 고백이 더 진실되게 와닿았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림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고백했듯이, 자신을 사랑하는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부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더욱이 멀리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었고, 가까이 공감할 수 있었다. 




『쇼코의 미소』



일본문화 개방시기에 각 국의 문화교류로 인해 교환학생처럼 일본인 학생들이 화자가 다니는 A시 고등학교에 견학을 온다. 그 중 언어가 조금 되는 친구들의 집에서 홈스테이 하듯 잠시간 생활하며 머무르게 되는데, 쇼코는 화자인 '나'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늘 변화를 싫어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가족들이, 낯선 손님의 방문으로 활력을 찾고 행동하는 모습을 낯설게 본 나와 문화 차이 속에서 소통이 잠시 엇갈리기도 했던 나와 쇼코.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일본어인 할아버지는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과 전혀 다르게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하며 쇼코와 대화를 나눈다. 


쇼코가 일본으로 돌아가고 난 후엔, 나와 할아버지 각각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 한 대상을 두고 두 명이 동시에 펜팔을 하고 있는 것.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을 가진 쇼코는 나와는 다르게 냉소적이고 성숙한 소녀였고, 각자 자기 가족구성원인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가 보인 미소는 한 수 내려다보는 시선과 같았다. 쇼코는 더 먼 곳으로 여행을 꿈꿨고, 나는 한 번도 살던 도시를 떠날 생각따윈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갔고, 교환학생으로 캐나다를 다녀왔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찍었다. 나는 영화감독의 꿈을 꾸고 있었다.


대학 졸업할 즈음에 쇼코를 보러 일본에 간 나는 고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쇼코의 모습을 보게 된다. 노인의 고독한 모습을 한 나약한 모습의 쇼코의 미소. 그 손을 뿌리치며 나선 나는 꿈을 꾸면서 현실에 안주한 다른 이들을 얕잡아 보기도, 시기하기도 하고, 재능의 유무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무심했고 멀기만 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내가 가진 부채감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일나가던 엄마를 대신에 자신을 키워주셨다는 것과 알고 보니 유일한 관객이자 지지자였다는 것이었다. 병에 잠식된 아픈 몸을 이끌고 온 할아버지께 제대로 된 우산 하나 드리지 못해 우는 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다시 주고 받게 된 쇼코와의 편지, 만남. 쇼코는 도쿄에 가지 못했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고, 우울증을 극복했으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나는 다소 냉소적인 시선과 반복된 좌절로 절망에 무뎌져 이제 꿈을 종결시키려 한다. 


긴 여운이 남긴 소설이었다. 교차되고 서로 뜻하던 바와 다르게 반대로 흘러갔던 나와 쇼코의 삶. 그 시절의 우정과 꿈,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우정은 이상하게도 소유욕에 가까웠고, 지나고 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기도 하다. 그리고 정말 이것을 하게 될 줄 몰랐어, 여기만은 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 일들을 실제로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삶은 내 예상과는 늘 반대로 비껴나 흘러가기 때문에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멈춰진 것이라 할 수 없고, 꿈을 향해 달린다고 해서 늘 활기찬 것도 아니다. 안정적인 선택이 형편없는 것이고 비겁한 마음이라는 것도 오만한 생각이 아닌가. 결국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던 것 같다. 새삼 여러 삶 속에서 죽음에 대한 갈망과 의지에 대한 것들이 많은 얼굴로써 살아가는 구나 싶은 소설이었다.



『씬짜오, 씬짜오』



어느 방향에 따라 우리는 피해자가 될 수도, 또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지의 잘못보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화자의 가족이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웃 베트남인 가족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호 아저씨의 따뜻한 정이 담긴 요리와 응웬 아줌마의 애정 어린 관심, 그리고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자녀 투이까지. 서로를 경멸하는 부부 사이 외롭게 고립되어 가던 '나'는 그들 가족과 어울리며 소통이라는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화목한 분위기에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늘 그렇듯 행복은 깨지기 마련이다. 그 시작이 나라면 더욱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언급한 베트남전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무지한 시선, 그와 별반 다를 것 없던 '나'의 무지는 이미 존재한 틈을 갈라버릴 계기로 적용되고 만다. 유일한 우정을 상실한 엄마의 좌절. 그리고 그 아래 텅 빈 공허와 같이 포기만 남게 된 '나'는 그저 안녕이란 말로 이별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전쟁은 당하는 사람에겐 무참한 학살일 뿐, 이를 겪어보지 못한 바깥의 시선이 무엇을 알겠는가. 베트남 한 지역엔 한국군 증오비가 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분노했던 우리가 누군가에겐 가해자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우리가 고통받았던 피해만큼 무지했던 진실도 절대 잊혀서는 안될 것이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먼 친척이었던 순애 언니는 열한 살 엄마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작은 몸집의 소녀였다. 가족을 잃은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다정했던 언니를 사랑한 엄마. 이들의 관계의 변화를 그린 이야기다.


