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난다.
작은 인연이 삶의 경로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바꾸기도 한다.
세계 과학커뮤니케이션학회 아시아 최초 회장인 저자가 지난 40년간
과학고전 12권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접하면서 삶의 경로가 어떻게 바뀌고
또 새로운 경로를 찾게 되었는지를 아주 친절하고 쉽게 알려주어서
'과학고전'이라는 말에 겁을 먹을 필요가 전혀 없는 책이다.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 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
제이컵 브로노프스키 <인간 등정의 발자취>
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노우드 러셀 핸슨 <과학적 발견의 패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찰스 스노 <두 문화>
제임스 왓슨 <이중나선>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제러미 리프킨 <엔트로피>
로이 포터 <2500년 과학사를 움직인 인물들>
과학사와 과학문화를 강의하는 저자가 40년간 만나온 과학고전 중 12권을 엄선해서 그런지
완독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통로를 통해 그 내용을 익히 알고 있거나,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도 제법 있었다.
파인만은 물리학 전공자라면 너무나 애정하는 과학자라 알쓸신잡을 비롯한 여러 TV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얼마나 유쾌하고 재미난 사람인지 잘 알려진 것 같다.
파인만은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 있어 하는 일이나 연구에 몰입한 나머지
시대 정신이 부족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원자폭탄 투하 이후 인류의 대의를 위해 과학 연구를 시작했던
과학자의 연구와 연구 결과물을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깨닫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고민하고 성찰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 또한 과학 발전이 선향 방향으로 향하고 지식 확장이 인간의 복지를 위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지만, 과학적 결과가 어떻게 사용될지 아직 모르는 과학자가 과학 연구물 사용 결과에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과학은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전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분과 전체>를 읽으며 저자 또한 과학자는 누구여야 하고,
과학의 결과는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여 진정한 전문가가 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특정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아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사람이 범할 수 있는 오류도 알고 피해 갈 수 있는 진정한 전문가로 거듭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중나선>으로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제임스 왓슨의 말년 소식들은
너무나 안타깝고 끝까지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프랭클린의 업적이 축소되어 있는 초본과 다르게 10년 후에 쓰인 후기에 프랭클린의 업적과
성실함과 용기를 높이 평가해 시대적 불합리함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는 줄 알았는데,
뿌리 깊은 편견을 뽑아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인가 보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는 말처럼, 어려운 상황을 얼마나 잘 견디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그다음 인생의 행로가 결정된다. 뉴턴이 흑사병 때문에 케임브리지대학교가 휴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한가롭고 무료한 시간을 보냈기에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고,
케플러가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프라하의 튀코 브라헤를 찾아 나서서
우주의 중심이 태양이고 행성이 타원 궤도로 돌고 있음을 계산할 수 있었다.
다윈이 에든버러대학교와 케임브르지대학교에서 의학과 신학을 실패했기 때문에
헨슬로 교수를 만나 식물학과 지질학을 만나고 비글호 항해에 오를 수 있었다.
지금은 힘들어도 이 힘든 시기가 인생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회복탄성력을 잘 키우고, 만나는 인연마다 소홀히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