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인생, 천년 나무를 탐하다 - 천 년을 살고 새천년을 살 나무, 사람 그리고 이야기
이정종 지음 / 렛츠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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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사람은 나이 들어가며 추해지지만,

나무는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며 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진다는 말처럼,

나머지 삶이라도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무를 닮았으면 좋겠다며

십여 년 이상을 나무와 사람의 이야기를 답사하며 글을 쓰고 있는 저자가 들려주는

나무와 사람 이야기가 정감 있었다.

궁궐 마당은 왜 잔디를 심지 않고 돌로 꾸며놨을까?

잔디가 있었다면 덜 삭막하고 싱그럽고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조정에 깔린 거칠고 네모난 돌은 박석이다.

조선 시대 관리들이 돼지가죽으로 만든 가죽신을 신어서 바닥이 미끄러웠는데

거친 박석이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난반사를 유도해서 내부를 환히 비추는 조명 역할도 했단다.

조정 마당은 남북이 기울기가 1.5m 정도 차이가 나서

아무리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나가게 설계되어 있다니

조상님들의 지혜와 과학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비가 조금만 와도 웅덩이가 생기고 물에 잠기는 도로로 불편할 때가 있는데,

조선 시대 때 이미 이런 것도 다 고려하여 설계했다니 대단하다.

독일에서는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바라는 것처럼 다섯 갈래의 라일락 꽃을 삼키면

연인의 사랑이 변치 않는다 믿어 '럭키 라일락'이라고 부른다니 신기했다.

네 갈래로 갈라지는 꽃이 간혹 돌연변이로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 것을 보고

영원한 사랑을 기대하는 건 비과학적이지만,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면 기쁜 것처럼

내년 봄에 다섯 갈래 라일락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봄철 향기가 좋은 수수꽃다리를 말려 향갑이나 향궤에 담아두고 은은한 향을 즐기고

여인들의 향낭에 넣어 사용하기도 했다니, 내년 봄엔 라일락을 더 유심히 보게 될 것 같다.

봄에 돋아나는 약간 쌉쌀한 맛이 나는 화살나무의 부드러운 새싹을 삶아 나물을 해 먹기도 한다니

그 맛이 궁금했다. 화살나무의 코르크 날개가 새싹을 먹어 치우는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이다.

야들야들하고 맛있는 새순은 좋지만, 맛도 없고 버석거리는 코르크를 좋아할 리 없으니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함부로 덤벼들지 않는다.

식물의 다양한 형태와 생활사에 숨겨진 삶의 전략을 알고나면 늘 경이롭다.

뽕나무의 열매 오디가 위의 소화 기능을 촉진하고 대변 배설을 순조롭게 하며,

오디를 먹고나면 방귀가 뽕뽕 나와서 뽕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니

오디를 먹고 방귀를 뀌었던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잘 모르겠다.

내년 여름 오디철에 잊지 말고 실험을 해봐야겠다.

오디는 안토시아닌 색소 중 가장 항산화 작용이 강한 C3G 함량이

흑미, 검정콩 같은 블랙 푸드 중 가장 높고,

철, 칼슘, 칼륨 함량도 다른 베리류 과실보다 훨씬 높다고 하니

입이 까많게 물들어도 챙겨먹어야겠다.

도시에서도 종종 감상할 수 있는 감나무의 7덕과 5절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7덕은 수명이 길고, 그늘이 짙으며,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벌레가 생기지 않으며,

가을 단풍이 아름답고, 열매가 맛이 있으며, 낙엽은 훌륭한 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5절은 잎이 넓어 글씨 연습하기 좋아 문이 있고,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 재료가 되기에 무가 있으며,

열매가 겉과 속이 똑같이 붉어 표리가 같으므로 충이 있다.

또한, 홍시는 노인들도 먹을 수 있으므로 효가 있으며,

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열매가 가지에 달려있어 절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p.93

7덕과 5절을 알고 나니, 가을의 감나무가 더 귀하게 보일 것 같다.

오래된 은행나무에는 흙 속에 묻힌 뿌리의 호흡만으로 모자란 숨을 보충하기 위해

허공에 드러난 뿌리가 있다. 여인의 젖가슴 모양을 닮은 조직이 달려 있어 유주라고 한다.

젖기둥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남자의 심벌과 더 유사하게 생겨서

아들을 낳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잘라가기까지 하는 수난을 겪는다니 깜짝 놀랐다.

돌하르방 코가 없어진 이유가 그냥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는데,

21세기에 아직도 그런 미신으로 나무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정자와 난자의 수정 순간 결정되버리는 너무나 잘 알려진 성별의 원리가

케케묵은 미신을 이기지 못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백 년도 못 하는 인생이 천 년을 살 나무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천년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에 감사하며 아끼고 살았으면 좋겠다.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백년인생천년나무를탐하다 #나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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