결혼을 하여 수줍은 소녀에서 여인이 되었던 순애 언니는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싶었으나, 당시 시대적 상황과 나라에 의해 처참히 부서지고 만다. 불통이 튈까 알면서도 모른 척 쉬쉬했던 시절, 무고한 일반 시민을 정치사범으로 몰아 죽이던 그야말로 권력의 일방적 통치로 암울한 시대였다. 어쩔 줄 모르던 순애 언니와 달리 엄마는 피해자의 모임에 참여하며, 그 목소리를 더 높였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하면 알아줄거라 생각했을 정도로 순진한 시절이 지나가고, 사법살인이 진행됐고, 사형은 피해갔으나 온갖 모진 고문에 뼈가 훤히 드러나 살거죽만 겨우 남은 채 돌아온 형부, 그리고 순애 언니의 척박한 삶. 


엄마가 직장에서 같은 편인 아빠를 만나고 가정을 꾸리고 생활이 안정해질수록 순애 언니와의 사이는 더욱 소원해진다. 더는 다치지 않기 위해,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서로를 배려했던 게 서로를 멀어지게 한 것이다. 늘그막에 다리 수술 후, 누워 있는 엄마에게 열여섯 소녀의 모습으로 와 인사를 건넨 순애 언니, 그녀의 딸이 건네준 그녀 사진을 보며 그 이름을 불러본다.



애정에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상황이 더해지면 부담이 되고, 부끄러움에 마주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슬프다. 과거 잘못된 권력 행사가 현재까지도 자행되고 있다는 게 사실, 더 슬픈 일 같기도 하다.




『한지와 영주』



2차 세계대전 속 어느 젊은 수사가 프랑스 한 황폐한 마을에 지었다는 수도원에서 장기 체류하게 된 '나'와 봉사할 겸 머물게 된 '한지'의 이야기.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올 수 있고, 기도하고 노동하고 싶은 이들은 얼마든지 머무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프랑스 여행 중 일주일만 머물기로 했던 게 일곱 달이 돼버렸다. 대학원을 휴학한 스물일곱 살. 가장 치열해야 할 이십 대에 멈추어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가족인 언니는 비난했고, 자신을 만나주어 그동안 고마웠단 남자친구는 이별을 고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마지막 나이트 가드 일을 하며 '나'와 한지는 대화를 나누며 점차 가까워진다. 나는 지질학을 연구했고 한지는 나이로비에서 수의사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전 남자친구와 같이 나 역시 사랑 받는 것에 익숙지 않고, 받아야 할 이유도 모르는 사람이다. 한지에게는 몸이 불편한, 평생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여동생 레아가 있다. 


한지에 대한 호감과 애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한지는 엇갈리고 만다. 어느새 '나'를 피하고 있는 한지. 그런 한지에게 짐이 되기 싫은 '나'는 사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서툰 사람일 뿐이다.

동생에 비해 자유로운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는 한지는 일정에 맞춰 떠났고, '나'는 침묵했다. 


그렇게 영주(나)는 자신의 마음을 매일 기록한 일기를 차가운 얼음 대륙에 묻는다. 


우리가 딛고 선 땅의 기원을 연구하는 영주와 그 땅을 딛고 선 생물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한지. 

한지는 왜 영주를 피했던 걸까.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동생에 대한 책임감으로 더는 자신의 행복을 견딜 수 없었을까, 아니면 자신과 함께 한다면 영주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먼 곳에서 온 노래』



같은 노래패 동아라 선후배인 미진과 소은. 엄격한 선후배 문화, 남학생 중심의 집행부, 상명하복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던 미진은 이제 막 스물이 지난 어린 여자애였다. 그녀 덕분에 시간이 흘러 학번 차가 난 후배인 소은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미진과 함께 자유로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러시아 유학을 떠났던 미진은 논문 심사를 앞두고, 서른 두 해를 넘기기 못하고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소은은 사랑 받는 것에 익숙지 않던 아이, 그러나 그런 소은의 보이기 싫은 나약하고 추악하다 여긴 모습들을 미진은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었다. 소은은 많이 아팠고, 미진 덕에 많이 괜찮아 졌으나, 미진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미진의 룸메이트 율랴와의 만남은 미진을 추억하기 위한 그들만의 추모식이 아니었을까.

소은과는 조금 다르지만, 율랴 역시 어릴 적 아버지의 말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며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 하지만 율랴 역시 특별한 사람이라고 미진은 말해주었다. 


세 사람의 관계성이 묘하게도 연결이 된다. 모두 자신의 내부 속 말의 힘에 세뇌 당해 살아왔던 사람들. 미진은 그걸 깨부수기 위해 애를 썼고, 소은은 끙끙 앓았으며, 율랴는 그 말에 갇혀 있었다. 마음 아프게도 이 역시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미카엘라』



모든 것에 감사한 여자와 그를 못마땅해 하는 딸.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해, 그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여자. 그녀의 딸은 약골이면서 노동 운동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무능한 아빠를 대신해 가사와 경제 활동 전반을 힘들게 해왔던 엄마를 못마땅해 한다. 자신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귀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엄마에게 한없이 무뚝뚝한 딸이다. 가정을 책임지지 못하면서 헛된 꿈만 꾸는 아빠를 지지해주는 엄마의 고생이 보기 힘든 것이다. 


