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복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승승장구를 꿈꾸며 살아가던 저자가
자신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었던 날, 암으로 투병하던 친형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독한 무기력감에 빠졌다.
사랑했던 형의 죽음으로 그냥 한동안 고요하게 서 있고 싶어진 저자는
<뉴요커>를 그만두고 2008년 가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었다.
MET에서 10년간 매일 다른 전시실에서 최소 8시간씩 조용히 서서
푸른 제복 아래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동료 경비원들과 연대하고,
각양각색의 관람객들을 관찰하고, 수천 년의 시간이 담김 고대 유물과
거장들의 경이로운 예술 작품을 마주하며
삶과 죽음, 일상과 예술의 의미를 발견하며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은 여정을 고백한 책이다.
저자의 형 톰은 몸집이 크고 건강했다.
라인배커의 재능과 재치 있는 엔터테이너 크리스 팔리, 부처를 모두 섞어놓은 사람이었기에
형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뉴욕에서 함께 산 2년 8개월은 모든 걸 변하게 만들었다.
두서없이 오색찬란하고 낭만적인 도시, 사랑의 도시, 마천루와 화려하고 멋진 거리를 누비다
형이 암에 걸리자 뉴욕은 하루아침에 암 병동의 병실과 형의 퀸스 아파트만 남은 도시로 전락했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위기가 극에 달하자 한 사람씩 차례로 자기 방으로 작별 인사를 하며
자신은 꽤 괜찮은 사람으로 행복하게 산 것 같다며,
누구나 죽는다며 죽는 건 상관없지만 고통을 겪고 싶진 않다며,
모두들 늙어가는 걸 보고 싶지만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간다며,
남는 이들을 위해 축복해 주던 강한 형을 잃은 저자는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을 더 이상은 할 수가 없었다.
형의 입원실은 대체로 명랑한 분위기였고 병실을 찾아온 친구들은 좋은 순례자들이었고,
병실 침대 머리맡에는 형이 좋아한 라파엘로의 <검은 방울새의 성모>가 있었다.
아픈 병의 곁에 있으면서 저자는 과거에 입을 헤 벌린 채 쳐다보는 것이라 인식되었던 예술 작품이
그다지 숭고하고 신비스럽지만은 않으며, 병실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숨김없이 표현하려는 시도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와 함께 형의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녘 무렵, 자신들의 모습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바라보면서
"우리 좀 봐. 지금 우리가 바로 옛 거장들이 그렸던 그런 그림이잖아"
라며 끔찍한 병실에서 우아함을 보았다.
어릴 적 미술관 나들이를 자주 해서 그런지 형의 죽음 후 몇 달 후,
어머니와 저자는 필라델피아에 사는 어머니의 네 형제자매를 찾아가 26살짜리 아들을 땅에 묻은 후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혹은 되지 않는지 몸소 느끼며
시간을 보내다 더 단순하고 조용한 곳으로 가자는 어머니의 제안에 필라델피아 미술관으로 가게 되었다.
성인들의 수난과 신의 은총을 묘사한 전시실에서 형의 침대 옆을 지키던 몇 달간 흘렀던 분위기,
말문이 막히게 하는 수수께끼와 아름다움과 고통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꼈고
각자 자기만의 슬프고 밝은 그림을 찾았다.
'경배'라 부르는 장르의 그림 앞에서 용감하게 고통을 참아내는 형의 모습을 떠올리던 저자는
'통곡 혹은 피에타'라 부르는 장르의 그림 앞에서 위안과 고통으로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침묵 속에서 빙빙 돌고 서성거리고 교감하고 슬픔과 달콤함을 느낀 저자는
미술관에서의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