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가 사랑하는 경환을 선택했더라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해미는 경환이 아니라 더 안정적이고 믿을 만한 경환의 사촌 지수 형을 선택했다.
이기적이고 똑똑했던 해미의 선택이 결국 모두를 파멸의 길고 이끈 것일까?
지수가 질투심에 불타지 않고, 아들에 집착하지 않고, 딸들이 살아갈 시대는
여성도 한 인격체로 살아갈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아내를 사랑해 주는 좀 더 자상한 남편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그 똑똑하고 당돌했던 해미가 왜 설명할 수 없는 분노 속에서도
그녀를 핍박하는 시대에 맞서지 못했을까, 왜 강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했는지 안타까웠다.
정말 해미가 무자비하고 변덕스러운 여자라서 지수와 경환이 한 여자에게 사로잡혀
서로를 불행하게 만든 것일까? 1951년 배가 너무 고픈 고작 16살이던 해미와 경환이
그들의 사랑이 이끄는 대로 용기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네가 날 떠나면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는 해미의 경고는 서로를 향한 것이었고,
그들은 결코 자신들을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 것 같다.
그 시절 겁도 없이 경환과 술에 취해 웃고 떠들던 되바라진 계집애였던
해미조차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닌 여자들의 삶을 강요했던 시대에서
살아갔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빈 껍데기 같은 어머니의 삶이 안쓰럽지만 고맙기도 했고 어머니가 없었다면
자신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경환과 결혼해서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줄곧 싸웠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해미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비겁한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용기를 내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었음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전쟁, 피난민, 친척이라도 서로의 가족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던 참혹하고 애달팠던
시대의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장편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