여자는 미사가 끝난 후 딸네 집에서 잔다고 하였지만 쉬이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주말이라 모텔비가 배로 올랐고, 할 수 없이 작은 찜찔방으로 향하게 된다. 찜찔방 탈의실 구석에서 만난 노인이 그의 친구가 손녀를 잃었는데, 자식을 잃은 이유를 알기 위해 나선 딸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노인의 친구를 찾기 위해 같이 움직이게 된다. 겨우 겨우 이름을 확인하려고 보니 노인의 친구 손녀딸 세례명 또한 자신의 딸처럼 미카엘라, 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 땜에 고생스러울 적에 딸 아이가 존재함으로 인해 빛을 얻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상실의 고통에 제대로 된 진상 규명도 이뤄지지 않는 세월호 유족들이 모인 거리에서 여자는 딸과 재회하게 된다. 아픈 눈물이 흐르던 여자의 마음 속으로 그 이름을 부르던 순간이었다. 빛이 다시 그녀의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이처럼 억울한 일이 또 어딨을까, 생때같은 어린 아이들이, 아직 꽃도 채 피우기 전에 아스러진 그 아이들을 잃은 부모 앞에 아직도 변하지 못한 현실에 화만 치민다. 누구는 지겹다고 그만 이야기 하라며 피로 섞인 아무말이나 뱉는다. 어이가 없다. 자신의 일이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유족들에게는 끝난 일이 아니다. 늘 가슴 앓이하며 살아가야 할 일인데, 감히 헤아리지도 못할 것인데, 분통터질 일이다. 


시간 끌기, 눈속임, 변명들 모두 치우고 다시 새로 다잡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해결해나가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때까지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일이다. 


  




『비밀』



말자는 칠 년 전 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과 항암 치료 결과가 좋았고, 의사의 처방대로 꾸준히 식단 관리에 힘썼다. 규칙적인 스케줄로 먹고 자고 운동했다. 그리고 오 년 뒤,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암은 다시 재발했다. 이번엔 다른 쪽으로 전이된 터라,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딸 영숙이 맞벌이로 바쁜 터라 손녀딸 지민은 말자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식당 일을 나가야 했던 말자는 영숙에게 못 줬던 애정을 모두 지민에게 쏟게 된다. 곱게 곱게 오냐오냐 하며 키운 지민은 딸 내외가 전해오길 중국 작은 마을에서 선생님 일을 하느라고 바쁘다고 한다. 


말자는 딸 내외가 애써 감추려고 한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는 터였다. 이미 한 번 죽을 목숨, 더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 


가족끼리 서로를 위해 감춘 비밀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족이기에 허울 없이 가까울 때도 있고, 한없이 낯설 때도 있으며, 더없이 무거울 때도 있다. 가족 사이에 비밀이란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




해설에 언급되었듯이 최은영 작가의 문장은 화려한 기교가 없다, 어찌 보면 전통적인 성격을 지닌 소설들이라고 하였다. 이는 좋게 말하면 담백한 것이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미숙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바로 전달 받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의 모티브라고 할까, 전반적인 배경들 모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로 이뤄지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이야기부터 사소하고 일상적인 생활 전반의 이야기까지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인 것 같다.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작가라기엔 너무 능숙하고 자연스럽다. 많은 연습이 이어졌던 걸까, 타고난 이야기꾼인 걸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난 좋은 작가 한 명을 더 알아가 더할 나위 없이 기쁘기만 하다. 


이야기 속 인물들 모두 내가 가진 성질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어서 더욱더 공감이 갔다. 그래서 위로가 되기도 했다. 특히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와『한지와 영주』이 여운이 길었고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소중한 작품이 되었다. 『미카엘라』와 『먼 곳에서 온 노래』역시 가슴 아릿하게 좋았다. 


소중한 이에게 꼭 선물해주고픈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가 보여줄 다음 세상도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감사하다.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9쪽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 14쪽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24쪽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34쪽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57쪽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90쪽

세상은 사람에 대한 사람의 사랑을, 제 목숨을 몇 번이고 팔아서라도 사람을 살려내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을 도리어 비웃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너 너희 힘없는 인간들은 언제나 조심하고 사는 것이 좋을 거라고, 그 평범한 인간 여덟 명의 목숨 따위가 뭐가 대수냐고, 우리가 법이라고 하면 법이고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인 거라고, 꿇으라면 꿇으라고, 사람 같은 거 명분만 달아놓으면 쉽게 죽일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러니 입 다물고 말이나 잘 들으라고.
그들은 나라에 의해 살해되었다. 108-109쪽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를 바라왔다고.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나라는 것이 없었으면 했다고. 그게 삶을 겪어내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141-142쪽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164쪽

노래는 끝났고, 우리에게는 선배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간이 남아 있었다. 210쪽

아이는 저만의 숨으로, 빛으로 여자를 지켰다. 이 세상의 어둠이 그녀에게 속삭이지 못하도록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의 삶을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 천사들을 부모의 품으로부터 가로채갈 수는 없다. 누구도.
(…) 그리고 그이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너무 멀고 힘들지 않기를 바랐다. 다친 마음을 마음껏 짓밟고도 태연한 이 세상에서 그이들이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원했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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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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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탐정, 사와자키를 만나보자

 

 

『안녕, 긴 잠이여』

 

 

 

 

하라 료의 작품 중에서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내가 죽인 소녀』와 같은 전작이 아닌 세 번째 작품인 『안녕, 긴 잠이여』을 제일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요근래 탐정소설을 주로 탐독하고 있는 모양이 됐지만 새로운 탐정을 만나는 설레는 일이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리뷰 글에서 호평과 호평에 이은 글들을 보아하니, 너무 기대가 되었다.

