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은 나약함이 아니라고 살아남기 위한 뇌의 신호라고,
불안한 나에게 무기력해도 괜찮다고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다정하게 토닥토닥여주는 뇌과학적 처방전이었다.
노력이라는 단어가 갈 길을 잃은 채 허망한 메아리가 되어 자꾸만 돌아오는
거대한 절벽 앞에 계속 서 있다 보면, 초라한 나의 모습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점점 더 고립되어 가고 침묵하게 되는 것이 도태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파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선포한 최후의 비상상태이자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자책으로부터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뇌의 생존 파업이라는 말을 들으니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다시 일어서기 위한 시간을 벌려는 처절하고도 본능적인
신경학적 저항이라며, 왜 지금 이 자리에 멈춰 서 있는지, 왜 자꾸만 세상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는지를
해석해 주니까 무너지지 말라고 꼭 껴안아 주는 것 같아 위안이 되었다.
그야말로 따뜻한 뇌과학적 처방이라 힘을 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나의 뇌가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려서
사소한 일상도 초고난도 과업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번아웃된 뇌가 싸구려 도파민에 의지해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는 것을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나의 뇌는 결함 덩어리가 아니라 척박한 환경 속에서 나를 살려내려고
고군분투해온 가장 충실한 파트너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의 짐이 정말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를 살리기 위해 애써 온 나의 뇌와 다정하게 마주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인간의 뇌는 진화론적으로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대조하고 저울질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문명화되지 않았던 시절, 우리 조상에게 무리 내에서의 위치는 곧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서열이 높으면 사냥해온 고기의 가장 좋은 부위를 먼저 배분받고
적이 침입할 때 동굴 안쪽에 가장 안전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남들보다 뒤처지는 신호를 감지하며 마치 맹수를 만난 것처럼
비상벨이 울리도록 진화했다. 우리가 남의 성공 소식에 가슴이 철렁하고 잠을 설치는 이유다.
타인보다 조금 더 나은 성과를 내거나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느낄 때 복측 선조체에서 도파민이라는
강력한 행복물질을 뿜어낸다. 문제는 이 엔진이 거꾸로 작동할 때다.
내가 타인보다 뒤쳐진다는 정보가 입력되면 엔진은 보상 신호를 뚝 끊고 강력한 스트레스 신호를 올린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뇌과학적으로 맞는 말이다.
단순히 부럽다는 감정만 느끼는 게 아니라 타인의 행복 앞에서 신체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
전대상 피질이 유독 민감하게 활성화되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다.
뇌는 심리적 상처와 물리적 상처를 구분하지 않는다.
질투는 감정을 넘어 몸이 부서지는 아픔과 동일한 사건이다.
뇌는 영리하고 잔인한 부위라서 해결되지 않는 고통이 장기화되면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감각을 저하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결국 무기력증과 열등감은 신경학적 차단의 결과이다.
나태해서가 아니라 추가적인 심리적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뇌가 스스로 반응 스위치를 내린 생존전략인 것이다.
이타주의는 심혈관 건강을 지키고 생명의 시계를 천천히 흐르기 흐르게 한다는 점에서
남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영리한 본능으로 볼 수가 있다.
옥시토신은 타인을 구원함과 동시에 우리 자신의 존엄을 되찾게 한다.
이타주의는 숭고한 성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고립의 늪에 빠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영리하고 지혜로운 생존전략이다.
사회적 기여는 마비되었던 전전두엽을 깨우는 훌륭한 마중물이다.ㄴ
나의 뇌 용량이 가득 찬 하드 디스크처럼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의 뇌는 평생 진화한다. 성인이 되어도 새로운 경험과 학습에 따라
뇌가 성장하는 사실은 입증되었다. 반복의 경험이 특정한 뉴런과 뉴런 사이의 연결을
굵고 튼튼한 고속도로로 만들고 시냅스를 강화한다.
신경회로가 재구성되고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영역에선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은 배울수록 그리고 낯선 환경에 부딪힐수록 실제로 뇌의 지형이 달라진다.
인간의 뇌는 고장 난 하드디스크가 아니라 시대에 맞춰 스스로 창조하는 역동적인 유기체이다.
인간의 뇌는 진화적으로 타인과 끊임없이 교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다정한 미소를 지어도 우리 뇌는 속지 않는다.
거울뉴런은 나와 같은 체온을 지닌 진짜 인간과 눈을 맞출 때만 강렬하게 불타오른다.
가짜 위로를 건네는 차가운 알고리즘 앞에서는 활성화되지 않는 것이다.
기계적인 노동은 AI에게 넘겨주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진짜 공감을 향해 도약해야 한다.
한 사람의 위기를 감지하고 즉각 반응하는 사회적 전두엽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함을,
뇌과학적으로 알려주는 책이었다.
단절된 신경망을 복구할 옥시토신, 성취감을 일깨울 도파민, 평온을 되찾을 세로토닌이
서로를 잇는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제조되어야 함을,
우리 사회가 더 촘촘한 공명의 시냅스로 연결되어야 함을 알려주는 다정한 책이었다.
약함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넘어져도 괜찮다고 뇌친화적으로 위로해 주는 책이라
위안이 많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