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들의 지적 대화 - 세상과 이치를 논하다
완웨이강 지음, 홍민경 옮김 / 정민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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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의 지식이 우리가 추구하는 달이라면,

자신이 쓴 책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기를 바라는 과학 작가가

이공계 마인드로 세상을 통찰하고 과학 정신으로 사회 현상을 탐구한 책이다.

21세기 세상을 바라보는 네 개의 창-사회의 법칙, 교육의 비밀, 역사의 법칙, 미래의 퍼즐-이

궁금하다면 500여 페이지의 분량이 많이 부담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과 이치를 꿰뚫어 보며 지극히 'T'적인 쓴소리가 가득해서

완전 'F'인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손해 본다는 생각이 부쩍 많아졌는데,

원칙을 중심으로 삼으며 성공한 사람들의 일 처리 방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신의 영리만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고 하니 안심이 좀 되었다.

원칙주의자는 공명정대할 뿐 아니라 도덕적 책임감까지 갖추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니 

돈, 향락, 명성, 일과 가정을 가치판단의 중심으로 삼느니

차라리 원칙을 중심으로 삼는 게 현명하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여섯 가지 도덕 모듈을

중국 유가 기본 이념인 오상(인의예지신)과 대응시켜 놓은 게 인상 깊었다.

지는 도덕을 의미하지 않지만 나머지 인의예신은 모두 하이트의 도덕 모듈과

대응하니 가장 기본적인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일한 것 같다.

- 관심/피해는 '인'에 대응한다. 어린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포유동물의 본능으로 박애 정신으로 가족, 지인은

물론 사회 전체를 대할 수 있다.

-공정/부정은 '신'과 대응하며, 타인과의 협력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상호 호혜적

메커니즘이다. 공동이익은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하는데, 누군가 부정한 방법으로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면 우리는 분노한다. 공정한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

이타적인 행위는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므로,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손해를 보게 되면

불공평하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충성/배신은 '의'에 대응한다. 인간은 누구나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천성이 있어

자신이 속한 팀에 충성심을 갖게 되고 팀원들과 유대감을 형성하여 집단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고 외부의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권위/복종은 '예'에 대응하며, 전통 사회에서 예를 강조한 것은 권위를 갖춘 사람을

경외하는 것은 물론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경의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신성/타락은 종교적 색채가 섞인 도덕적 모듈로 '혐오'라는 감각과 대응하며, 

불길한 대상을 꺼리는 진화된 본능이다.

-자유/탄압에 대해 유가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지만 도가는 자유를 강조한다.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이 6개의 모듈이 들어 있는데, 사람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분량의 크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사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때 취사선택의 기준이 다르다.

현대 심리학은 세계에서 가장 괴상한 WEIRD 집단을 연구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Western 서양의, 

Educated 교육받은, 

Industrialized 산업사회의,

Rich 부유한,

Democracy 민주적인.

'I am ......'을 넣어서 20자 정도의 글을 쓰라고 하면

미국인들은 나는 즐겁다, 나는 외향적이다,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 등

자신의 심리적 특성을 적는 반면, 아시아인은 나는 아들이다, 나는 공무원이다 등

자신이 맡은 역할과 사회관계를 더 즐겨 쓴다고 하니

나라마다 고유의 도덕 문화가 다 다르지만 재미있는 대응이었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현재 고등학교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

지식의 전수와 인재의 육성이 아니라 인간을 등급별로 분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건 너무 슬픈 현실이었다.

매 순간 사회 안에서 선택과 도태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고등학교가 그런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이 되어

우리의 등급이 매겨진다니 안타까웠다.

똑똑한 학생에게 명문대 진학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성공할 사람은 다른 길로 가도 성공할 수 있고,

한 번 선택받지 못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을 만큼

사회는 복잡하며 시장은 그에 맞춰 충분히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능력만 뛰어나다면 명문대에 진학하지 않아도 미래 소득에 큰 영향이 없다.

그러나 저소득 가정의 학생은 명문대 진학 여부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저소득 가정 출신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취업까지 이어지는 가족의 직접적인 뒷받침,

상상력, 창의력과 같은 종합적인 자질과 소양의 부족이라는 핸디캡이 있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성공의 길로 들어서기 어려워지므로

무조건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니 씁쓸했다.

미국 빈곤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보통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결혼한 후에 아이를 낳아야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며,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만 갖추면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을 확률이 무려 98%나 되는데, 미국인들에게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에 인종을 분리하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지만 평범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같은 지역 사회 안에서 살 수 없다. 그들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적 차이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에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는 것이 힘 프로그램(KIPP, Knowledge Is PowerProgram)이다.

미국 빈곤 가구의 자녀 중 대학 합격률은 8%에 불과한데, 

KIPP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걸 보면 경외감마저 든다.

반드시 대학에 합격해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자는 두 개의 기본 지침이

KIPP의 이념이다. 중산층 출신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기본적인 매너를

자연스럽게 익히지만, 저소득층 출신의 아이는 아니기 때문에

엄격하게 매너 교육을 시켜 학교에서 다 가르쳐 준다.

SLANT 규정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친다.


Sit up(똑바로 앉기) : 허리를 펴고 정자세로 앉아야만 마음가짐도 바로 선다.

Listen(경청) : 경청은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학습 방법이다.

Ask and Answer questions(묻고 답하기) : 과감하게 질문하고 대답할 줄 알아야 한다.

Nod(끄덕이기) : 상대방의 말을 이해했다면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Track the speaker(말하는 사람 쳐다보기) : 말하는 사람과 시선을 맞추는 것은 존중의 의미로

정보 전달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요구하며 아이들에게 자제력을 키워준다.

자제력은 상상력보다 더 기본적이면서 효과적인 덕목으로

빈곤 탈출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첫 번째 열쇠이기 때문에 

SLANT 규정에 공감이 되었다.


부모님이나 돈 혹은 직위와 같은 외부적 요소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끌어올리는 추동력과

남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논리와 주관으로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가정에서 뒷받침하거나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평생학습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평생 배우지 않아도 잘난 사람으로 살 수 있지만 결국 대세에 따르는

수동적 삶에 그칠 뿐이니 평생학습을 통해 우리에게 채워진 족쇄를 부수는

군자의 삶으로 도약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었다.


#지식인들의지적대화  #KI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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