 

사와자키는 40대 후반 남성이자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 와타나베는 사와자키를 탐정의 길로 인도한 파트너이자 탐정사무소의 소장. 그러나 십 여 년전 폭련단 조직 세이와카이의 각성제 거래현장을 잡기 위해 경찰이 준비한 1억엔과 조직이 준비한 3kg의 각성제를 미끼 역할을 맡게 된 와타나베가 들고 잠수를 타버린 것. 그의 행방을 비롯한 노여움은 파트너였던 사와자키에게로 향하게 된다. 와타나베의 거취와 돈의 행방 등을 끊임없이 묻는 경찰 니시고리 경부와 세이와카이의 간부 하시즈메. 후에 둘은 본인들의 목적을 위해 사와자키의 목숨을 기꺼이 살려주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야기는 약 400여일만에 도쿄로 돌아온 사와자키에게 한 달 전부터 기다린 의뢰인이 있었으며, 이를 대신 전해주던 노숙자 마스다 게이조와도 관계가 엮이면서 시작된다. 의뢰인 우오즈미 아키라는 고교 야구생일 당시 승부조작 혐의로 힘든 시기를 보낸 청년으로, 무혐의를 인정받았으나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었던 누나 유키가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주변의 시선으론 누나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답답한 동생으로 그려지지만, 사실은 죽기 전 울면서 전화한 유키가 승부조작을 권했단 사실,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경기에 임했으나 결국 지고 말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라커룸엔 오백만엔이 담긴 가방이 발견되었다는 것 등. 사건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고, 여전히 의문을 지울 수 없던 우오즈미가 습격을 당해 입원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게 된 계기가 되어준다.

 

사와자키는 어떤 인물을 대하든 간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 겁을 먹었던 연민을 느꼈던 간에 이를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무덤덤한 태도를 일관하며 냉정한 시각으로 사건의 증언부터 인물간의 관계가지 모두 파헤치고 다닌다.

 

사건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인물인 아키라의 누나 유키, 그녀는 정말 자살한 게 맞는 것인가, 아니면 타살이었을까. 그녀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가 무엇인가. 사건 뒤에 정말로 감춰진 사실들이 드러날수록 역시 추리소설의 묘미인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다. 진짜 숨겨진 흑막이 누구였는지도.

 

 

소설은 500페이지 이상을 육박한다. 긴 호흡이지만 차근히 읽어나간다면 좋을 것 같다. 허나 전작들을 읽어왔고, 사와자키 탐정과 그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탐색을 모두 끝낸 독자라면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을 테지만, 처음 읽는 독자는 나처럼 초반을 매우 지루해할 수도 있다. 중반까지 지지부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나, 중후반 말미에서부터 긴박한 서사 전개가 가쁜 호흡으로 진행되니 뭔가 몰입력을 확 올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후반은 정말 재미있게 봤다.

 

작가와 역자가 밝혔듯이 하라 료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하드보일드를 쓴다 함은 챈들러의 문체처럼 쓰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이 책의 제목도 챈들러의 작품에서 따와 지었을 정도. 이에 역자는 하라 료의 작품을 즐기는 방법으로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을 읽은 후, 하라 료이 작품을 읽길 추천하기도 한다. 그럼 더 알찬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이는 다음 기회에 전작들을 읽기 전에 시도해봐야 겠다.

 

사와자키는 나름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러나 그를 소개한 낭만마초라는 수식어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고독한 탐정이란 이미지와는 잘 맞지만...뉘앙스가 그닥. 낭만마초라...역시 별로.

 

 

소설이 쓰인 시대가 90년대 후반이기에 더 흥미로운 구석도 있었다. 전화서비스를 이용하는 부분도 그렇고, 여러모로 낯선 시대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와타나베라는 인물 때문에 경찰과 폭력단으로부터 끊임없이 들들 볶이는 사와자키를 보자니 안쓰럽기만 했는데, 그들의 촉이 맞았다는 걸 후에 드러나자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 의연한 태도에는 역시 구린 구석이 있었던가.

 

그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의 호평일색이었다는 점이 뭔가 재미든 뭐든, 보증된 책이란 인상을 받게 했다. 초반의 묵직한 분위기를 거뜬히 이겨내고 중반까지 나아갈 수 있는 독자들에게 하라 료의 사와자키 탐정을 만나보시길 추천드리고 싶다. 지금 이 계절과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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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일즈맨 앨버트 샘슨 미스터리
마이클 르윈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앨버트 샘슨 매력은 지금부터 -




『침묵의 세일즈맨』





『침묵의 세일즈맨』은 마이클 르윈의 앨버트 샘슨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1권인『인디애나 블루스』로부터 십 여 년이 흘렀으나, 앨버트 샘슨의 탐정 사무실은 여전히 파리만 날린다.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인대아나폴리스에서 입주해 있던 건물에선 쫓겨날 위기에 처했고, 결코 손대지 않으려 했던 비상금은 절반 이상 써버렸으며, 아내와 이혼한 후 만난 적 없는 딸이 12년 만에 찾아오겠다는 소식을 전한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 일상이 이어지고 위기의 샘슨은 급기야 신문에 수수료 할인 광고를 내걸게 되고, 이내 걸려온 전화를 통해 드디어 사건 의뢰가 들어온다. 의뢰인 토머스 부인은 로프터스라는 제약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던 남동생이 회사에서 폭발 사고를 당해 크게 다쳐 입원한 상태인데, 가족인 자신이 면회를 할 수 없는 것에 의문을 가진다. 회사에서는 최고의 의료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7개월째 감염 위험의 이유로 면회를 금하고 있다는 것이다. 


