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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 방랑작가 박인식의 부처의 길 순례
박인식 지음 / 생각정거장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1997년에 방영된 MBC 창사특집 드라마 <산>의 원작과 극본을 썼고,
기행문학의 나침반과 같은 방랑 작가의 부처의 길 순례기가
15주년 스페셜 에디션으로 복간되었다.
중학교 3학년생일 때 타히티 섬의 고갱처럼 원시적인 삶을 그려내는 화가가 되기 위해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군도로 가서 어느 무인도에 태평천국을 세우기 위해
급우 7명을 포섭해 반년 넘게 준비해서 부산항 제3부두에서 밀항선을 타려다
잠복해 있던 경철에 덜미를 잡혔다고 하니, 방랑 작가의 역마살이 남다르기는 했다.
방랑 팔자의 황홀과 고독을 걷고 또 걸어왔던 방랑 작가가 2010년 60이 되어
친구 둘과 함께 부처의 길 순례를 했으니 얼마나 깨달은 바가 많았을 것인가.
100일 동안 1500km를 걸어간 네팔, 인도 여행을 통해
부처는 누구이며 부처와 소통하고 싶은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은 변하며, 끝없이 걸어가는 것이 수행임을 깨닫는 과정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사육하는 순하고 착한 코끼리를
위험한 야생 코끼리인 줄 알고 코끼리를 만난 길 말고 다른 길로 안내하라고
역정을 내려다 사육 코끼리인 줄 알자, 마음이 놓이며 세상의 모든 질서가 제자리를 찾음에
감사하며 원효와 의상이 해골바가지를 들고 당황하는 순간이 떠올랐단다.
신라의 해골과 바가지가 네팔 아말타리에서는 야생 코끼리와 사육 코끼리로 변주되어
자신의 마음속에 원효와 의상이라는 두 갈림길이 나 있음을 일깨워 간사해짐을 느꼈단다.
사육 코끼리인 줄 알고 다시 보게 된 코끼리가 어찌나 늠름하고 순박해 보였을지
공감이 되는 건 살아가며 그런 순간을 종종 경험하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30일 만에 400km를 걸어 부처가 인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는 헤타우다 시가지에
도착한 후 쇼윈도를 보니 얼굴에 기름기가 쏘옥 빠져나가고 빰에 광대뼈가 불쑥 튀어나온
연탄 얼굴이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너는 누구이고,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물었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나 같지 않은 사내가 도대체 어디서 굴러온 개뼈다귀며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어와서 부처가 태어난 데서부터 걸어온 사람인데,
아직 내가 누군지는 모르고, 그걸 알고 싶어서 부처의 길을 따라 끝까지 걸어보려 한다고
답하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자신조차 모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나라고 본 것은 거울이나 사진이나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이미지였을 뿐이다.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이미지들의 짜깁기를 내 모습이라 여기며 살아왔음을
인지한 것부터가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자들에게는 버려야 할 2가지 극단이 있는데,
모든 것은 존재한다고 보는 것과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쾌락의 극단으로 몰고 가거나, 고행주의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2가지 치우친 견해를 버리고 중도의 길로 들어서려면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며 바로 말해야 하며 바르게 행동하고 올바른 생계를 갖고
바르게 노력하고 바르게 마음을 챙기고 올바르게 집중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겠다.
죽기 전에 바라나시를 꼭 가봐야 하는 까닭은 그곳에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바라나시만큼 죽음을 성찰하게 만드는 곳은 없다.
화장터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거기서 피어나는 연기와 냄새는
내가 누군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만들고, 머잖아 닥쳐올 내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할 것 같다. 죽음은 삶을 싱싱하게 만들어주고 삶은 죽음에게 잔치를 베푸는
삶과 죽음이라는 모순으로 뒤엉킨 인생의 무게를 제 몸으로 그대로 받아내는 힌두교의 힘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을 저자처럼 언젠가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기행문학 #방랑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