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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잔 - 소설 속 칵테일, 한 잔에 담긴 세계
정인성 지음, 엄소정 그림 / 영진.com(영진닷컴)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설 책장을 넘기며 맛보는 칵테일 한 잔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음주라고 생각해서
10년간 술과 책이 공존하는 '책바'를 운영하는 저자가
술꾼이라면 꼭 읽어야 할 소설 23권을 골라 소설 속 칵테일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소설 한 잔에 담긴 세계는 물론이고, 책바 오너 바텐더의 레시피까지 수록되어 있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음주 레시피 23가지도 있어
책을 사랑하는 술꾼은 당연하고, 소설 속 칵테일의 맛이 궁금한 술린이에게도
너무나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책이다.
칵테일이 고유명사로 등장하는 서양 소설에 비해 한국 소설에서는 드물게 등장해서 그런지
23가지 칵테일 중 우리나라 전통주로 만든 칵테일은 하나밖에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은모든의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에서 술주희가 처음 마시고 반해버린
이강주를 베이스로 만든 전주볼이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문인더랩의 레시피를 찾아보면 이강주와 생맥주를 소맥처럼 섞어서
만드는 것 같은데, 전주볼이라는 이름과 달리 하이볼 형태의 칵테일이 아니고
현재는 운영을 하지 않는 공간으로 확인되어 책바 버전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술린이라서 지인이 선물한 이강주가 때마침 집에 그대로 남아 있어
책바 레시피대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이강주에는 배와 생강, 울금, 계피, 벌꿀이 들어가
곡물의 고소한 향과 청량한 배향이 어우러지며 부드러운 맛에 따뜻한 목 넘김이 인상적이다.
이강주의 생강 뉘앙스와 연결시키고자 전저에일을 선택하고 신선한 리임주스와 함께
어우러지면 부드러움과 강렬함이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술린이라서 이강주는 너무 강해서 마시기가 힘들었는데 간단한 레시피로
맛의 완성도가 높아 외국인 손님들도 흥미롭게 즐기는 칵테일이라고 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캐롤>에서 캐롤과 테레즈가 함께 마신 올드패션드는'
'옛날 방식의'라는 뜻으로, 19세기 중반 진취적이고 호기심 가득한 바텐더들이
칵테일에 여러 실험을 하기 시작하여 임르푸브드 칵테일을 탄생시킬 때,
예전 그대로의 칵테일이 그리웠던 이들이 저속한 것들을 넣지 말고,
옛날에 마셨던 위스키 칵테일을 주문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날에는 버번 위스키가 더 대중적이지만, 당시에는 라이 위스키의 인기가 더 높았다.
옥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버번 위스키가 19세기 서부 개척 시기와 함께
켄터키와 테네시 등 남부 내륙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자리 잡게 되었지만,
라이 위스키가 버번보다 먼저 생산되고 유통되었기에 당시에는
라이 위스키가 더욱 널리 사랑받았다. 올드패션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클래식 칵테일 중 하나라 어느 바를 가든 웬만하면 주문할 수 있으나,
바텐더의 개성을 담아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그 맛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하이볼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풀렸다.
1800년대 영국에서 브랜디에 소다수를 곁들여 마시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나폴레옹 전쟁으로 브랜디 공급이 중단되면서
위스키가 대체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스카치 소다가 탄생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하이볼이라 부르며 즐기게 되었다.
하이볼은 1890년대 뉴욕 바텐더 패트릭 개빈 더피가 처음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철도 신호 체계에서 사용하는 동명의 용어를 차용한 것으로,
기차 노선 옆 기둥 위에 공이 올라가 있으면 기관사에게 속도를 높이라는 신호라는 뜻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공되는 칵테일이라는 이미지와 맞아떨어져서 선택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국은 단순하게 재료의 조합 자체를 이름에 담는 실용적인 방식을 선호했고,
미국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음료에 이야기를 부여했고,
영국은 주로 얼음 없이 마셨고, 미국에서는 얼음이 선택 사항이라는 차이점이 있단다.
그림에 등장하는 압생트는 원래의 압생트 색상이 다르다.
압생트 원액은 투명한 연두색에 가까운데, 화폭에 담긴 압생트는 불투명한 색인 이유는
그 시대 사람들이 압생트를 마신 방법 때문이다.
압생트의 주요 재료인 아니스와 펜넬에는 아네톨이란 성분이 있다.
아네톨은 에탄올에 녹지만 물에는 녹지 않는다. 압생트에 물을 더할 경우,
구름처럼 뿌옇게 변하는 루쉬(louche) 현상이 나타난다.
구멍이 뚫린 압생트 전용 스푼 위에 각설탕을 올려놓고 그 위로 얼음물을 천천히 떨어뜨려
마시는 방식인 프렌치 메소드가 가장 대중적이고,
불을 붙여 녹이는 방법은 보헤미안 메소드로 품질 낮은 압생트의 맛과 향을 감추기 위해
고안된 1990년대 체코에서 유래된 방식이라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와 미도리가 5 잔씩 마신
보드카 토닉의 맛이 실제로 어떻게 재현되고 있을지 궁금해서
그들이 방문했던 신주쿠역 근방 빌딩 지하 1층의 재즈 바 DUG를 방문해
단정하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깔끔하고 시원한 보드카 토닉을 맛보고
왔다니 역시 책바 오너 바텐더는 술과 문화예술 연결에 진심인 것 같았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그런지, 술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그들이 보드카 토닉을 연거푸 마셨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은 후, 언젠가 도쿄 여행에는 DUG에서 보드카 토닉 한 잔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칵테일 한 잔에 담긴 인생의 맛이 궁금해지는 문학과 주류학의 멋진 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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