샘슨이 일을 맡고난 지 얼마 안 되어 오랜만에 상봉한 딸은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의 어엿한 아가씨로 성장해 있었고, 이제 메리앤이 아닌 샘이라 불러 달라 한다. 방학 동안 잠깐 들렀다는 샘. 딸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아빠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던 샘슨은 부녀상봉에 낯설어하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샘은 부족한 아빠에게 참으로 착한 딸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부자 새 아빠에게 받은 돈으로 친아빠의 궁핍한 삶의 기본적으로 필요할 요소들을 몰래 챙겨 두려 하는 것도 모자라, 그의 일에 대한 호기심에 꽤나 훌륭한 조수가 되어준다. 의뢰인의 정보를 함부로 공유할 수 없기에 합법적인 방침으로 일을 진행하기 위해 샘은 탐정 면허 또한 얻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가족의 면회를 금하는 회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으나, 얽히고 설킨 일련의 관계들은 뜻밖의 것들이라, 그 사이 샘슨의 의뢰인은 사고를 당해 입원해있는 존 피기의 누이인 토머스 부인에서 그의 아내인 린으로 바뀌게 된다. 토머스 부인은 목적인 돈이 수중에 들어오자 동전 뒤집듯 열의와 같은 태도가 식은 것도 모자라 그에게 의뢰한 일의 비용마저 내기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슨은 참으로 열심히 탐정으로서의 제 역할에 충실하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기 바쁘다. 


노련한 탐정은 아는 척 허세를 부리며 역으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 받기도 하며, 정보꾼 활용은 물론 적당한 거짓말과 추진력으로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한다. 한 단계씩 진실에 가까워져 갈수록, 그 특유의 감과 행동력을 통해 추리했던 것들이 하나 둘씩 맞아 들어가고 곧 큰 사건의 틀에 가까워져 갈수록 그에게 닥친 위기는 이전의 것들과는 강도가 다르게 그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지금은 혈육인 샘과 같이 있기도 하니 약점이 하나 더 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작품에서 오독했던 '내 여자'는 전 아내가 아닌 그의 '여자친구'였다.)


단순히 영업사원이 아니었던 존 피기, 화학을 전공했던 그는 추가 근무를 파트타임으로 쪼개가며 연구원 일을 맡아 했으며, 그의 친구이자 변호사에게 남긴 봉투에는 죽은 뒤에 열어보라는 메시지와 함께 거액의 돈이 담겨 있었다. 전 의뢰인과 달리 자식을 잃고 남편마저 잃어 무기력해진 존 피기의 부인 린은 샘슨의 새로운 의뢰인이 되어 주었고, 어르고 달랜 작전을 통해 병원으로 쳐들어간 샘슨은 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조금 빗나갔던 의심은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큰 진실로 다가왔고, 경찰은 그를 제지하기 이른다. 


전작에서도 종종 나왔지만 탐정이 되기 전에도 그는 이런 저런 일탈을 많이 행했고, 탐정으로서도 행하지 말아야 할 범법 행위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게 또한 그의 약점이기도 했다. 그의 친구 제리 밀러는 여전히 성실한 경찰이었고, 돈을 더 받았다고 해서 누가 말린다고 해서 탐정으로서 그는 절대 멈추지 않는 인물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해소되지 않은 그의 열정은 식기는 커녕 더 불타오른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제약회사의 직원이자 샘의 데이트 상대인 레이의 표현대로 샘슨은 참으로 재밌는 인물이다. 전작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그의 매력이 물씬 드러난다. 엉뚱하면서도 제 갈 길 간다는 마이웨이 스타일의 인물의 위트가 새삼 발휘되는 작품이다. 그의 언어가 웃겨서 피식 피식 웃게 된다. 마냥 유쾌한 스토리는 아닌데 흡입력과 몰입도가 대단하다. 왜 첫 번째 작품에서 네 번째로 건너 뛰었는지 알만하다. 역자의 후기에서도 밝혔듯이 이 시리즈 중 가장 크게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작품이라고 한다. 소시민적인 탐정이지만 역시 그가 맡은 사건의 흑막이랄까, 감추어진 진실과 뜻밖의 반전은 큰 재미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한 호흡에 읽기에도 좋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이건 출판사의 의도에 맞게 다음의 앨버트 샘슨 시리즈도 너무 궁금해지는 것이다. 처음 1편은 앨버트 심슨을 첫 선보이는 작품이니 처음으로 나와야 했고, 이 다음의 반응을 확신할 수 없으니, 제일 재밌는 작품을 먼저 내놓고 보는, 그런 작전이 잘 통할 것 같다. 소심하면서도 무시 당하는 건 견딜 수 없어 하던 바른 생활과는 거리가 먼 유연한? 탐정이었던 그의 매력과 오해했던 부분들이 해소될 정도로 너무 매력적이었다. 더 잘 표현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그는 참 매력적인 인물이다. 미미 여사의 안목이란. 역시 그녀가 감탄하며 영감을 받을 만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까지 포기 않고 막힐수록 뚝심 있게 제 할일 해나가는 샘슨이 멋지게 진실을 다다르는 순간, 그의 목숨이 위협의 정도는 컸지만, 읽는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지점은 분명 존재한다. 구구절절 써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이건 정말 추천하고 싶다. 설정은 하드 보일드적으로 보이지만 인물은 전혀 다르니, 그저 그가 이리저리 때때로 거짓말로 속이고, 아는 척 허세를 부리면서 알아내는 과정을 따라가 보는 건 무척 재밌는 일이다. 읽는 내내 요근래 쌓였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샘슨과 그의 딸인 샘의 활약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부녀 간의 대화와 호흡이란 뜻밖의 좋은 케미로 다가왔다.


