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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ㅣ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조지무쇼 지음, 서수지 옮김, 와키무라 고헤이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를 너무 좋아하는데 인류를 끊임없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뜨리며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너무나 흥미롭고 유익하였다.
21세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이 코로나19 전후로 전혀 달라졌는데,
병원균의 존재에 대해서도 몰랐던 그 옛날에는 오죽했을까.
감염병이 세상을 얼마나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 과정에서 인류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재미나는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세계사를 바꾼 식물 이야기 복습도 하면서 상식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
유럽 근대화의 인큐베이터라 된 페스트부터
제1차 세계대전 장기화를 막아 평화를 가져온 인플루엔자,
19세기 유럽 도시 환경과 위생 상태를 개혁하게 한 콜레라,
세계대전의 향방을 2번이나 바꾼 말라리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과 나폴레옹의 세계 제패를 가능케 한 이질,
산업혁명이 퍼뜨린 하얀 페스트 결핵,
스페인의 남북 아메리카 대륙 정복의 첨병 천연두,
파나마 운하 개통 사업을 끈질기게 방해했으나 결국 빛나게 해준 황열병,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패배와 몰락의 길로 이끈 티푸스,
가짜 특효약으로 푸거 가문을 유럽 최대 부호로 만든 매독까지
감염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세계사 지식까지
너무나 알차고 재미있었다.
14세기 페스트 팬데믹의 가장 큰 수혜자를 딱 한 명 꼽으라면
저자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를 꼽고 싶다고 했다.
페스트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을 겪으며 생명 안전과 직결되는 과학기술,
의학 지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욕구가 높아졌고,
그 결과 다양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매체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다.
높은 사망률로 인해 인건비가 폭등하면서 빠른 속도로 책을 대량 인쇄, 제작할 수 있는
금속활자 발명과 지식혁명이 일어났다.
신에게 간절히 기도해도 페스트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교회가 집단 발병의 온상이 되었고,
낡고 타락한 교회를 비판하며 루터의 종교개혁이 대두되었다.
내일 당장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가만히 있기보다는
무슨 일이든 과감히 시도해 보는 게 낫다고 여기기 시작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는 신분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정신이 퍼져나갔다.
15세기 이후로도 페스트 팬데믹은 세계 각지에서 몇 번씩 되풀이되었고
16~18세기 가톨릭교회와 맞서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자신들의 종파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탄압하고 마녀재판이 횡행했다.
마녀가 고양이를 부하로 부린다는 소문으로 인해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는
죄 없는 고양이가 억울하게 희생되면서 쥐가 들끓어
페스트가 점점 더 활개를 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유럽에서는 근대까지 질병이란 습지 같은 곳에서 발생하는 독성을 함유한
공기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는 미아즈마설이 주류를 이루었다.
말라리아도 나쁜 공기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mala aria에서 비롯되었다.
잉카제국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기나나무 껍질을 말려 해열제로 이용했고,
유럽인은 원주민의 지혜를 배워 기나나무 껍질을 말라리아 치료제로 활용했다.
기나나무 껍질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해 만든 말라리아 특효약이 퀴닌이다.
퀴닌은 말라리아 치료뿐 아니라 예방에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
네덜란드는 기나나무 원산지의 페루와 기후가 비슷한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기나나무를 대규모 재배하기 시작했다.
퀴닌이 보급된 19세기 후반, 말라리아를 비롯한 열대성 감염병으로 인해
오지까지 진출하지 못하던 서구 열강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자신들의 세력권에 편입해 지배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세계보건기구가 규정한 3대 감염병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인데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정부의 공중위생 지출의 40%가 말라리아 대책에
할당하고 있을 정도이다. 말라리아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경제성장을 1.3%
뒤처지게 만든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이니 결코 얕볼 수 없는 감염병이다.
감자역병으로 인한 대기근과 함께 아일랜드를 지옥으로 만든 감염병이
기아 이질이다. 영양 부족으로 체력이 떨어져 이질과 티푸스에 걸려 수백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잉글랜드의 차 문화가 이질 발생률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차를 우리려면 우선 물을 끓여야 하는데, 물을 팔팔 끓이는 과정에서
세균이 죽고 운 좋게 살아남은 세균도 찻잎에서 우러난 타닌산으로 살균되기 때문에
홍차에는 감염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단다.
18세기 후반, 잉글랜드에서 이질 발생률과 유아 사망률이 빠르게 줄어들었다는
의사들의 관찰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차를 마시는 습관이 대중화하며
어머니가 마신 홍차에 함유된 살균 성분이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전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단다. 이질과 콜레라에 걸리지 않게 된 사람들의 노동력으로 런던의 발전이 지탱되었다.
오늘날에도 판매되는 '정로환(正露丸)'이라는 배탈약은
일본이 제국주의 깃발을 내걸고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시작하면서
이질과 티푸스 예방책으로 병사들에게 보급한 데서 출발했다.
당시에는 러시아를 정벌하는 약이라는 의미로
바를 정 대신 정복할 정을 써서 '정로환(征露丸)'이라고 불린 역사가 있다니 신기했다.
페스트가 환자의 피부를 거뭇거뭇한 반점이 뒤덮으며 흉측하게 만들어
흑사병이라 불렸다면, 결핵에 걸린 사람의 피부는 눈처럼 창백해져 하얀 페스트라고 불렸다.
18~19세기 초 유럽과 북미 대륙에서 4명 중 1명이 결핵으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사망률이 높았음에도
결핵이 미모와 뛰어난 재능을 겸비한 사람이 걸리는 병으로 해석되면서
과도하게 미화되기도 했다니 인간의 감정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페스트나 천연두 환자의 온몸에 수포가 돋아나고 반점이 생기고 기괴한 몰골로 변하는 데 반해
결핵 환자는 가냘프게 여위며 안색이 투명할 정도로 창백하다. 새하얀 낯빛과 대조적으로
발그레한 뺨과 입술, 그렁그렁 반짝이는 물기 어린 눈빛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결핵 환자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인식되어 결핵을 미화하는 풍조가 생겨났다니 황당했다.
결핵에 걸려 야윈 모습에 의미를 부여하고 비극과 낭만,
죽음과 대조되는 빛나는 생의 순간을 발견하는 미의식이 지식인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병약한 모습을 연출하는 역설을 만들어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은
"나는 폐병에 걸려 죽고 싶다"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했고,
폐병을 앓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한 지식인들도 있었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산악지대나 따스한 햇빛이 풍부한 지중해 연안에 세워진
결핵 전문 근대적 요양 시설이 상류 계급 전용 사교의 장이 되었다니
정신적 위안으로 면역력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인류가 유일하게 거의 극복한 감염병인 천연두가
남북 아메리키대륙을 휩쓸며 세계사의 판도를 크게 바꾼
<총, 균, 쇠>를 통해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를 비롯해
다양한 감염병이 세계사를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바꾸었는지 알 수 있어 유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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