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의 하나인 헤네랄리페 정원은
물길과 분수, 수로를 중요하게 배치해 지상의 낙원을 구현한 공간이다.
회랑 아래에 당시 텃밭과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어 생산 기능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로
수로를 깊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한다.
하루 5번 기도해야 했던 이슬람 율법에 따라 자주 씻어야 했기 때문이고,
아랍 세계에서 물은 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이 두 팔을 벌리듯 감싸는 독특한 구조로 설계된 세비야 스페인 광장은
반원 형태로 길게 펼쳐져 있어 그 규모에 압도당하는데
신대륙으로 향하는 배들이 출항했던 과달키비르강 쪽으로 열려 있다고 한다.
이는 스페인이 과거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을 품어 안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광장의 웅장함도 대단하지만, 스페인 각 주를 하나씩 대표하는 알파벳순으로 배치된
벤치의 섬세한 타일을 보며 스페인 역사를 알고 보면 진짜 재미있겠다며
우리가 여행할 도시 벤치를 찾아 앉아서 인증샷을 찍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당시에는 가우디보다 더 알려진 건축가였던 가우디의 라이벌,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가 건축한 카탈루냐 음악당에서
신년 맞이 발레 공연+음악회 공연을 받았는데 예산상 2층 자리를 예약했지만
2층이 천장과 가까워 더 좋다며 행복했었다.
꿀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는 샹들리에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채광창으로 빛이 축복처럼 비치는 황홀한 시각적 환희는
카탈루냐 모더니즘 양식을 잘 보여준다.
2026년 6월 10일 안토니 가우디 선종 100주기를 맞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예수 그리스도의 탑 봉헌식이 있었다.
엄마랑 100주기에 다시 오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영광 파사드의 종탑 네 개를 비롯한 마무리 작업이 끝나갈 때는
엄마와의 약속을 꼭 지키기 위해 돈과 시간, 체력을 잘 준비해나가야겠다.
궁정화가가 되기 위해 당시 궁정화가였던 프란시스코 바예우의 누이 호세파와 결혼하여
최고의 궁정화가로 부와 명예를 누렸던 고야가 1808년 5월 2일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마드리드를 침략했을 때 국민을 지켜야 하는 왕실과 귀족들은 사라지고
눈먼 권력자들 사이에서 자신을 지키야 했던 민중들이 저항하다 이튿날 처형당한 모습에
궁정으로의 복귀를 거절하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검은 그림 연작을 그렸던 것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1788년 궁정화가로서 성공을 맛보던 시절 그린
<산 이시드로 초원>과 30년 뒤 그린 <산 이시드로 로순례>는 정말 같은 사람이 그린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 궁정화가가 되기를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았던 가난했지만
원대한 포부를 품은 시골 청년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다,
광기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
뭔가 애잔하면서도 뭉클했다. 한 화가 안에서 이렇게나 급격한 화풍의 변화는
미술사에서도 보기 드문 편인데, 그만큼 그가 살아낸 시대가 얼마나 가혹했는지,
그 시대를 살아가며 양심을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생각하니,
고야의 작품이 더욱 웅장하게 다가왔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스페인의 도시를 새록새록 떠올리며
진짜 스페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너무나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