결론은 다음 앨버트 샘슨 시리즈를 하루 빨리 만나고 싶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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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끝내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한 스푼의 시간>








명정은 재개발 지역을 앞둔 지역 인근의 오래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아내는 퇴직 후 빚더미에 얻은 세탁소를 운영에 도움이 되고자 아픈 몸을 모른 척 일하다 먼저 떠나고 말았다중매로 만난 아내와는 큰 다툼 없이 무던한 생을 같이 살았었다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어릴 적 해외로 유학을 가서 연락이 끊긴지 오래되었다공부를 마치고 오겠다는 게 삶의 터전으로 바뀌었고가정을 이뤘다는 문자 그대로의 서신만 보냈었던 아들은 비행기 사고로 생사여부가 불분명하게 됐다그런 아들로부터 커다란 택배하나가 도착하는데아들이 근무한 회사에서 개발했다던 인공로봇


둘째가 생긴다면 짓겠다했던 돌림자로 은결이라는 이름을 얻은 17세 소년의 모습을 한 로봇이 명정의 곁에 남게 된다이야기는 명정과 은결이라는 로봇그리고 동네에 남은 여러 가구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은결을 작동시키기까지 도와준 이는 동네에서 제일 가방 끈이 긴 영문학 박사를 수료한 세주똑 부러진 발음으로 전후 사정까지 알아봐준다로봇이 궁금한 아이들 시호와 준교는 심부름을 자초해 세탁소에 다녀간다어려운 가정 속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 앞엔 현실은 어쩜 그리 무정한지 잇따른 불행이 일상의 별 다를 놀라움 없이 천연덕스럽게도 잘만 일어난다그 사이 은결은 정해진 프로세스로 판단을 내리고 말을 했고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은결도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된다이를 테면 어린 시호가 다 커 어른이 되었을 때그에게 전한 소소한 연심이라든지그녀가 흘린 눈물에 대한 심장이 저릿하게 느껴지는 듯한 감각을 불안정한 심장박동 수로 느끼게 된다든지명정과 함께 하는 생활에서 세탁소 일에서도 별 다른 도움이 되진 않던 비싼 부품만 달고 있는 고급로봇이었던 은결도 성장을 하듯 요령을 익히며 살아가는 것이다.

 

인물간의 갈등보단 먹고 살아가기 힘든 척박한 현실에서 오는 서글픔이 곳곳에서 묻어난다별 것 아닌 것이지만 가해자는 떳떳하고 피해자는 고개를 수그리는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상황이 전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말 그대로 더러운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차곡차곡 쌓인 세월 속에서 동네의 환경을 바뀌었고건물주는 세를 올렸으며 인근엔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들어서게 된다세탁소 역시 마찬가지였다명정은 세탁소를 운영한 시간만큼 의도치 않게 동네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는 관찰자가 되었다세주는 이혼을 했고우울증이 시달리는 와중에 갓난쟁이를 돌봐야 했으며 양육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준교는 아픈 것을 참다 큰 병으로 도진 아버지를 잃고 지방의 대학에서 공부를 이어나가게 됐다시호는 행복과 희망을 꿈꾸지만 나아지는 게 없는 삶에서 일방적 폭력의 피해자가 됐고가족 구성원에게 위로조차 받지 못한 채 피로함만 느끼게 된다.

 

잔잔한 듯한 일상 속에서 작은 파동들이 수차례아프게 일어난다.

서글픈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한다그런 척박함 속 은결이라는 인공로봇이 뜻밖의 매개체가 되어주기도 한다뭔지 모르겠지만 이음새 역할을 해주고 있다로봇이기 때문에 전후 사정을 묻지 않고 들어줄 수 있으며별다른 여지없이 기대어 울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만큼 은결의 내부도 점차 삐걱댔지만 그보다 먼저 떠나게 된 명정에 이어 은결은 처음으로 충동적 행동으로 그의 유언을 찢는다항상 조심해야 했던 이불 빨래를 직접 발을 담그고 열심히 밟아댄다더불어 삶을 종결하려는 시도였다.

 

한 호흡으로 쉬지 않고 읽어나가서일까시호의 이야기에 이어 은결의 자살 시도처럼 보이는 행동을 했을 때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로봇도 자살을 할 수 있는 것인가홀로 남은 적막함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면어떻게 해야 하는가.

