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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조이스 캐럴 오츠 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타임> 올해 최고의 책 10에 선정되고,
<뉴요커> 등 유수의 매체들들에 올해의 책으로 꼽히고
많은 독자들과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책답게 몰입도가 높았다.
러시아 극동 지방, 스페인, 에도시대 일본,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
여러 나라와 여러 시대에 흩어진 한국계 디아스포라 이야기라 애잔했다.
막연하게 스치듯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슬픈 운명과 상흔, 희망과 갈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다소 무거워졌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역사의 일부분이지만 그 시대적 상황에 대해,
추방당한 사람들의 역사에 너무 무지해서 그런지,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의 삶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열린 결말인지 은유적 표현인지 결말의 의미를 종잡을 수 없고
너무 모호하게 여겨지는 단편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다소 어려웠다.
다음에 여유가 있을 때 천천히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마로프>에서 북한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 거주 중인 54세 이주연 씨의
아들로 추정되는 소련 출신 30세 미들급 복서 니콜라이 코마로프가
소련 밖에서 치르는 것 경기가 미국인들을 위한 쇼라는 것은
냉전 시대에서 어느 나라에도 속할 수 없이 희생되었던 한국인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권투도 비즈니스 쇼라며
상대방 미국인 선수에게 져야 돈을 받고 부모님에게 돈을 보내줄 수 있다는 장면은
냉전의 역사에서 스포츠 경쟁을 하고, 그 누구의 편에도 속하지 못한
한국인의 운명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니콜라이가 주연 씨의 아들이었더라면
마음이 좀 덜 아팠을까, 니콜라이에게 진짜 엄마의 존재를 알려주고
싶어 하던 자신의 아이를 잃고 방황하고 살았던 주연 씨의 운명도 안쓰럽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는 니콜라이의 모습도 안타깝고, 마음이 찡해졌다.
<역참에서>는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조선 침략 시 붙잡혀 온
조선인 고아 소년 유미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매일 주군의 자제가 벌이는
괴상한 행동들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너무 가여웠다.
곡예단의 짐승처럼 취급당하며, 전쟁에 굶주려 있고 허영심과 탐욕이
가득한 인간 밑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두 눈이 생기 있고 초롱초롱하고
두려움 없이 자라나는 소년이라니 애잔하고도 기특했다.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평화롭게 살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처럼
종전 후에 아주 외진 산골 고향으로 돌아와 은둔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달의 골짜기>도 인상적이었다. 사라진 삼촌을 찾고 있다며 나타난 사내가
동수에게 추방당했지만 안전하니 운이 좋은 거라며, 서로로부터,
하찮은 탐욕과 시시한 드라마들로부터는 안전하지 않을지 몰라도
더 큰 광기로부터는 안전하다면 일평생 기꺼이 추방당해 사는 삶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며 그렇지 못했던 삼촌은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전쟁 이후 살아남지 못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전쟁의 상흔을 안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간 사람도, 대한민국을 떠나간 사람도
각자의 그리움과 애한을 털쳐버리지 못했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읽는 내내 약간 숙연해졌다.
#벌집과꿀 #폴윤 #한국계디아스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