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역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는 더더욱 몰랐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베네수엘라 역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못지않게 파란만장함을 알게 되었다.
격동의 시절을 관통하고 있는 3대에 걸친 베네수엘라판 대하소설이었다.
그런데 완전 픽션은 아닌 듯해서 더 흥미진진했다.
이 작품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공고히 자리매김하게 된 미겔 본푸아는
베네수엘라인 어머니와 프랑스계 칠레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작가가 되어 마라카이보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는 크리스토발과
외교관인 어머니의 부임지를 따라 여러 나라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프랑스로 돌아와 학업을 이어간
작가가 겹쳐져 보였다. 자신의 모계 가족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역사적 사실에 곁들여진 마술적 리얼리즘, 달변의 서사, 시적이고 풍요로운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나라는 다르지만, 사람 사는 어느 곳이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는
전설과 같이 많은 일을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크리스토발이 장례식에서 관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처음 만난 할아버지 안토니오는
갓난아기 때 성당 앞에 버려진 고아였다. 성당 앞 계단에서의 구걸에 도움이 되기에
말 못 하는 테레사가 안토니오를 거두게 되었지만, 테레사는 자신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미래가
그저 자리를 잘못 골라 태어난 죄로 죽을 때까지 고독을 끌고 다녀야 하는 거리의 부랑자에게
약속된 운명뿐이라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는 심정을 지닌 여자였다.
그녀의 삶에서는 최선을 다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자라났기에 안토니오가
버려진 운명을 딛고 도시의 전설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리브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춘부들이 있던 마제스틱에서 일하던 어느 날,
안토니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과 동일한 담배 롤러를 가지고 있는 뱃사람 엘리아스와 만난다.
안토니오가 가지고 있던 직사각형 형태에 섬세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새겨진 은색 양철 케이스를 보고
죄책감에 휩싸인 사람처럼 돌아서서 사라졌던 엘리아스는 돌아와
그의 형제 돈 빅토르 에미로 몬테로에게 안토니오를 부탁하는 편지와 지폐 뭉치를 전해주고 사라진다.
취객들과 싸움꾼들, 유곽의 여자들, 기만적인 비열함, 돈을 차지하려는 질투, 계산된 유혹만이
가득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14살의 안토니오는 마제스틱을 과감히 떠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격정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의 엘리아스와 전혀 반대 기질을 가진 돈 빅토르는 몬테로의 남자들은
대대로 배를 타야 한다는 가문의 규율을 깨고 용맹스럽게 법조인의 길을 선택했고,
형 엘이아스는 가문의 뜻을 받아들였다. 돈 빅토르는 자기 입으로 내뱉은 약속은 꼭 지키고
흔들림 없는 원칙을 지닌 올곧고 차분하고 절제된 사람이었으며, 형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14살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된 안토니오에게 진짜 가정,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안토니오는 의사가 되었고, 술리아 최초의 여자 의사가 된 아나 마리아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어여쁜 딸 베네수엘라도 얻게 된다. 안토니오의 삶도 파란만장하지만,
그 시절 최초의 여자 의사가 된다는 것은 그녀의 부모님들의 삶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들의 부모님 이야기들도 옴니버스 영화 같은 삶이라 정말 대하소설 축소판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