 

로봇연구원으로 일하고 싶다던그래서 명정이 미리 부탁했던 대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은결의 삶은 준교의 조카를 마주할 만큼 이어가게 된다정해진 프로세스와 판단한다와 하지 않는다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하고 싶지 않지만 한다등등 말의 함축적 의미를 헤아리고 행간을 읽어내는인간적 감성을 더해진 로봇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



구병모 작가의 작품은 아가미』 이후 두 번째로 접해보게 되었다아가미』 역시 신비로운 분위기가 일상 속에 침투한 소설이었다한 스푼의 시간』 역시 마찬가지이다이전의 작품의 문장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선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서 읽어야 할 만큼 걸리는 문장들이 많았다어조 자체가 로봇에 대한 서술이나 로봇이 말하는 부분이니 더 논리적으로 진술해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복잡한 회로를 들여다 본 듯이 어지러이 몇 번이나 되돌아가야 했다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힘이 탄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구체성이 담보되었기 때문에그저 설정만 가져온 것이 아닌 로봇의 발화를 했기 때문에 다소 딱딱하게 느껴졌지만 역으로 실체를 느껴볼 수 있던 게 아닌가 싶다좋은 소설이다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아프지만 봐야 할 현실에서 오리무중의 상태로 회피하고 있었던 나를 반성해야 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구절




일반인이 잔일에 부려먹기에는 다소 기능이 과하다 싶은 고가의 로봇보다 중요하거나 피곤한 일들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빨래처럼 일상 곳곳에 널려 있다. 세상은 한 통의 거대한 세탁기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젖은 면직물 더미처럼 엉켰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닳아간다. 단지 그뿐인 일이다. 29쪽

혈연을 비롯한 모든 관계를 한순간에 잘라내는 도구는 예리한 칼날이 아니다. 관계란 물에 적시면 어느 틈에 조직이 풀려 끊어지고 마는 낱장의 휴지에 불과하다. 51쪽

"보편적인 삶은, 아니 그냥 삶은, 어떤 것입니까"
(…) 데어버리도록 뜨겁고 질척거리며 비릿한 데다, 별다른 힘을 가하지 않고도 어느 결에 손쉽게 부서져버리는 그 무엇 114-115쪽

그러면 가족이란 결국 무거운 부담과 막대한 담보 및 거미줄 같은 채무로 연결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인질인가. (…) 가족이 휴식이나 피난처가 아니라 피로와 염증을 유발하는 일거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둘러선 구성원의 표정이 상기시킨다. 150쪽

아무런 약품을 집중 분사해도 직물과 분리되지 않는 오염이 생기게 마련이듯이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제거도 수정도 불가능한 한 점의 얼룩을 살아내야만 한다. 부주의하게 놓아둔 바람에 팽창과 수축을 거쳐 변형된 가죽처럼, 복원 불가능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157쪽

그러나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서 살아갈 수 없다. 대개 적의와 비난의 언사로 흘러넘치는 세계에서 그나마 들어줄 만한 말이라곤 공허한 말장난이나 모호한 비유 정도일 것이다. 그 밖에도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을 마주 대하며, 하기 싫은 일을 많이 양보해서 다섯 번 가운데 한 번은 하고, 맞추고 싶지 않은 분위기를 띄우며, 때론 누군가를 휴지통으로 삼기는커녕 누군가 뱉어낸 쓰레기를 자신이 기꺼이 삼켜주는 일도 한다. 170-171쪽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애져 있지. 184쪽

그는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 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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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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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평생 이 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을 알지 못할 거야."




『환상통』




덕질을 다루는 문학소설이라니그것도 스물다섯의 젊은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환상통은 몸의 한 부위나 장기가 물리적으로 없는 상태임에도 있는 것처럼 느끼는 감각을 말한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M의 시선, 2부는 만옥의 시선, 3부는 만옥을 사랑한 민규의 시선을 담은 이야기다. M과 만옥은 아이돌 N그룹 공개방송을 기다리다 우연히 여러 차례 만나게 되어 말을 나누게 되고가까워지게 되었다가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게 된다.

 

M과 만옥의 언어는 비슷한 듯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중심적으로 보는 것도 각기 다르다. M은 영상이나 이미지 등을 통해 좋아하는 마음을 발전시키며만옥은 멀리 앉아 있는 자리에서도 스크린 보다 무대 위의 그들의 흐릿한 모습을 보고자 한다이미지와 실재를 비교하는 듯한 전개 양상이 흥미롭다.


M은 통속적으로 아이돌이나 기타 서브 컬쳐를 즐기며 좋아하는 것을 폄하하는 시선들에 대해 대항하듯자신의 마음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M의 언어는 좋아하는 대상을 다 씹어 발라버리려는 듯 거칠고 과격하다반복되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넘어서고부족한 언어를 충족시키고자 여러 연애소설을 탐독하게 된다그러나 쉬이 이입하지 못하고 괴리감과 거부감마저 들게 되는데흔히 등장하는 남녀 설정이 나이든 남자와 어린 여자였기 때문이고자신의 사랑은 짝사랑의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렇게 덕질은 그냥 사랑도 아니고 이상한 사랑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M은 언어로 기록을 남기려 할수록 이유 모를 회의감 같은 감정이 일게 된다그건 마치 가닿을 수 없었던 무언가가 언어의 모습으로 재탄생될 때 그 진위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에 대한 허무함이 아니었을까대상에 대한 감정의 민낯을 보게 되었던 게 아닐까.


M은 그의 사랑이 기다림이라고 정의했다공개방송 무대를 기다렸으며다른 행사 무대의 스케줄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또 기다렸다어느 날그런 기다림의 끝에 영화촬영 소품으로 쓰인 눈을 보며 웃던 M은 그의 타오르던 사랑을 접게 된다.


