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은 상나라 말기부터 주나라 초기에 활약한 책사이자 군사전략가로,
본명은 강상 또는 여성이다. 오랜 시간 곤궁한 삶을 견디며 위수 근처에서 때를 기다리던 중
주나라의 문왕을 만나 스승으로 발탁되었다. 문왕은 그를 선대부터 애타게 기다려온 인물이란 뜻에서
태공망이라 칭했다. 그런데 강태공은 단순히 운 좋게 왕을 만나 늙은 낚시꾼이 아니라
시대를 관망하며 스스로를 철저히 준비한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의 결정체이다.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
과거의 실패나 떠나간 인연에 헛된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강태공의 서슬 푸른 철학이다.
지나간 어제에 매달리느라 오늘 새로 길어 올려야 할 오늘의 시간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준엄한 경고를 잊지 않아야겠다. 한번 엎질러진 것은 이미 엎질러진 것이다.
그것을 다시 담으려 애쓰는 동안 새로 길어올 물의 시간을 잃는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으니 빈그릇을 들고 일어서서 현실을 직시하라는
그의 냉철한 호통일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강태공은 상나라의 폭군 주왕 밑에서 잠시 관직 생활을 한 적 있었지만
그 조직이 구제불능임을 간파한 순간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고 한다.
침몰하는 배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건져냈던 것이다.
그리고는 강가로 가서 일흔이 될 때까지 자기 칼을 녹슬지 않게 닦으며 기다렸던 것이다.
그가 강가에서 띄운 것은 곧은 낚싯바늘에다 미끼도 없었다.
애초에 물고기를 잡으려고 낚시를 한 게 아닌 것이다.
단지 시대를 잡으려 했을 뿐이다.
자기를 알아볼 사람이 올 때까지 자신을 헐값에 팔지 않겠다는 결의,
굽실거리며 유세객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지 않겠다는 자존이었다.
강태공의 삶을 통해 미련을 베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미련을 차단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미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다 견디는데 나만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견디는 자가 미덕이고 떠나는 자는 패배자라는 낡은 문법을 버려야 한다.
견뎌야 할 자리에서만 견디고 떠나야 할 자리에서는 단 한 하루도 더 머물지 않는 것이
70년의 칼끝을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침몰하는 배에 남는 것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 때문이다.
더 머물면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만 깨달으면 된다.
흘러간 시간이 아까워 떠나지 못하는 사람과 흘러간 시간을 자산으로 삼아 떠나는 사람의 차이는
종이 한 차이다. 같은 10년이라도 누군가는 그 10년에 묶여 다음 10년을 잃고
누군가는 그 10년을 발판으로 다음 10년을 연다. 그 시간이 자신에게 가르쳐 준 것이 무엇이었고
더는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가르침이 끝난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식객이다.
강태공은 식객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는 가르침이 끝난 교실 문을 조용히 닫고 나왔던 것이다.
그 자리가 아직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익숙하게 만들고 있을 뿐인,
그 사람이 나를 자라게 하는지 아니면 단지 외롭지 않게 할 뿐인지,
그 일이 나를 채우는지 아니면 시간표를 채울 뿐인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다면 흘러간 시간 속에서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어진다.
정답은 이미 오늘의 자리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다.
떠난 자리에 대해 해명을 만들지 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동안 고마웠다고 여기까지였다고 짧게 인사하고 묵묵히 살아내며 그만이다.
오늘은 무서워하면 안 된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결과가 즉시 나오지 않지만 어제의 후회는 즉각적이다.
머릿속에서 곧장 장면이 재생되고 감정이 솟아오르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이라는 막막한 시간을 피해 어제라는 익숙한 감정의 방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그 패턴을 끊는 일은 쉽지 않지만 강태공의 방식에서 배울 수 있다.
오늘을 채우는 기준을 결과가 아니라 작업에 두는 것이다.
오늘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오늘 무엇을 다듬었는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쓸 자리가 보이지 않아도 그저 칼날을 갈고 또 갈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의 작은 작업이 쌓여 강가에 앉은 한 노인이 천하의 스승이 되었다.
각자의 칼날에 오늘 단 한 번 손가락을 대보는 그 감각만으로도 어제의 방에서 발을 빼낼 수 있음을
오늘을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