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므로 기록되는 순간 이미 왜곡된다.
조리 과정을 거쳐 제공되는 음식 속 재료의 순수한 맛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듯
역사에서 순수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찾아내기 힘들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저자가 유럽 중심의 서양의 틀에 갇힌
세계사의 시각을 벗어나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대 구분법으로
나열해나간 점이 특히 좋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원시,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의 구분법은
유럽 중심의 서양 문화권에만 적용되고 아시아 문화권에는 적용될 수 없다.
하지만, 경제활동을 중심으로 본
'채집시대(산업제로시대), 농업시대(1차산업시대), 공업시대(2차산업시대),
상업시대(3차산업시대), 지식시대(4차산업시대)' 구분법은
지역에 상관없이 전개될 수 있다.
유럽사와 중국사에 편중된 반쪽자리 세계사의 틀을 무너뜨리고
유럽, 중동, 인도, 중국의 역사를 균등하게 다루면서
주변까지도 담아내려는 저자의 노력이 잘 보였다.
6000년의 역사를 따라 책을 넘기면서
각 나라의 역사보다 인간의 헛된 욕망의 반복에 새삼 놀라며
어느 나라나 권력욕을 가진 인간들에 의해 흥망성쇠가 결정되구나,
인류사 또한 결국은 다 인간관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집트 고왕국시대 제7왕조에서 70일 동안 재위한 왕이
무려 70명이나 되었다는 대목에서는 끊임없는 왕권 다툼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했다.
중국에서 태평성대와 왕도 정치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요순시대에는
신하의 능력과 인품에 따라 직분을 주고, 인격과 정치 능력이
탁월한 자에게 왕위 계승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이상적인 정치가 요순시대에만 실현되고
그 이후 어느 왕조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건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서
지금도 불행하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정말 안타까웠다.
영웅의 등장으로 세상이 변해도,
영웅의 죽음으로 그 변화가 허망하게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일이
역사에 너무 빈번하니 말이다.
그래도 짧은 기간 동안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점점 발전해 오지 않았나 싶기도 한 것이,
인간의 욕망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는 오현제 시대로 일컬어지는 네르바-안토니우스 황조 시대이다.
이 시대의 개창자인 네르바는 즉위 당시 66세의 노인이었다.
그래서 재위 기간이 15개월로 짧은 기간이었지만
현명한 황제로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하고 로마를 안정시킨 공로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제약이 많고,
젊음이 부러워 위축될 때가 많았는데,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르다는 마음으로
지금 현재, 내가 가장 젊은 이 순간이 결코 늦지 않았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바뀌어도 반복되는 역사를 정리하다 보니
예전에는 세계사를 뒤흔든 결정적 장면이 기억에 더 남았는데,
지금은 인물들과 인간관계가 더 기억에 남으니
나이 듦에 따라 역사 속에서 발견하는 것도 달라짐을 경험했다.
너무나 방대한 양이라 정말 간단간단하게 소개되어 있고,
쉬운 말로 풀이되어 있어 읽기가 정말 편했다.
세계사 흐름을 잡기 위해 초보자들에게 안성맞춤이었고,
그중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찾아 다른 책을 통해
탐색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입문서로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