만옥은 만개의 옥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의 여자이다. M과 같이 N그룹의 민규라는 멤버를 좋아하며사랑하고 있다그녀는 사생처럼 일거수일투족 좋아하는 멤버의 생활을 뒤쫓진 않지만 그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더 알고 싶고 더 이해하고 싶어 사랑을 하는 것이다마치 연인 관계처럼 무대 위 누군가 민규에게 조금만 닿아도 격렬하게 분노한다분노할 때의 만옥은 몰아일체의 경지의 다다른 듯 욕설을 내뱉곤 한다주변을 지치게 하는자신을 좀 먹듯이 괴롭히며 사랑하는 만옥은 사랑을 하는 것인지 괴로워하는 것인지헛갈리며 포기할 선택지가 없으니 차라리 네가 죽어주길 바라기도 한다는 생각마저 한다.

 

만옥의 사랑과 M의 사랑은 중복된 내용으로 발화하기 때문에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M은 어느샌가 덕질을 그만두었고만옥은 어느샌가 죽음을 맞이했다만옥의 죽음은 민규의 언어로 설명되어 있지만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다이상한 사랑을 하는 그들 중 더 이상한 사람인 만옥이 위태로운 모습으로만 비춰졌다 하더라도그 말로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보상 받기 위해서인 듯 과격하고 외설스럽기까지 한다뼈와 살을 발라준다느니눈썹 한 올 한 올 핥아 올려주고 싶다는 등그들만의 언어로 씨발죽어도 좋아는 그러한 감정과 욕망의 집합체 같은 표현인 것이다.


마지막 3부는 공교롭게도 앞선 두 사람이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와 이름이 같은 남자의 이야기다민규는 만옥을 짝사랑하는 남자이고한결같이 외면당하면서도 그 옆을 지키는 사람이다그는 만옥이 죽고 난 후그녀를 더 이해하고자 같이 덕질을 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함께한 M을 만나 당시의 만옥이 어땠는지를 듣곤 한다그렇게 여러 시도들이 쌓이고 끝내 좋아하는 이 발치에도 다가가치 못한 만옥 대신 민규라는 멤버에게 만옥의 이름으로 사인을 받는다.



**



소설 속엔 신선하고 날 것 그대로의 비유들이 넘쳐난다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욕망의 종합적인 표현으로도 보인다.

 

팬질덕질이라 불리우는 사랑이 특수성을 존중받지 못한 데서 오는짝사랑에도 속하지 않는 이상한 사랑이라 불리는 그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까발리고 있다이와 같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그들의 세계 속 전문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그리고 그들이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소비하는 방식예를 들어 사인회 당첨을 받기 위해 앨범을 몇 십장씩 사는 것과 같이 실제 경험한 사례를 넣어둔 것 같기도 하다실제로 작가는 휴학생 시절 덕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노라고 고백했다덕통사고에 대해서는 소설의 뒷부분 작가 인터뷰에 실려 있다다소 과격한 표현들이 난무하지만 통속적인 편견의 시선을 향한 외침들이 왠지 모를 통쾌함을 선사해준다.


작가는 서브컬쳐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이러한 작품도 쓸 수 있었다고 하였다나 또한 일명 덕질이라고 하는 서브컬쳐를 맹목적으로 좋아한 적도 있고정말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했었다.

 

팬이 아닌 일반인을 머글(해리포터에서 마법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머글의 시선에선 팬은 빠순이라고 폄하되며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경험이 많기 때문에나이가 더 먹었기 때문에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데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현실 속에서 환상을 쫓는 듯 보이는 빠순이들을 한심하게 여긴다그러한 가치 판단은 모두 각자의 것이다같은 현실 속에서도 모두 각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이렇듯 살아가는 방식 또한 다르다그저 하나의 일면인 것이다자신의 기준이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기준은 아니기 때문에각자의 취향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개개인의 기호사항이니까.

 

덕질이 이상한 사랑으로 치부되는 이유는 관계라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상대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얻어지는 관계성을 여기에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에그렇다고 이러한 애정을 단순히 이상하게 치부하는 것은 편견이자 관계의 권위를 따지는 것 같이 느껴지기에 되레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그러나 굳이 관계를 직면하며 얻어지는 것이 아니더라도개개인에게는 일대일의 관계가 아닐까그렇게 하나씩 모여 하나의 거대한 팬덤으로 묶이게 되고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특성만으로 든든함과 안정을 얻게 되는 것이다또한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도 오랜 시간 함께 해나간 사이에서의 견고한 신뢰도 부여된다.


이러한 특수한 관계성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소설이다.

M과 만옥의 기록은 어쩌면 그 누군가의 기록이 아닌 덕질을 하는 이들의 대체적인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는일종의 고백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어차피 덕질하는 거 행복한 덕질이 될 수 있도록맘껏 표출시킨 것이다뜨거운 열망을 담은 고백의 서사.



 **



시도는 참신했고신선했고 날 것 그대로의 생명력이 살아 있었으며과격하나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문단에서는 다뤄진 적 없었기 때문에 더 눈길이 갔을 것 같다호기심에 구미가 당기는 소설이지만 그들만의 언어에 거부감이 든다면 그 진입장벽을 넘어야만 하는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적 없는 것을 까발리는 것만큼 통쾌한 것도 없지 않나 싶다이러한 힘을 지니고 있는 젊은 작가가 부러운 동시에 다음 작품 또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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