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의 작은 아버지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개신교 청년 단체 엡윗청년회에 가담해서
항일운동을 하다 경무청에 체포당했고, 그 일로 충격을 받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차례대로 세상을 떠나셨다. 작은 아버지가 출소한 이후에도 계속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자
하와이로 이민을 결심했고, 진수의 아버지는 동생이 이끄는 대로 아내와 어린 진수를 데리고
함께 이민선에 탔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을 떠나 하와이로 온 진수는
오랜 항해의 피로 때문인지 하와이에 도착한지 1년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역시 시름시름 앓다가 진수가 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작은 아버지로 인해 결국 진수는 낯선 땅에서 부모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작은 아버지는 꾸준히 항일활동을 하는 것이 진수는 탐탁하지 않았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멸시당하며 일하던 던 열일곱 살 진수는
나라가 딱히 자신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왜 항일 운동을 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진수에게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독립자금을 전달해야 하는 목사님이
진수와의 동행을 청하자 작은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한다.
작은 아버지와 달리 조국에 대한 그리움도, 조국의 독립에 대한 갈망도 없던 진수는
넓은 세상을 보고 오면 답답하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생각하고
1919년 상해로 떠나게 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