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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는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멘델에서 합성생물학까지, 유전자를 다시 읽다
김훈기 지음, 전방욱 감수 / 동아엠앤비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포스트 게놈 시대, 유전 vs 환경의 오래된 논쟁을 넘어
멘델에서 합성유전학까지 유전자로써 인간을 읽어내는 폭넓은 시각으로
생명과학의 전체 지도를 그려주는 책이다.
생명과학에 흥미가 있는 학생이라면 푹 빠져 읽을 수밖에 없고,
이 한 권으로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면서도 관심 있을 수밖에 없는
유전학 부분을 자연스럽게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도 있어서
학생들에게 강추해 주고 싶은 책이었다.
한 개체의 탄생은 가장 대표적이거나 가장 건강한 정자와 난자의 수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시작이 부모의 의지나 설계가 아닌,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일어난
무작위적인 결합의 결과라는 것은 중요하다.
자녀가 자신의 생물학적 특성을 두고 부모를 원망하거나, 부모가 자녀의 어떤 면에 대해
스스로를 탓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수정된 후 출생에 이르기까지 약 10개월 동안 우리의 유전자는 다양한 환경에서 후천적으로 형성되며,
출생 시에는 산도를 통과하면서 어머니의 질과 그 주변에 사는 다양한 미생물에 노출되는 미생물 샤워,
이후 모유에 포함된 미생물과 영양분에 의해 장내 생태계는 더욱 풍부해진다.
장내 미생물은 유전자 수만 따지면 인간 유전자보다 훨씬 많고,
면역계, 소화계, 대사 등 인체 건강 유지와 관련된 전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
멘델은 자연에 대한 단순한 관찰에 머물지 않고 교배라는 실험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유전학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보편적으로 예외 없이 적용되는 원리나 이론을 법칙이라고 하므로,
멘델의 발견 내용을 법칙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멘델이 제시한 생물학적 특성과 통계적 수치는 상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선택돼 도출된 결과였다. 멘델은 논문의 서두에서 실험에 적합한 식물과 형질을
특별히 선택했다고 분명시 밝히면서 자신의 발견을 일반화하는 것을 경계했다.
멘델은 완두의 생존에 필수적인 형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명확히 규정되고 관찰이 쉽고 분명히 전달되거나 전혀 전달되지 않는 형질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완두의 15가지 형질을 관찰했지만, 일정한 규칙을 찾아낼 수 있는 7가지 형질로
그 수를 줄였다. 향후 관찰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표현형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 둥근 완두콩을 현미경으로 보면 약간 주름진 모습이 관찰된다.
과학자들이 인간의 후성유전학 연구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네덜란드 기근 사건 때문이다. 1944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네덜란드는 나치의 봉쇄로 인해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고, 임신 중이던 여성들은 하루 권장 칼로리의 30%밖에 섭취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추적한 결과, 임신 초기 영양실조를 겪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비만, 당뇨, 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에 걸린 비율이 높다는
특이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임산부가 겪은 영양실조 시기의 차이, 즉 환경 요인의 차이에 따라
유전자의 발현 양상이 변해 특정 질환의 발생 위험도가 달라진 것이다.
일란성쌍둥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 상태, 외모나 성격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 또한
타고난 DNA 염기서열 자체가 아니라 삶의 경험과 환경이 유전자 발현을 어떻게 조율하는지가
개인별 차이를 낳는다는 점을 알려준다.
DNA 메틸화와 히스톤의 변형과 같은 후성유전학적 표식은 한번 생기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돼 개인의 일생에서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후성유전학적 표식이 이미 존재하더라도 식습관이나 생활 습관을 개선하면
유전자 발현 양상이 변화할 수 있으므로,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을 위한 새로운 대안적 가능성이 있다.
후성유전학의 성과를 두고 다윈이 틀렸고 라마르크가 맞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라마르크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물리적 형질 자체가 유전된다고 본 반면,
후성유전학에서 다루는 분자 수준에서의 변화는 후손에게 전해져도 길어야 몇 세대를 넘기지 못하며
환경이 변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즉, 후성유전학은 라마르크의 주장을 입증했다기보다
오히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기반으로 유전자 발현 조절이 진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세포들이라도 배아 발달 초기에 생긴 변이, 세포 분열 과정에서 쌓이는 변화,
각기 다른 환경적 영향 등으로 인해 유전체의 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
DNA 염기서열이나 후성유전학적 표식이 서로 다른 세포들이 한 사람의 몸 안에서 섞여 존재하는 것을
체세포 모자이크 현상이라고 한다. 2023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5년간 약 1억 40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는 SMaHT(Somatic Mosaicism Across Human Tissues) 프로젝트를 출범하여,
인간의 각 조직별로 체세포 모자이크 현상을 지도화하고 그 결과가 암이나 심혈관 및 신경계 질환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후성유전학과 다양한 오믹스 연구가 합쳐져 한 사람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유전체 변화의 역동성과
복잡성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멘델의 유전부터, 영화 가타카에서 예견한 유전자 차별, 우생학, 질병과 웰니스의 애매한 경계,
유전체 편집의 최전선 크리스퍼 혁명, 합성생물학까지 흩어진 생명과학 지식을 DNA를 중심으로
야무지게 연결할 수 있어 아주 유익했다.
#DNA는어떻게나를설계하는가 #유전vs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