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이지윤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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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세계미술의 최전선을 오가는 글로벌 아트디렉터가 들려주는 미술 생태계에 관한 흥미로운 책이었다.

숨 프로젝트 대표이자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아트디렉터, 미술경영 전문가인 저자는

영국에서 오랜 공부 끝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해외 문물을 한국시장에 접목해온 사람으로 손꼽힌다.

미술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힘과 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장되는지,

미술계의 속사정을 생생하게 들려주어서 재미있었다.

예술과 비지니스가 만나 미술시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고 나서도

작품의 가격은 납득하기는 힘들긴 했지만,

걸작이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미술시장에서, 컬렉터의 손에서 3번 태어난다는 말은 이해하게 되었다.

시카고 여행에서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 앞에서 그 작품의 의미를 잘 모른채

인증샷을 마구 마구 찍었었는데, 그 조각이 21세기 미술이 기존의 미술 생태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차원의 미술로의 대전환을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하니 반갑기도 하고

그 의미가 이해가 잘 되었다. 인증샷을 찍으면서도 이 조각이 왜 이리 유명할까 싶었는데,

어쨌든 인타그램 해시태그 게시물만 수백만 건을 웃도는 명실상부 이 시대

가장 아이코닉한 조각임은 분명하다.

아니쉬 카푸어는 직접 손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만 할 뿐이다. 자신은 재료가 지닌 물질성의 힘을 믿고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게 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하는데, 미켈란젤로와 같은 장인 정신의 작가가 들으면 정말 깜짝 놀랄 일이다.

우리가 아는 미술은 작가의 손끝에서 작품이 완성되는데 현대 미술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실제로 168개의 스테인리스 강판을 용접하고 이어 붙인 후 12 단계에 이르는 연마 과정을 거치는 것은

세계적인 구조 엔지니어링 회사 아룹이었다. 마치 건축물이 세워지듯 작가는 드로잉을 하고

제작은 다른 사람들이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시카고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오목하고 볼록한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이 만들어내는 반사성에 의해

세상 모든 것의 에너지가 들어갔다 나가며 한순간도 쉬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 핵심인 이 작품 앞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인증샷을 찍어대던지 정말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졌었다.

제작비 가운데 200만 달러의 기금은 매일 관람객의 지문, 비둘기 배설물, 먼지를 닦는데 쓰인다니

참 재미있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매일매일 변하는 시간과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우주의 시간과 세계는 계속해서 변한다는 철학을 담은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 꼭 봐야 할 명소가 되었다.

영국 사치 갤러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놀라움을 안겨준 작품이라는

리처드 윌슨의 <20:50> 도 궁금해졌다.

물질과 공간으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힘이 엄청나고, 내부의 엔진오일의 강한 냄새로 인해

전시장 앞에 "임산부는 들어가지 마세요. 어지러울 수 있으며 어린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수칙도 쓰여있다니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마치 검은 거울에 비치듯 오일 바다에 투영된 실내 구조가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만들며

관람객을 압도한다니 공간이 주는 감흥과 경험의 변화를 미술 언어로 표현한

기념비적인 실험적인 작품이라니 영국을 방문한다면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4세기 미술품 가격은 오늘날처럼 특정 스타작가로 몰리지 않았다고 한다.

미술품 가격은 재료비와 노동력을 기준으로 하면서 재정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조정되었는데

흑사병으로 혼란과 불황이 덮친 시대에 미술시장에 갑작스럽게 수요가 몰리며

미술품 가격이 급상승했다고 하니 흥미로웠다.

팬데믹이 오면 미술시장과 증권시장을 주목하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코로나 19가 발발했을 당시 미술시장은 어마어마한 호황을 맞이했다고 한다.

정물화가 왜 많은지, 꽃 그림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감옥과 사창가에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그 지역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재생할 수 있고 세계적인 관광지로 등극했는지,

아트 마켓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 전혀 알지 못했던 다른 세상 이야기 같던

미술계의 속사정까지 두루두루 알 수 있어 정말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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