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안의 세계사 - 세상을 뒤흔든 15가지 약의 결정적 순간
키스 베로니즈 지음, 김숲 옮김, 정재훈 감수 / 동녘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을 흔든 15가지 약의 결정적 순간을 담은 흥미진진한 약의 세계사 이야기이다.

인류를 구한 곰팡이 페니실린, 말라리아를 정복한 기적의 신약 퀴닌,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 아스피린 아세틸살리실산, 조울증을 치료한 금속 리튬,

우연히 발견한 최초의 우울증 치료제 이프로니아지드,

잘못 쓰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약 디곡신, 스스로 실험 쥐가 되어 만든 신경안정제 플로르디아제톡시드,

의료용 웃음 가스 아산화질소, 암 치료제가 된 살인 가스 질소 머스터드,

쥐약에서 생명을 구하는 약이 된 와파린, 노화를 막는 치명적인 보툴리늄 독소,

석유에서 뽑아낸 건선 치료제 콜타르, 부작용으로 탄생한 탈모 치료제 미녹시딜,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마을에서 찾은 탈모의 비밀 피나스테리드,

삶의 질이 중요한 시대를 연 비아그라.

많은 약 중에서 뽑힌 15가지 약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많아 한 번쯤은 들어본

익숙한 이야기들도 많았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각색인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세간에 전해진 잘못된 이야기를 친절하고도 꼼꼼하게 팩트 체크해 줘서 역사 속의 허구를 가려낼 수 있어

좋았다. 약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각 장의 마지막마다 <약국 밖의 레시피>에서

약에 관련된 궁금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있어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약 하나하나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좌절, 성공과 실패에 관련된 사연들이

검증을 거쳐 시대 순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약학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정말 강추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게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을 얻기 위한 키나 나무 미션이

맨해튼 프로젝트만큼이나 중요했다고 한다. 태평양 전선을 강화하기 위해 일본이

인도네시아의 자바섬과 퀴닌을 가장 많이 생산한 네덜란드 공장인 반펑쉐 키니네파브릭을 점령해서

연합군은 퀴닌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되어 병사들에게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군들에게는 독일이 개발한 항말라리아제 아타브린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에서 좀 의아스러웠다.

아타브린이 퀴닌에 비해 효능이 떨어지는 데다

일본 선전 매체가 병사들에게 아타브린이 발기부전을 일으킨다는 루머를 퍼트린 탓에

병사들이 복용하기를 꺼려 했단다. 10명 중 4명이 말라리아로 입원하는 전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병사들이 아타브린의 복용을 거부하면서

미국은 보급한 35억 개의 아타브린 알약을 거의 모두 버려야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국은 경제 전략국의 키나나무 미션을 통해 키나 나무껍질을 지켜내야 했다고 한다.

제정 러시아의 몰락을 가져온 심령술사 라스푸틴이 황태자의 혈우병을 어떻게 치료해서

러시아 왕실의 신임을 받았는지 궁금했었는데, 아스피린 때문이었다니 궁금증이 풀려서 속이 시원했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는 혈우병을 치료하기 위해 당시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던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었다. 피를 묽게 만드는 아스피린이 혈우병 환자에게는 독이란 걸

당시에는 알지 못 했던 터라 황태자의 혈우병은 더욱 악화되었고

라스푸틴이 황태자를 치료하겠다 나서며 서양 약물 아스피린을 중단시키자

증상이 호전되었던 것이다. 황태자의 혈우병만 아니었더라도 라스푸틴으로 인해

제정 러시아의 운명은 달라졌을 텐데 안타까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약 중 하나인 디곡신은 디기탈리스에서 추출한다.

디기탈리스를 오랜 기간에 걸쳐 과하게 복용하면 드물게 눈에 빌리루빈이 쌓이면서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이 나타난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노란색 계열과 디기탈리스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라며,

'가셰 박사의 초상'에서 폴 가셰 의사가 디기탈리스를 만지고 있는 것을 증거로 제시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데 가셰 박사는 당시 만병통치약으로 처방되던 디기탈리스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적정 용량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또한 고흐가 가셰 박사의 처방을 단 두 달밖에 받지 않아 황시증이 발발하기에는

충반하기 않은 기간이기도 하고, 가셰 박사를 만나기 전의 그림에도

노란색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고흐가 가셰 박사를 만나기 전에

이미 시력이 손상될 정도의 디기탈리스를 섭취했을 수도 있지만

가셰 박사가 고흐의 시력 검사를 진행했을 때 거의 문제가 없었고

색을 구분하는 데도 이상이 없던 걸로 봐서 노란색이 고흐가 좋아하던 색일 가능성이 높단다.

스탈린의 공식 사인은 뇌출혈이지만 와파린 독살설이 제기되는데

진실인지는 영원히 알 수는 없겠지만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라고 해서

의문스러운 스탈린의 죽음을 다룬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2019)>를 보고 싶어졌다.

보툴리눔 독소가 성형 목적으로 주로 이용되는 줄만 알았는데 알레르기 비염부터 서경,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땀 분비가 줄어드는 증상, 편두통, 직장의 괄약근 문제로 인한 변비 치료 등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어 신기했다.

그리고 수감자들이 보툴리눔 독소 중독증에 걸리는 이유가 교도소 와인이라 부르는

프루노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어서 놀라웠다.

인터넷에서 푸르노 레시피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놀라웠고,

그 레시피 또한 놀라웠다. 그걸 따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

수감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과 감자를 혼합하여 따뜻한 물을 넣어 발효시켜

양말로 걸러내어 만든 것이 아기똥 같은 냄새가 나는 프루노란다.

그 과정을 직접 보고도 마신다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보툴리누스균은 토양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생감자의 표면에 박테리아 포자로 남아 있다

프루노 속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단다. 구운 감자에서도 보툴리누스균이 살아남을 만큼 강한데,

수감자들이 브루노를 양조하기 위한 환경이 보툴리눔 독소를 분비하기 좋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갓난아이에게 꿀을 먹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보툴리누스균 포자가 있을 가능성 때문이라고 하니

생각보다 보툴리누스균이 주변에 많다니 놀라웠다. 물론 갓난아이가 아닌 어른의 경우는

보툴리누스균이 독소를 분비하기 전에 이를 제거할 수 있을 만큼의 장내 세균총이 충분히

발달되어 있기에 보툴리누스 중독증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퀴닌을 통해 발기부전 치료에 대한 인류의 놀라운 갈망은 익히 알게 되었지만

화이자를 돈방석에 올려준 비아그라 편에서는 정말 기이한 역사적 시도들을 알게 되었다.

친숙한 약들에 얽혀진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가득한 재미있는 책이었다.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약국안의세계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