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트리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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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농촌 마을인 호타카에서 나서 자란 소년 류세이에게

여름은 릴리를 만날 수 있는 설레는 계절이었다.

릴리와 보내는 여름은 매 순간이 반짝임의 연속이고 하루하루가 모험이었다.

릴리는 여름방학이면 호타카에 놀러 오는 류의 5촌으로

스페인 아버지의 피로 인해 이국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류의 할아버지와 릴리의 어머니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매지간이라

류의 아버지와 릴리가 사촌이었다.

류는 릴리보다 3주 늦게 태어나서 동갑이긴 하지만 4월생이라

3월에 태어난 릴리가 아슬아슬하게 류의 연년생 누나 쓰타코와 동급생이 되고

류는 두 사람보다 한 학년 아래가 되었다.

고작 3 주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류와 릴리는 다른 학년에다가

어릴 때는 여자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이라 릴리가 더 성숙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류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다면 릴리와 대등해질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생각을 하는 장면은 순진한 남자아이의 투정이라 귀엽게 느껴졌다.

류의 부모님은 맞벌이라 더부살이하던 고이지 여관의 안주인 기쿠 할머니가 류를 챙겨줬다.

기쿠 할머니에게는 혈연관계이든 아니든 모두 가족이었기에

고이지 여관에서 누가 가족이고 누가 더부살이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아 류는 외롭지 않았다.

정말 영화에나 등장할법한 음식 솜씨가 기막힌 할머니가 있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편한 시골 여관의 정형적인 모습이 바로 고이지 여관이었다.

도시에서 놀러 온 릴리가 자연 속에서 놀 거리를 찾아내서 앞장서고

시골에서 나고 자란 류와 쓰타코가 릴리를 뒤따르는 것이 뭔가 아이러니했다.

나무를 타고 곤충을 잡는 것도 전부 릴리가 앞장서고

맨손으로 잡은 물로기를 팬티 속에 집어넣어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류였으니

보통 영화 속 시골 남자아이의 짓궂은 장난에 도시 여자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순수한 사랑이 시작되는 서사에서 남녀만 뒤바뀐 듯했다.

릴리의 고약한 장난에도 여름만이 류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는 걸 보면

류의 릴리에 대한 마음은 정말 서서히 아주 단단하게 쌓였던 것 같다.

산 전체가 온통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도, 모든 죄를 덮어 가려줄 듯한 눈 덮인 겨울도,

신록이 움트며 생동하는 봄도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에 불과했다니

소년의 풋사랑이 아름다운 결말에 이르기를 응원하게 되었다.

많은 일본 순정 영화들이 여주인공들이 병으로 조기사망하기에

너무나 씩씩한 릴리가 희귀병은 아니겠지?

여름 방학에만 오는 특별한 이유가 병원 치료와 관계가 있는 걸까?

셋이서 테이프에 감긴 상자에서 구해낸 강아지 바다에게

진짜 바다를 구경해주자고 약속했는데, 바다를 보여주지 못하고 죽게 되는 건가?

셋이서 1팀이 되어 여름을 보내면서도 릴리를 두고 묘한 질투가 보이는데,

설마 쓰타코와 릴리가 사랑하게 되어 류가 상처를 받게 되는 건가?

여러 가지 추측과 걱정을 하며 책을 읽다 죽음을 맞이한 게 릴리가 아니라

셋이서 구해낸 강아지 바다여서 놀랐다.

고이지 여관의 화재로 묶여있던 바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미묘하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비틀어지게 만들며

마냥 어린 남자애였던 류도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갔다.

열다섯 살 여름 릴리는 다시 태어난다면 교미가 끝나면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류를 잡아먹고 싶다고, 그럼 줄곧 같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이게 일본식 사랑 표현인지,

두 여자를 모두 사랑해 각각의 가족을 데리고 겨울에 하와이 단체 가족 여행을 연례행사로 하는

아버지를 둔 릴리여서 사랑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릴리의 가족사 때문에 류의 부모들은 둘의 교제를 못마땅해했지만 기쿠 할머니는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된다고 지지해 줬고 릴리와 류의 사랑은 익어갔다.

열렬했던 류의 사랑에 작은 균열들이 생기고 그 균열들로 인해 둘의 관계가 소원해지며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될까 응원하게 되는 것이 메인이었지만,

기쿠 할머니의 인생 자체가 이 소설의 큰 축이었다.

"살아 있으면 꼭 좋은 일도 있는 법이야. 신께선 그렇게 심술궂은 일은 하지 않으신단다.

선하게 살기만 하면 언젠가 자기한테 돌아오는 법이야."

p.202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통에 남편이 사망하자 남편의 동생인 시동생과 다시 결혼하여

형의 여자였다는 사실을 잊지 못한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고

아들을 잃고 사과나무 밑에 묻어야 했던 기구한 삶을 살았다고 하기에, 아니 그런 삶을 살아냈기에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기쿠 할머니로부터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퍼져나간 패밀리 트리의

한끝에서 릴리와 류가 만날 수 있었다.

류세이가 태어났을 때 별똥별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은 없으니

사람의 마음에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류세이(流星)라고 이름을 붙여줬으니

그런 기쿠 할머니의 고이지 여관에서 류는 외로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엔화 하락으로 일본 여행 붐이 일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호타카가 궁금해졌다.

어느 작은 산골 마을에 고이지 여관처럼 기쿠 할머니 같은 주인장이 하는 숙소에 머물면

참 좋겠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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