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역시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는데, 반전이 있었으니...
기욤 뮈소의 <종의 여자>를 읽으며 판타지 멜로 장르인가 했다가
나중에 약간 허망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로맨틱 코미디는 해피엔딩이어야 하니까 진실된 사랑이 오랜 세월에 퇴색되지 않고
굳건히 되살아났다는 게 중요하니까 속아도 괜찮았다.
성공한 사업가 아버지 안토니 왈슈의 비서로부터 하나뿐인 딸인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전화를 충분히 예상할 만큼 부녀의 사이는 나빴다.
그런데 이번에 참석이 불가능한 이유가 사업차 바빠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파리에서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특별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인해 아담과의 결혼식이 불발되고,
마음이 복잡해진 줄리아에게 배달된 커다란 상자에는
안드로이드 아버지가 등장했다.
딸과 화해하지 못한 부자 아빠가 안드로이드로 딸과의 6일간 여행을 통해
부녀간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진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줄 알았는데,
딸과 아버지의 사이가 나빠지게 된 결정적 계기에 한 남자가 있었다.
토마스...
동쪽 남자와 서쪽 여자의 사랑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그 극적인 순간에 자유로운 미국인 소녀와
자유를 업악당하며 살았던 독일 남자의 극적인 사랑이라니
너무 작위적이고 영화 같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영화 같은 순간을,
영화 같은 사랑의 존재가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장벽이 무너진 이상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기 불가능해질 것이기는 해도
독재로 인해 겨우 자유를 향해 열렸던 문이 다시 닫힐까 봐,
전체주의의 힘으로 사랑하는 딸을 영영 잃게 될까 봐
겁이 난 아빠는 미성년자였던 딸을 베를린에서 뉴욕으로 강제로 끌고 왔다.
갑작스레 헤어지게 된 두 연인은 다시 만날 날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기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취재를 갔던 토마스의 죽음을 전해 들은
줄리아는 아빠에 대한 원망이 분노로 변해 아빠와 연을 끊고 살게 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토마스의 생존 편지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17년을 토마스가 죽은 줄로만 알고 살았던 줄리아에게
아버지는 진짜 사랑을 묻고 아담과 결혼하려는 딸에게
진짜 사랑을 되찾아주려고 했던 것이다.
부자 아빠라서 가능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서
황당하긴 하지만 뭐 로맨틱 코미디가 현실 고증적일 필요는 없으니까
몬트리올, 파리, 뉴욕, 베를린, 뉴욕을 그렇게 며칠 만에 쓔융 쓔융
활보할 수 있는 경제력이 부러운 걸 보면 삶에 찌들려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