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자 남미 : 바람 구두 신은 시인처럼 걸어가자
노동효 지음 / 나무발전소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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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걸어가자 아시아>에 이어 노동효 작가의 남미 여행기를 접하니,

역시 인문학적 지평을 횡단하는 노동효 작가만이 그려낼 수 있는 풍경과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 절로 이해가 되었다. 아시아가 친숙하고 익숙한 대륙이었다면

남미는 나에게는 아직 미지의 대륙이자 너무나 가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에 있는 곳이기에

작가의 이야기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재미있었다.

자신은 여행했던 것이 아니라 긴 시간 속에서 방랑을 했다고 하는데,

이름도 사라지고 집도 사라지고 국적도 사라지고 신도 사라지고 탄생도 사라지고 죽음도 사라지고

그저 길 떠도는 무언가가 있을 뿐인 그 감정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는 거꾸로 가는 이색적인 시계가 걸려 있다고 한다.

2014년 외무부 장관이 지구 북방부의 상식과 일반을 당연히 여기는 세상에 대해서

환기하기 위해서 국회의사당에 거꾸로 가는 시계를 걸었다고 한다.

시계가 항상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누가 정했는가?

왜 우리는 항상 순종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창의적이면 안 되는가?라는 생각을

시계 하나로 재치 있게 보여줬는데 라파스 시민들의 일상 또한 그러했다.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케이블카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라파스 시민의 일상은

다른 도시와는 다른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현재 총 10 개의 라인이 운영되고 있는데 각 라인은 시간당 3000 명까지 태울 수 있으니,

그냥 관광지 케이블카와는 확연히 다르다.

전망 좋은 케이블카 라인은 그린라인과 옐로 라인인데

라파스 도심에서 옐로 라인 종점까지는 7.6 km로 편도로 대략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심장이 약하거나 고소 공포증이 있다면 출퇴근이 너무 끔찍할 거 같다.

해발 4000m 미터로 올라가는 동안 외계행성이라고 해도 좋을 안데스 협곡,

레고 조각을 맞춘 듯한 마을, 비탈에 서있는 아슬아슬한 벽돌집들을 마주하게 되는

상식과 일반의 기준을 벗어난 재미있는 도시의 모습이 정말 궁금해졌다.

개도 은화를 물고 다니는 도시였던 포토시,

포토시에서 생산된 은의 총량이 유럽 전체에서 유통되는 은의 총량보다도 많았다니 씁쓸했다.

콜럼버스 이전까지 세계 부의 중심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였다.

경제력, 군사력, 평균수명 등 모든 면에서 아시아가 유럽을 훨씬 앞섰는데

스페인이 볼리비아 포토시에서 가져온 은이 기존의 위상을 뒤바꾸었다.

스페인이란 노즐을 통해 은이 유럽 곳곳으로 분사되면서 증기기관이 탄생했고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대포와 무기가 개발되고 부르주아 계급이 탄생하고 자본주의가 발흥했다.

여러 요인이 결합해서 벌어진 일이지만 아메리카에서 착취한 은이 없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를 패러다임의 전환 이야기를 듣자니,

아프리카 대륙도 그렇고 너무 많이 가져 모든 걸 잃고 가장 가난한 삶을 살게 된

아이러니한 운명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유럽인은 산에서 캔 은으로 대서양을 건너 유럽까지 다리를 놓을 수 있을 정도라고 표현하고,

포토시 사람들은 산에서 죽은 사람들의 뼈로 다리를 놓으면 유럽에 닿을 정도라고 표현한다니

얼마나 끔찍한 수탈이었을까 먹먹해졌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작가는 <수탈된 대지>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에 가장 많은 것을 제공하고도 가장 조금밖에 가지지 못한 포토시는

아메리카 식민지에 절개된 상처이고 살아있는 고발장이라고 했다는 것도 가슴 아팠지만,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사람을 잡아먹는 산이 있고, 그 산의 입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는 작가의 말을 들으니 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에도 대한민국에서 추락, 끼임, 깔림, 무너짐, 파열, 질식, 감전, 중독 등

산업재해로 한 해 동안 목숨을 잃는 이가 2023년 기준 2000여 명이라니 말이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단지 사람 파입니다.

빈농의 아들, 저학력, 노조위원장 출신의 대통령,

룰라 대통령은 2003년~2010년 재임 기간 동안 브라질을 세계 8대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았다.

부자들을 돕는 건 투자라고 하면서 빈자들을 돕는 건 왜 비용이라고 물었던 대통령.

그가 뇌물수수 혐의로 투옥되고 치러진 대선에서

군인 출신의 보우소나루가 승리하면서 아마존도, 사람들의 속도 많이 불탔다.

다행히 룰라 대통령의 무죄가 밝혀지고 2023년 다시 브라질 3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대통령은 지난 보수정부가 거둬들였던 저소득층 경제 지원 프로그램부터 가장 먼저 부활시켰다고 한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대통령들이 등장하여 브라질이 계속 발전하고,

자연도 잘 보전해서 훗날 내가 브라질을 여행할 때 마음이 평안했으면 좋겠다.

은퇴 후 살기 좋은 국가 상위권에 중남미 국가가 많다고 한다.

남미는 치안이 좋지 않다는 편견이 있는데,

2015년 은퇴 후 살기 좋은 국가 1위에 에콰도르가 올랐고, 현재까지도 상위권을 고수 중이다.

에콰도르 도시 중 은퇴 후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쿠엥카는

해발고도 2500m에 자리해 1년 내내 선선한 날씨가 펼쳐지는 안전한 도시이다.

대도시의 치안은 불안해도, 소도시나 작은 마을은 순박하고 안전해서 은퇴 후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윤택한 삶을 누리기 위해 연금생활자들이 모여든다고 하니,

그 여유롭고 평화로운 은퇴자의 삶이 너무나 부러웠다.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양분하는 땅으로 남아메리카 대륙 남위 40도 아래,

파타고니아는 국가명도 아니고 기후나 자연환경으로 구분되는 지역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유럽과 북아메리카 출신의 탐험가, 은둔자, 무법자, 도피자들을 불러들인

아메리카 대륙 남쪽 끝,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파타고니아의 11월~2월 사이의

녹음방초는 너무나 유명하다. 봄꽃과 여름꽃이 만발한 가운데

공룡의 뿔이나 상어의 이빨처럼 치솟은 산들의 실루엣을 바라보면

얼마나 황홀할까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우리 인생이 끝나지 않은 이상 끝은 늘 시작으로 이어지기에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에선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든 결국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 된다고 한다.

그 길에서 만나 이정표에 "Life is A Long Weekend."라는 문장이 씌어있다고 한다.

그 이정표를 만날 날을 위해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음을 다시 환기시켜주는 남미 여행기였다.

#걸어가자남미 #노동효 #남미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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