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주인공 요하임은 어린이 청소년 정신병원 원장의 막내아들로,
정신병원이 집인 소년인데, 자전적 삶이라니 작가가 과연 몇 살일지 궁금해졌다.
1967년생이던데, 그 시대엔 병원장의 가족들이 정신병원 내에 상주하며 살아가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증상에 따라 여러 병동으로 나누어져 격리되어
수용되어 있기는 해도 환자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등굣길에 늘 마주치는 위험하지 않은
환자들에게 어린아이가 노출되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들긴 했다.
3 형제의 막내가 형들의 장난으로부터 분노를 다져나갈 때 환자들처럼 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당시 병원에서 알코올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지만,
니코틴은 최고위층이 연령 제한 없이 승인한 약물처럼 보였다며 묘사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금연을 해야 할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사, 간호사, 의사, 심리학자, 치료사 할 것 없이 모두 담배를 피웠고
손을 벌리는 환자들에게 아낌없이 담배를 나눠주었는데
수용자들이 여기서 버는 얼마 안 되는 돈을 담배 사는 데 다 썼다고 한다.
특히 조울증 병동만큼 강박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병동은 없었는데,
조울증 환자들은 누렇게 변성된 손가락 끝에 불꽃이 닿을 때까지 담배를 피웠다.
담배연기가 구원이라도 되듯 폐 속 깊숙이 빨아들이고
뻥 뚫린 하늘 아래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협소한 장소에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마치 으스스한 제식을 치르는 종파의 신도들 같았다.
갑자기 동시에 담배를 피우고 시커먼 나락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구원의 빛처럼
담배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혈연적 유사성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소년에게 그대로 노출되다니 요즘의 관점에서 보니 안타까웠다.
연이어 피워대는 담배에 대한 중독이 그들을 외적으로 연결시켜주듯
내적으로도 절망으로 연결된 특별한 유대감과 동질성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년이 너무 일찍 다양한 인간 군상에 노출되는 건 아닐까 염려되기도 했다.
요하힘의 아버지는 안락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사는 교양 유목민이었다.
1번 읽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지능으로 무장한 채 온갖 지식 분야를 섭렵함으로써
과체중에 시달리는 만능 백과사전인 정신병원 원장 의사 선생님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책을 직접 집어삼키는 분이었는데
한 주제에 대한 정보를 다 흡수한 뒤에야 포만감을 느끼며 그 주제에서 손을 뗐다.
그 박학다식함으로 수많은 여성들의 환심을 사고 외도를 해왔다는 것도
주말에 시골집에서도 원예 잡지를 뒤적거리기만 하고
어머니는 뼈빠지게 일했다는 건 화가 났다.
넓은 부지를 돌아다니며 전문가적 관점에서 양봉장을 위한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고
안달루시아 암탉들이 얼마나 많은 알을 낳았는지 세는 것만 하고,
평생을 그렇게 머릿속으로만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하는 것은 어머니였고
이혼 후에도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다시 돌아온 어머니도 그렇고
가족 관계는 참 아이러니한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