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사 출신의 서울대 교수님이라고 하니,
평범한 진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편견일까,
아니면 우리나라가 여전히 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짚어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을 시작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고 험해서 그 벽을 넘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틈틈이 독학사 시험을 준비해서 마침내 학위를 얻었다고 한다.
마침 그 무렵 고엽제에 대한 국가 지원이 확대되면서
아버지 병원비와 대학 등록금이 면제되면서 경제적 부담이 한결 줄어들어
마음 놓고 다시 공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늦은 나이에 생물학과에 진학해 대학과 대학원을 거친 교수님의 인생이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의 계절을 기다리는 식물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 임용을 준비하면서 혹독한 세상의 시선을 발견했다는 고백이 와닿았다.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교의 서열을 따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학부를 나온 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가 가능성을 재단하던 갑론을박 속에서,
독학사 출신은 아예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에겐 전혀 부끄럽지 않은 학위이고, 그 선택에 후회는 없었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더 높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자, 움츠러드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경계를 넘는 것보다 그 경계를 넘겠다고 마음먹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막상 마음먹고 손을 뻗어보니, 생각보다 경계는 단단하지 않았고
실제의 벽은 자신 안의 벽, 그리고 사람들 인식 속의 벽이었음을 말이다.
용기를 내어 그 벽을 뚫고 교수가 되어 연구를 업으로 이어가면서
실패도 경험이라는 걸, 해보지도 않고 접는다면 결국 움츠러듦을 축적할 뿐이라는 걸,
움츠러들다 보면 절실하게 손을 뻗어야 할 때조차 뻗을 수 없게 된다는 걸 말이다.
식물다움의 정의를 뒤흔드는 끈끈이주걱, 파리지옥, 카펜시스, 아그나타 등
식충 식물은 이름도 생김새도 기이하고 낯설다.
독립 생명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단번에 배반하고
뿌리로는 얻기 힘든 질소와 인, 칼륨 같은 필수 원소를 동물의 몸에서 직접 흡수한다.
식충 식물의 육식 행위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장과 번식을 가능하게 하는데,
500종의 식물들이 서로 다른 계통에서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진화한 결과이다.
식물계의 이단아처럼 보이는 이들의 육식성이 우연한 이탈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 변이이자 전략이라는 뜻이다.
이미 존재했던 가능성의 연장으로 유전체 분석 결과, 포식 기구로 활용되는
식충 식물의 잎이 식물 고유의 방어 기능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생경한 육식성이 사실은 식물성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가까이에 내재해 있던 가능성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성과 육식성, 정통과 이단, 가능과 불가능.
이 모든 구분은 우리 인간이 그어놓은 선일 뿐,
생명의 진화가 그러하듯
삶 역시 뚜렷한 경계보다 스펙트럼에 가깝다는 말이 가슴 묵직이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