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를 떠날 때 한 교민이 네팔 국립공원 사가르마타 입구가 되는 몬조 마을에서
반드시 하룻밤을 유숙하라고 했건만 자신의 체력을 노인으로 보았구나 싶어 섭섭해하며
자랑스럽고 용맹한 한국인다운 기상으로 남체바자르까지 세 시간만에 파죽지세로
와서는 고소증에 걸린 작가의 모습이 빨리 빨리 부지런히 전진만 하다
쓰러지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스러웠다. 몬조 마을이 해발 2600미터이고
남체바자르가 3400미터를 웃도니 하루 만에 해발 고도를 800미터 이상 올라가지 말라고
전문 트레커가 충고한 것인데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자신의 체력을 믿고 자만했다가는
큰 코 다치는데 말이다. 고소증에 걸려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낙오자가 될까 두려워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누워 앓고 있는 자신의 꼴을 고백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목표로 정한 칼라파타르는 그냥 흔하디 흔한
검은 바위일뿐인데 고소증을 막무가내 견디며 그 허상의 목표에 붙잡혀 있는
자신의 우스꽝스럽고 불쌍한 모습에서 상투적 욕망에 불러온 허상의 목표를 좇아
배회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보다니 역시 청년작가다운 시선이었다.
저질 체력이라 히말라야 트레킹은 꿈도 꾸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히말라야 트레킹을 계속 떠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히말라야가 거대한 묵음의 언어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자신의 문장들이 소음이 되어 자신의 몸으로 다시 꽂쳐 들어올 때 매번 미치기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는 작가는 소리 없는 '묵음의 소설'이 제일 좋은 소설이라고 했다.
평생 소음 같은 말 속에 갇혀 살았고 소음 같은 말을 계속 지어내면서
잠시라도 조국의 말을 등지고 벗어나고 싶었던 작가의 심정이 아주 조금은 헤아려졌다.