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도입부에 SF 드라마에서 죽은 사람을 디지털로 환생시키는 에피소드가 더 이상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2020년 2월 세계인들을 감동시킨 MBC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등장한다. 어머니 장지성 씨가 죽은 딸을 VR 기술로 다시 만나는 모습을 나 또한 눈물을 쏟으며 봤던 터라
반가웠는데, 그 모험적인 실험에 경악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가상현실 기술이 게임 분야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는데도 이용될 수 있구나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디지털 클론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데이터를 담은 위력적인 자료 기록과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덕분에 탄생한
'디지털 영혼'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IT 강국에서 살아가며 VR, AI 기술에 거부감 없이 많이 노출되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저자들은 나연이가 2010년 스마트폰이 개발된 지 3년째 되는 해에 기술이 발달한 한국에서 태어나서
부모들이 나연이의 모든 발걸음과 움직임들이 기록으로 많이 남겼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나연이가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진 아바타로 성공적으로 재현되었다고 보았다.
실제로 가상현실 콘텐츠 기업인 비브스튜디오스가 8개월에 걸쳐
테라바이트 규모의 동영상과 사진을 분석하여 나연이의 생전 모습이 재현된 것이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 글 먼 은 사람은 세 번 죽는다고 하였다.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없을 때 처음으로 죽고,
땅속에 묻힐 때 두 번째로 죽고,
이름이 마지막으로 불리는 순간 세 번째로 죽는다.
처음 두 번의 죽음은 극복할 수 없으나, 세 번째 죽음은 기술의 발전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클론을 만드는 사람들은 터부시되던 죽음에 대한 한낱 사업 아이디어도 아니고,
전능함을 재현하려는 일도 아니고, 죽음에 대한 보이콧도 아니라고 한다.
죽음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사랑하던 사람들을 불멸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 과연 치유가 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랑하던 친구가 계속 대화를 주고받길 원할 수도 있고
존경하던 아버지의 성격, 사고방식, 언어 습관, 농담 등을 계속해서 살려두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이를 아버지나 다른 죽은 이들과 직접 작별하기를 꺼리는 감정적인 혼란이
디지털 클론 개발이라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대체된 것으로 자기의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진정한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남자들이 슬픔을 기술로 이겨내려고,
자기의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클론이 정보화된 불멸성의 민주화를 알리는 것이지, 영혼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이지
깊은 고민에 빠져들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